[이유진의 바디올로지] 미인이 될 상인가, 괴물이 될 상인가

이유진 2022. 11. 2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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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의 바디올로지]01 _얼굴

외모 관리가 중요한 경쟁력이 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르러 여성의 얼굴은 더 정교한 자기계발의 장으로 거듭났다. 섬세하게 비율을 다듬은 얼굴은 경제적 투자와 혹독한 자기규율로 획득해야 할 중요한 문화자본이 된 것이다. 다만 정도껏 해야 한다. 지나친 변신은 ‘괴물’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매끈하지만 왠지 모를 오싹한 불쾌감을 주는 ‘언캐니’하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가 세계적 미인의 기준이 될 수도 있다. 사진은 쇼윈도 속 마네킹의 얼굴.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오늘날 인간의 몸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얼굴, 성형, 살, 뼈, 장기, 섹스, 재생산, 질병, 폭력, 사이보그, 사육, 육식 등 여성의 몸을 둘러싸고 첨예한 갈등과 교묘한 협상을 벌이는 이상하고도 불완전한 이야기를 3주에 한번씩 연재한다.

누군가의 얼굴을 보고 어떤 사람인지 짐작해보려는 역사는 짧지 않다. 서양에서의 첫 학문적 시도는 2500여년 전 고대 그리스 관상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의 생각을 담은 것으로 추정되는 책 <관상학>은 남성의 원형을 ‘사자’라고 설명한다. 당시 사자는 관대하며 영혼이 고결하고 정의로운 동물의 표상이었다. 반면 여성의 원형은 ‘표범’이라고 했다. 하잘것없는 영혼에 교활하고 음흉스럽다는 의미였다. 성차별적 관념이 투영된 그 시절의 해석일 것이다. 하지만 21세기인 지금도 사람을 동물에 견주는 시도는 계속된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만을 유독 ‘고양이상’ ‘강아지상’처럼 작고 귀여운 동물에 빗대는 이야기는 접할 때마다 씁쓸하다. 젊거나 어린, 다시 말해 만만한 여성을 의존적인 반려동물로 표현하려는 의도는 무엇일까? (적어도 언론만큼은 이 용어 사용을 중단했으면 한다)

예부터 여성은 ‘얼굴이 운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중세 유럽 사람들은 예쁜 딸은 결혼시키고, 못생긴 딸은 수녀원으로 보냈다. 조선시대 고전소설 <박씨전>에서 박씨 부인은 남다른 지혜와 도력을 갖고 있었지만 흉한 몰골로 남편에게 소박을 맞았다. 친정아버지가 전생의 악업이 풀렸다며 도술로 얼굴을 예쁘게 바꿔준 뒤에야 남편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연상호 감독의 그래픽노블 <얼굴>에는 혐오스러운 얼굴을 가리고 다니며 ‘괴물’이라 따돌림당하다가 남편 손에 죽는 여자 이야기가 나온다. 동료를 성폭행한 공장 사장의 행위를 폭로하는 미투 운동에 나선 것을 계기로 그는 참혹한 폭력을 겪게 된다. 마지막에서야 비로소 여자의 얼굴이 공개되는데, 아주 평범한 보통의 얼굴이었다.

남성 권력자의 얼굴도 자주 너구리, 쥐, 돼지 같은 동물에 비유되지만, 시끄러운 여성의 얼굴은 동물뿐 아니라 괴물, 마녀로도 곧잘 환원된다. 똑똑한 여자, 저항하는 여자, 거역하는 여자, 여성해방운동가, 레즈비언, 여성 정치인을 ‘비인간’으로 낙인찍는 건 쉽고 역사가 길다. 1908년, 영국 정부는 송곳니를 드러내고 머리에 꽃을 꽂은 반인반수 포스터를 그렸다. 여성참정권운동가의 얼굴을 형상화한 것이었다. 영국 미술사학자 캐서린 매코맥은 ‘여성 괴물’이 여성의 힘을 억누르려는 수단으로 활용됐다고 분석한다.

여성 권력자를 향한 ‘얼굴 공격’은 정치적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한국의 경우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를 ‘성괴’(성형 괴물)라고 일컫고,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얼굴을 특정 동물에 견주는 이야기가 함께 나돈다. 여초 커뮤니티에서는 ‘같은 여성’이라선지 비난이 더 매서울 때가 많다. 탈진실의 시대에 진실보다 중요한 건 담론의 효과다. 정치 공간에서 눈길 받는 여성일수록 외모를 재료 삼아 비윤리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강력한 공격을 받는다. 2010년 오스트레일리아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된 줄리아 길라드는 매부리코를 가진 마녀라며 정적에게 집요하게 외모 공격을 받았다. 모욕을 웃어 넘기던 길라드는 2012년 끝내 ‘미소지니 스피치’(여성혐오 연설)를 통해 토니 애벗 야당 대표에게 필요한 건 거울이라고 역공에 나섰다.

여성의 얼굴을 평가하는 일은 과학이라는 외투를 입기도 한다. 몇몇 과학자 연구 결과, 안면 가로세로 비율(fWHR)이 높을수록, 즉 폭이 넓을수록 공격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자의 결과값이 여자보다 높았고, 학계에서는 섣부른 결론을 경계해야 한다며 신중론을 폈다. 하지만 이 ‘과학적 결론’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영국의 타블로이드지 <데일리메일>은 2017년 이 연구를 바탕으로 안젤라 메르켈, 힐러리 클린턴처럼 평균보다 얼굴이 넓은 여성일수록 권력에 굶주릴 가능성이 크다고 자극적으로 보도했다.

프랑스 사회학자 클로딘느 사게르는 모든 여성이 외모 품평의 대상으로 ‘재현’된다고 말했다. 세상은 대체로 젊은 미인에게 눈길과 관심을 준다. 미인문화사를 연구한 이영아는 100년 전 한반도의 신문과 잡지들은 ‘독살 미인’ ‘미인 자살’ ‘미인 고난기’ 등 ‘미인’이라는 ‘제목 장사’를 좋아했다고 분석했다. 1987년 대한항공858기 폭파 테러범으로 체포된 김현희도 ‘미모의 테러리스트’로 언론을 장식했다는 것이다.

1990년대 중후반 한국의 여성단체들은 미인대회 중계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사진은 1998년 서울 여의도 문화방송(MBC) 사옥 앞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과 여성민우회 등 여성단체들이 미인대회 중계를 반대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는 장면.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그렇다면, 어떤 얼굴이 미인인가? 가장 과학적인 근거는 ‘비율’이었다. 의학자, 과학자들은 미인의 황금비율을 찾으려 수십년간 노력했다. 1980~90년대 이르면 얼굴을 계량화하는 담론이 폭발한다. ‘이마, 코, 턱 길이가 같아야 미인이다’, ‘얼굴 너비가 12.95㎝가 넘으면 미인이 아니다’, ‘미간에서 코끝까지 62㎜가 되어야 미인이다’ 등 ㎜ 단위까지 수치화한 연구가 신문지면을 장식했다. 1990년대 중후반엔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출전자 등 ‘미인의 얼굴’ 수십군데를 계량화해 가장 이상적인 완벽미인, ‘컴퓨터 미인’을 꼽기도 했다. 이후 미인의 얼굴 비율은 계속 변화했다. 예전엔 서구적인 긴 얼굴, 얼굴을 상·중·하안부로 나눴을 때 1:1:1의 비율을 가진 정도면 미인이라고 했다. 오늘날 성형수술 ‘현장’에서는 아래쪽인 하안면부의 비율이 1보다 작은 여성이라야 미인으로 친다. 외모 관리가 중요한 경쟁력이 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르러 여성의 얼굴은 더 정교한 자기계발의 장으로 거듭났다. 섬세하게 비율을 다듬은 얼굴은 경제적 투자와 혹독한 자기규율로 획득해야 할 중요한 문화자본이 된 것이다. 다만 정도껏 해야 한다. 지나친 변신은 ‘괴물’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스마트폰 앱으로 누구나 자기 얼굴이 어디까지 ‘정상’인지 측정할 수 있다. 얼굴의 종횡비, 턱·눈·입술의 두께나 간격이 얼마나 이상적인 비율에 가까운지, 나아가 얼굴 등수까지 금세 확인 가능하다. 진화생물학자 애덤 윌킨스는 이런 얼굴인식 기술의 발달이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미셸 푸코(1926~1984)가 이론화한 파놉티콘, 즉 감시라는 근대사회 특징이 가까운 미래에는 더욱 가혹하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얼굴은 데이터값이 되어 특정인의 신분, 신원, 정체성을 이룬다.

이미 얼굴은 데이터값이 되어 특정인의 신분, 신원, 정체성, 표식이 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러나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따라 ‘뷰티 필터’가 만들어낸 디지털 미인의 얼굴은 획일적이다. 이미 몇몇 뷰티 필터가 흑인을 백인으로 만들거나 아시아인을 모두 ‘무쌍’(무쌍꺼풀)으로 바꾸는 등 인종주의적 편견을 장착했다며 비판받은 바 있다. 앞으로는 매끈한 트랜스휴먼의 얼굴 이미지, 왠지 모를 오싹한 불쾌감을 주는 ‘언캐니’하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가 세계적 미인의 기준이 될 수도 있다. 가장 비인간적인 얼굴이 가장 인간적인 얼굴의 자격을 획득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전염병의 시대, ‘죽게 내버려두는 권력’이 작동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얼굴’은 전보다 훨씬 더 정치적인 영역이 돼가고 있다. 말할 자격을 얻은 발화자, 자기 언어를 가진 강자, 아름다운 얼굴을 유지할 돈과 시간을 가진 부자들은 마스크를 벗고 손쉽고 안전하게 상대의 얼굴을 손쉽게 마주할 수 있다. 결정적으로 권력자가 유리한 건, 불리할 때 숨어서 얼굴을 가릴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들은 갈수록 마스크 쓴 자기 얼굴을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느낀다. 하지만 원치 않을 때도 여지없이 맨얼굴이 공개되곤 한다.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을 보아야 하고, 드러내고 싶지 않은 얼굴을 보여야 한다는 것은 고통이다. 차별과 혐오를 정의로 포장하는 극우의 얼굴, 공정을 가장한 능력주의를 추앙하는 신자유주의의 얼굴, 타자 앞에서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인종주의의 얼굴 같은 것들을 일상적으로 대면해야 하는 상황이야말로 폭력이다. 시끄러운 여자만 괴물이라고 특정할 게 아니라 사실은 인류 전체가 이 세계를 망쳐온 괴물이었음을 깨닫는 일이 지금 가장 필요한 통찰 아닐까. ‘우리 인간’의 얼굴이 동물보다 나을 것이 없고, 썩 아름답지도 않다는 점을 인정하는 데서 이 ‘몸의 시대’에 관한 사유를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가장 비인간적인 얼굴이 가장 인간적인 얼굴의 자격을 획득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참고자료 : 아리스토텔레스 <관상학>(김재홍 옮김) 캐서린 매코맥 <시선의 불평등>(하지은 옮김) 이영아 <예쁜 여자 만들기> 애덤 윌킨스 <얼굴은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김수민 옮김) 클로딘느 사게르 <못생긴 여자의 역사>(김미진 옮김) <인문잡지 한편: 외모>(‘K-성형수술의 과학’, 임소연)



이유진 | 토요판 선임기자
한겨레 편집국 문화부, 편집부, 사회부 기자를 거쳐 책지성팀장과 토요판 부장을 지냈다. 대학원에서 여성학과 문화학을 공부했고 감염병과 주부주체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지성이 금지된 곳에서 깨어날 때>가 있고, <엄마도 아프다> <종이약국>을 다른 필자들과 함께 썼다. ‘바디올로지’는 ‘몸(body)’과 ‘학(-logy)’의 합성어로, 지난 100년 동안 미디어를 통해 유포된 몸 담론을 씨앗으로 전쟁터나 다름 없는 몸과 젠더, 장애, 노화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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