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공정한 기회 보장하라"…'직수저' 물려주는 고용세습에 칼 뺀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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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노동조합은 회사가 5년 만에 생산직 신규 채용에 나선 지난해 11월 '정년퇴직자와 25년 이상 장기근속자의 자녀를 우선 채용하라'고 회사에 요구했다.
정부가 단협에 '고용 세습' 조항이 있는 기업 60여 곳에 시정명령을 내리기로 한 것은 청년들에게 공정한 취업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고용 세습 조항에 대해 "이미 사문화됐다"며 "단체협약으로 실제 채용된 사례는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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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효성·STX엔진·OCI 등
위법한 우선·특별채용 단협
기득권 노조의 상징 같은 조항
기아 노조 "노조 죽이기" 반발
세습 유지해도 '솜방망이 처벌'
"법 개정 처벌 수위 확 높여야"
기아 노동조합은 회사가 5년 만에 생산직 신규 채용에 나선 지난해 11월 ‘정년퇴직자와 25년 이상 장기근속자의 자녀를 우선 채용하라’고 회사에 요구했다. ‘고용 세습’ 성격의 단체협약 제27조 1항을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업계에서는 “자녀에게 금수저를 넘어 ‘직(職)수저’를 물려주겠다는 현대판 음서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신의 직장’까지 물려주겠다는 노조
정부가 단협에 ‘고용 세습’ 조항이 있는 기업 60여 곳에 시정명령을 내리기로 한 것은 청년들에게 공정한 취업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지난 정부에서 서울교통공사 등이 임직원 친인척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고용 세습이 드러나 많은 청년을 좌절하게 했다”며 “청년들이 노동시장 진입 단계부터 불합리하게 차별받지 않도록 시정명령을 내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공정한 채용 기회 보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과제이기도 하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기아는 많은 취업 준비생이 선망하는 대기업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직원 평균 연봉이 1억100만원에 이른다. 25년을 근무하면 퇴직한 뒤에도 75세까지 3년마다 차량을 25% 싸게 살 수 있는 등 복지 혜택도 엄청나다. 부모가 기아에 다녔다는 이유로 ‘신의 직장’ 입사 기회를 우선 제공받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지적이 쏟아지는 배경이다. 현대자동차가 2019년 단체협약에서 고용 세습 조항을 삭제한 것도 사회적 비난 여론을 감안한 조치였다.
시정명령 대상인 일부 기업은 직원 자녀에 대해 ‘가점’ 제도까지 두고 있다. 현대위아는 단체협약에서 정년퇴직자 자녀 등의 채용과 관련, 가점을 부여할 수 있도록 했다. 헌법 11조 제1항(평등권) 등을 위반한 것으로, 모두 이번 시정명령 대상이다.
시정명령 안 지켜도 솜방망이 처벌
정부의 시정명령에 기아 노조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노조 죽이기에 앞장서는 정부에 맞서 단체협약 사수 투쟁에 총력을 다할 것”이라며 “강력히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아 노조가 반발하는 것은 조합원 중 상당수가 취업을 앞둔 자녀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기아는 작년 기준 50세 이상 임직원이 1만8874명으로, 전체의 53.2%에 이른다. 퇴직자도 급격히 늘고 있다. 기아의 50~60대 퇴직자는 2019년 570명에서 지난해 904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노동계는 고용 세습 조항에 대해 “이미 사문화됐다”며 “단체협약으로 실제 채용된 사례는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정부는 노동계 주장대로 사문화됐다면 폐지하면 될 일이라고 맞서고 있다. 그대로 둘 경우 언제든 악용될 수 있고 직원 자녀 우선 채용 사실을 기업 밖에서는 알기 어렵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주요 기업 노조가 정부의 시정 조치를 그대로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노조가 고용 세습 조항을 그대로 유지했을 때 받게 될 법적 처벌 수위는 ‘500만원 이하 벌금’에 불과하다. 보다 엄중한 처벌 규정 없이는 고용 세습을 뿌리 뽑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은 이 이슈에 침묵을 지키고 있다. 고용 세습 이슈가 터질 때마다 관련 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이렇다 할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국회 회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되곤 했다.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5월 “공공기관 고용 세습을 막겠다”며 발의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도 별다른 논의 없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법 개정을 통해 처벌 수위를 확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일규/박한신/김형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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