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오염된 말

장박원 기자(jangbak@mk.co.kr) 2022. 11. 22.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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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동정담 ◆

공자는 정치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바른말(正名)'을 꼽았다. 정치를 하게 되면 무엇부터 할 것이냐는 제자 자로의 질문에 곧바로 '정명'이라고 답했다. 영향력이 큰 정치인이 불순한 의도로 말의 본래 뜻을 왜곡하는 행태를 가장 나쁜 것으로 봤다. 공자의 이런 신념을 보여준 사건이 '순자' 유좌(宥坐) 편에 나온다.

공자는 노나라 검찰총장 격인 사구로 임명되자마자 '소정묘'라는 자를 처형한다. 소정묘는 당시 말 잘하기로 소문난 명사였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를 죽이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었다. 제자 몇 명이 소정묘의 형 집행을 만류했다. 하지만 공자는 단호했다. "사람에게 악한 것이 다섯 가지가 있다. 도둑질은 여기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전후 사정을 잘 알고 있으면서 음험한 것, 편파적이면서 고집스러운 것, 추잡한 일에 박식한 것, 말에 거짓이 있으면서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것, 그릇된 일을 일삼으면서도 겉으로는 번지르르하게 보이는 것이다. 이 중 하나만 있어도 처벌을 면할 수 없는데 소정묘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 이런 자를 놔두면 정치가 바로 설 수 없다." 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게 된 일도 왜곡된 말에 배심원들이 넘어갔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혐의는 신에 대한 불경과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것이다. 억지였다. 소크라테스는 현상과 본질의 차이를 논구하며 진리를 추구했고 청년들이 소피스트의 궤변에 현혹되는 것을 막으려 했을 뿐이다. 고발자는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반대파인 소크라테스를 제거하려고 교묘한 말로 없는 사실을 꾸며냈다.

요즘 한국 정치판도 오염된 말이 넘친다. 대통령은 특정 언론의 전용기 탑승 배제를 '헌법 수호'라고 했다. "가짜뉴스에 대한 대응이었다"고 하면 충분했는데 너무 나갔다. 야당 대표는 검찰 수사를 '정치 탄압'이라고 바꿔 말한다. 오염된 말로 '사실'이 뒤틀리다 보니 건전한 논쟁은 사라지고 억지만 판친다. 공자가 염려했던 일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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