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후진적 구속제도 전면 개혁 시급하다

2022. 11. 2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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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민 변호사, 前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법원 영장 기각 뒤 김봉현 도주

이상직 재판 지연과 보석 석방

전주환은 영장 기각 이후 살인

검찰 구속기간은 최대 20일

구속사유 판단은 판사 맘대로

범죄의 경중 따른 차등화 필요

1조6700억 원의 피해를 남긴 라임자산운용 사태의 주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1심 결심공판 당일 전자팔찌를 끊고 도주한 사건은 우리 구속제도의 후진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미 2019년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도주해 5개월간 도피생활을 하다 검거된 전력이 있고, 지난해 7월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은 법원에서 김봉현이 도주를 권유하고 자금과 차량 지원도 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도주 직전 조카 차량의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제거하고 밀항을 시도한 움직임이 있어 검찰이 위치추적 통신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이 기각했다. 징역 30년 선고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별건 사기 혐의로 2차례 청구한 구속영장도 기각됐다. 선고를 앞두고 변호인단 전원이 사임했고, 검찰은 최후 수단으로 보석취소청구를 했다. 도주 이후에야 법원이 보석취소를 했지만 김봉현의 행방은 묘연하다.

우리의 구속제도는 낡고 허술해 변화한 범죄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지 오래다. 범죄의 경중과 상관없이 구속 기간이 똑같이 규정돼 있어 장시간이 걸리는 중대범죄의 수사와 재판에 어려움이 많다. 1심 법원 구속 기간은 6개월인데, 이스타항공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된 이상직은 이를 이용해 7차례 변호인단을 교체하며 재판을 미뤘고 법원은 구속 기간 만료를 앞두고 보석으로 석방했다. 대규모 기업범죄나 6개월∼1년씩 걸리는 국제형사사법 공조가 필요한 사건도 검찰 구속 기간은 최대 20일에 불과하다. 구속 사유도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구속 사유는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경우’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경우’ ‘일정한 주거가 없는 경우’다. 범죄의 중대성이나 재범의 위험성은 독자적인 구속 사유가 아니라 필요적 고려 사항에 불과하다.

구속 사유에 대한 판단은 판사의 재량이다. 피의자가 자백하는 사건에서는 ‘자백하므로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고 영장을 기각하고, 부인하는 사건에서는 ‘부인하므로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기각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구속 여부에 대한 영장전담판사의 결정에 불복할 방법도 없다. 실무상 영장 재청구를 하지만, 고등법원에서 판단하는 게 아니라 같은 심급의 지방법원에서 판단하므로 한계가 있다. 그 결과 상급심을 통한 구속영장 발부 기준이 확립돼 있지 않고, 영장 발부 여부에 대한 예측 가능성도 떨어진다. 그에 따른 사법 불신은 심해질 수밖에 없고, 잘못된 판단을 한 영장전담판사에 대해 책임을 묻는 장치도 없다.

프랑스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형사사법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불구속 피의자에 대한 다양한 제한 조치와 구속 제도를 갖추고 있다. 불구속 피의자는 공범이나 피해자 접촉 금지, 특정 직업 취업 금지 등 17개의 의무를 부과하는 사법통제명령의 대상이다. 구속은 범죄의 경중에 따라 4개월부터 최대 4년까지 가능하고 2009년에는 불구속과 구속의 중간에 ‘전자발찌 부착 가택구금 제도’를 새로 도입했다. 1심 석방구금판사의 구속 및 석방 결정에 대해서는 항고가 가능하고, 고등법원 예심수사부가 1심 석방구금판사의 피의자 신병에 대한 모든 결정을 통제한다. 미국과 독일도 구속 기간의 제한은 없다.

2021년 불구속으로 재판받다가 실형이 확정됐으나 도주한 자유형 미집행자는 5345명이다. 2019년 4413명, 2020년 4548명에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불구속 수사 원칙이 시행된 지 오래지만,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이유다. 신당역 살인사건의 범인 전주환도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후 범행을 했다. 법원의 오판이고 명백한 사법의 실패다. 사법의 실패가 반복되면 법치주의의 근간을 위협한다. 호화 변호인단의 도움을 받은 김봉현, 이상직의 경우 ‘유전무죄 무전유죄’ 논란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구속제도의 근본적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조건부 석방제’가 의원입법안으로 국회에 제출돼 있지만 내용도 허술하다. 그리고 이는 땜질식으로 다룰 사안이 아니다. 포괄적인 구속제도 개혁 방안이 논의돼야 하고 범죄의 경중에 따른 구속 기간의 차등화, 충분한 수사와 재판이 가능한 구속 기간의 확대, 영장항고제 도입은 최우선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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