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연봉 2700만원대...외동딸은 8년째 하버드대 유학 중 [송의달 LIVE]

송의달 에디터 2022. 11. 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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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중국인들은 꿈도 못꾸는 後光·권력·돈의 힘...중국 역대 최고지도자 중 最高 학력 시진핑 총서기 가족 [차이나 프리즘]

지난달 중국공산당 총서기 3연임(連任)에 성공한 시진핑(習近平·69) 국가주석 가족 구성원 3명은 화려한 학벌(學閥)을 쌓았습니다. 본인은 2002년 칭화(淸華)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외동딸 시밍쩌(사진 왼쪽)가 어머니 펑리위안 여사와 함께 찍은 어린 시절 사진. 중화권 매체 보쉰(博訊)은 2015년 3월 "미국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귀국한 시밍쩌가 시 총서기의 온라인 팬클럽에 촬영 사진을 제공하는 등 아버지의 ‘이미지 컨설턴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조선일보DB

부인인 펑리위안(彭麗媛·60) 여사는 산둥(山東)예술학교 졸업후 중국음악학원에서 민족성악 전공으로 1990년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산둥예술학원 초빙교수, 상하이사범대학 음악학원 겸임교수를 거쳐 2012년부터 5년 동안 중국 인민해방군예술학원 총장을 지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난 무남독녀인 시밍저(習明澤·1992년생)는 항저우외국어고등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공부했고 저장(浙江)대학에 입학했다가 2010년 미국 하버드대로 유학 가 4년 공부했습니다. 중국에 돌아와 지내다가 2019년부터 다시 같은 대학 대학원에 등록해 있습니다. 햇수로만 8년째 미국 유학 중입니다. 이들은 어떻게 중국의 일반 서민[老百姓]들은 꿈도 못꾸는 초호화 학력을 가졌고, 그것은 온당한 걸까요?

◇시진핑 가족 3명 모두 석·박사 학위 소지

글로벌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와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인 바이두(百度)에 기록된 시진핑의 박사학위 관련 내용을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시진핑은 중국 남부 푸젠(福建)성에서 간부로 일하던 1998년 칭화대 인문사회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직장 생활을 하며 공부하는 신분(在职研究生)으로 4년 만인 2002년 마르크스주의 이론 및 사상·정치교육 전공 논문으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 제목은 ‘中國農村市場化硏究(중국농촌시장화연구)’이다.”

1911년 설립된 칭화학당(清華學堂)을 모태로 하는 칭화대학교는 2022년 QS 세계 대학 랭킹 기준 전 세계 17위에 올라 있습니니다. ‘베이징대는 문과, 칭화대는 이공계’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명문대로 꼽힙니다.

베이징에 있는 칭화대학교 정문. 칭화대는 중국 정계와 재계, 학계 등에서 활동하는 동문을 많이 배출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은 이 대학교 동문이다.
칭화대학교 홈페이지/인터넷 캡처

중국 정계에서는 칭화대를 졸업한 주룽지(朱镕基·94)와 후진타오(胡錦濤·80)가 각각 1998년 국무원 총리와 2002년 중공 총서기에 취임했습니다. 중국 정·관계에 막강한 동문 파워를 반영해 칭화대는 당시 ‘대청제국(大淸帝國)’으로 불렸습니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제16기 중공 정치국에서는 9명의 상무위원 가운데 후진타오, 우방궈, 황쥐, 우관정 등 4명이 칭화대 동문이었지요.

문화혁명(1966~76년)이 끝나갈 무렵인 1975년, 시진핑은 ‘공농병(工農兵) 추천 청강생’ 신분으로 칭화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런 그가 졸업 19년 만에 다시 대학원에 입학하는 열정을 보인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칭화대 법학박사 학위’는 주경야독(晝耕夜讀)하는 공산당 고위 간부라는 이미지 구축에도 안성맞춤입니다.

◇칭화대 법학박사 논문, 시진핑이 진짜 썼나?

그런데 2013년 8월 11일 영국 더 타임스(The Times)의 일요판인 선데이타임스(Sunday Times)는 “시진핑씨, 당신은 그 법학박사 학위를 스스로 받았습니까?(Objection, Mr Xi. Did you earn that law degree?)”라는 제목의 홍콩발(發) 단독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이 신문은 “시진핑이 쓴 161쪽 분량의 박사학위 논문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학위 명칭인 법학(法學)과 거의 관계가 없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논문을 작성했다는 의심이 든다”고 밝혔습니다.

2013년 8월11일자 영국 더 타임스(The Times)의 일요일자 신문인 선데이 타임스 (The Sunday Times) 보도 기사. 이 신문은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칭화대 박사학위 논문을 입수해 대필 및 표절 의혹을 지적했다./인터넷 캡처

구체적으로 “해당 박사논문 내용이 연구의 독자성이 부족하며, 정부 조사 보고와 외국의 연구 성과를 합쳐서 전문 팀이 대필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습니다. 시진핑이 박사논문에서 직접 ‘큰 도움’을 줬다고 언급한 3명의 연구자와 1명의 자료 수집자가 많은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추론입니다.

실제로 1998년 칭화대 대학원 입학 당시 푸젠성(福建省) 부서기(副書記)였던 시진핑은 99년 푸젠성 부성장으로 승진했고 2000년에는 푸젠성 성장이 됐습니다. 푸젠성의 당시 인구는 3500만명에 달했습니다. 공무(公務)에 바빴던 시진핑이 박사과정을 다니면서 4년 만에 논문을 완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힘든 일입니다. 홍콩의 중국 전문가 우밍(吳鳴)은 이렇게 분석합니다.

“박사학위 과정의 전공은 전심전력으로 몰두해야만 하고, 여러 해의 시간을 쏟아야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시진핑은 지방 제후(諸侯)를 맡아 매일 온갖 정사(政事)를 처리해야 했을텐데 논문 쓸 시간이 어디 있었겠는가? 베이징은 또 푸저우로부터 10만8000리(里)나 떨어져 있다. 그가 어떻게 그 먼 곳에서 학문을 탐구하고 교수의 지도를 받을 수 있었겠는가?”

푸젠성(福建省) 성장 시절인 2001년의 시진핑 총서기/중국공산당신문망

우밍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칭화대학교 규정에는 ‘박사학위를 신청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미 석사학위를 취득했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시진핑의 경력에는 결코 석사 학위가 없는데 그는 어떻게 직접 박사학위를 신청할 수 있었는가? 시진핑의 지도교수인 류메이쉰(劉美珣) 여사는 칭화대 경제학연구소 소장이었다. 경제학 교수가 법학박사 논문의 지도교수가 될 수 있는가? <중국 농촌시장화 연구>라는 법학 및 법률과 관계없는 논문으로 법학박사 학위를 신청한 것이 사리에 맞는가?”

한 마디로 시진핑이 자기 힘으로 박사과정 공부와 논문 작성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왜 시진핑은 무리수를 써가며 박사학위를 받았을까요? 가장 설득력있는 해석은 ‘학력(學歷) 콤플렉스’입니다.

◇시진핑의 평생 ‘학력 콤플렉스’

시진핑은 22세에 칭화대 화공과에 입학해 기초유기합성을 전공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중학교 3년 동안 거의 수업을 듣지 않아 학력 수준이 초등학교 졸업 단계에 머물렀다는 게 정설입니다. 고등학교 과정은 산시성 옌안의 산간지대에 하방(下放)되는 바람에 아예 건너뛰었지요.

문학사에 흥미를 갖고 있던 시진핑은 간단한 화학반응식 조차 알지 못해 대학교에 입학한 초기에 중학교 단계의 수학·물리·화학 등 기초 지식을 공부했습니다. 1979년 초 간신히 대학을 졸업한 시진핑은 이 때문에 평생 학력 열등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한때 그의 정치적 경쟁자였던 리커창(李克强) 총리만 해도 문화혁명이 끝난 1977년, 전국 대학입시에서 높은 경쟁률을 뚫고 베이징대 법학부에 합격한 수재(秀才)로 정식 법학박사 학위까지 받았습니다. 리커창은 대학 강의도 잘 못 알아들은 ‘청강생 시진핑’과 차원이 달랐습니다.

2002년 11월 15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중국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된 후진타오(왼쪽)가 새로 선임된 정치국 상무위원들과 함께 내외신 기자들 앞에 나서서 인사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후 총서기와 함께 중국 최고 권력기관인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된 나머지 8명은 후 총서기 다음으로 왼쪽부터 우방궈,원자바오,자칭린,쩡칭훙,황쥐,우관정,리창춘,뤄간 등이다. 이 가운데 후진타오를 포함한 4명이 칭화대를 졸업했다./조선일보DB

◇대학시절 절친 도움으로 박사학위...고속 승진으로 보답

시진핑의 전임자인 후진타오 총서기도 1959년 칭화대 수리공정학과에 정식 시험으로 입학·졸업한 엘리트였습니다. 늘 학력 콤플렉스를 갖고 있던 시진핑에게 좋은 기회가 생겼는데, 그것은 절친한 친구인 천시(陳希·69)가 1998년 당시 칭화대 부서기(부총장)를 맡고 있던 겁니다.

같은 나이, 같은 학년, 같은 학과, 같은 공농병 출신인 두 사람은 대학시절 형제보다 더 가까왔습니다. 낮에는 같은 강의실과 같은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같은 기숙사 동(棟)의 같은 방, 같은 이층침대의 위아래 칸을 각각 썼습니다. 차분하고 친절한 성격에 타고난 이공(理工)학도인 천시는 시진핑의 수업과 시험에 알게 모르게 많은 도움을 줬는데, 시진핑의 박사과정 입학에도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2017년 10월 25일 제19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25명 정원의 정치국원으로 선출된 천시. 그는 시진핑 총서기의 대학교 동기동창이자 룸메이트로 절친한 사이이다. 시진핑의 박사과정 입학에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신화통신

시진핑은 아버지 시중쉰(習仲勳)의 정치적 몰락과 문화혁명에 따른 하방 생활로 시진핑은 중고교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막역한 친구인 천시의 도움으로 40대 중반까지 갖고 있던 학력 및 지적(知的) 열등감을 일거에 해결했으니 엄청난 신세를 진 것입니다.

최고지도자가 된 시진핑은 친구에게 ‘보답’을 했습니다. 랴오닝(遼寧)성 부서기와 중국과학기술협회 당서기 등을 거쳐 천시를 공산당 중앙위원으로 밀어주며 고속출세 길을 열어준 것입니다. 천시(陳希)는 이후 2013년 4월 중공 중앙조직부 부부장→2017년 10월 중공 정치국원(政治局員) 겸 당 중앙조직부장→중공 중앙당교 교장(校長)을 거쳐 지금은 국가행정학원 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칭화대에서 26년간 화학공학과 교수로 있던 그의 ‘벼락 출세’는 시진핑의 아주 특별한 배려가 아니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대목에서 중국은 ‘법치(法治) 국가’가 아니라 권력자와의 친소 관계에 따라 사람의 운명이 뒤바뀌는 전(前) 근대적 ‘인치(人治) 국가’임을 우리는 거듭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진핑은 2019년 4월 초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공학)를 받았습니다. 그가 해외에서 받은 1호 명예박사학위였습니다. 시진핑은 두 달 후인 그해 6월6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푸틴 대통령의 모교인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6월6일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모교인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고 푸틴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다. /조선일보DB
블라드미르 푸틴 대통령이 2019년 4월 중국 베이징 칭화대에서 열린 명예박사학위 수여식에서 시진핑과 나란히 서서 박수치고 있다.

푸틴은 이에 앞서그해 4월 말 베이징에 있는 칭화대학교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로써 시진핑과 푸틴은 서로 같은 대학의 ‘이중(二重) 동문[Dual Alumni]’이 됐습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공산주의라는 이념과 반미 전선(反美 前線)이라는 공통점에다 독재자들간의 우애까지 겹쳐 단단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펑리위안은 줄리어드음대 명예박사...남편 후광 아니면 불가능

시진핑의 부인으로 중국의 퍼스트 레이디인 펑리위안(彭麗媛·1962~ )은 2017년 12월 6일 미국 뉴욕 줄리어드음대에서 명예 음악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1990년 5월 펑리위안은 중국음악학원 대학원 과정을 수료하고 석사 논문이 통과되어 중국 사상 최초의 민족음악석사학위를 받은 주인공입니다.

2002년 모교인 산둥예술학원 객좌교수로 초빙받았고, 2004년 9월엔 중국음악학원 객좌교수가 됐고, 베이징대학 겸직교수도 지냈습니다. 중국의 ‘국민가수’로 불리는 유명 가수 출신인 펑 여사는, 2015년 10월 시진핑의 미국 방문 기간 중 짬을 내 줄리아드 음대에서 중국 민요(民謠)를 직접 시범 지도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시진핑의 부인이 아니었다면 이런 직위를 가질 수 있었을까요? 더욱이 미국에서 명예 박사학위와 베이징대학 교수 같은 자리는, 남편의 막강한 후광(後光) 없이는 불가능했을 게 분명합니다.

2017년 12월 중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 국가주석 부인 펑리위안 여사에게 선물 받은 '중국 민가'. 이 CD에는 국민가수로 불렸던 펑리위안 여사가 직접 부른 노래가 녹음되어 있다./조선일보DB

◇딸 시밍쩌, 하버드대 학부 졸업후 2019년 대학원에 다시 등록

외동딸 시밍쩌의 미국 유학도 마찬가지입니다. 1992년 6월 푸젠성 성도(省都)인 푸저우(福州)시에서 태어난 시밍쩌의 이름은 ‘바르고 밝게[明], 세상에 이로운[澤]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 할아버지 시중쉰이 지었습니다. 2008년 5월 쓰촨성 대지진 때, 시밍쩌는 학교를 쉬고 피해 현장에서 7일동안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시진핑이 국가 부주석이던 2010년 5월 시밍쩌는 부모의 반대를 이겨내고 미국 하버드대로 유학갔습니다. 현지에 파견된 중국 비밀경호원들이 그를 24시간 밀착 경호했고, 미국 연방수사국(FBI)도 전방위 경호했습니다.

하버드대학 안에서 시밍쩌를 직접 목격하고 취재한 미네무라 겐지(峯村健司) 일본 아사히신문(朝日新聞) 기자는 “2014년 5월 29일 하버드대 363회 졸업식에서 시밍쩌는 추천(楚震)이라는 가명(假名)으로 호명돼 심리학 학사 졸업장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시진핑의 외동딸인 시밍쩌는 2010년부터 4년동안 미국 하버드대 학부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추천(楚震)'이라는 가명(假名)을 쓴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은 미국 이포크 타임스(The Epoch Times)에 실린 시밍쩌 사진/이포크 타임스 제공
하버드대학의 기숙사인 아담스 하우스(Adams House). 지은지 100년 넘은 곳이다./하버드대 홈페이지

그녀는 4년 간의 재학기간 중 학업을 제외한 대외 접촉이나 사교활동을 삼갔고 당시 중국 유학생들이 즐겨하던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SNS)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 달 사용료 500달러 정도인 학내 기숙사인 ‘아담스 하우스’에서 투명인간처럼 생활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시진핑 연봉 3000만원 미만...어떻게 美 유학 가능하나?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하려면 유학생이 검소하게 살아도 학비·생활비 등을 포함해 연간 8000만~9000만원이 필요합니다. 2019년 IMF(국제통화기금)와 CIA(미국 중앙정보국)의 자료를 분석한 미국 일간지 USA 투데이와 CNN 보도 등을 종합하면, 시진핑 국가주석의 연봉은 약 2만2000달러(약 2700만원)입니다. 당 총서기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등 3개 직책을 모두 합해도 한달 급여는 871만원쯤입니다. 시진핑 부부가 번 수입 대부분을 외동딸 유학 비용에 다 써야 합니다.

하버드대 학부 졸업 후 중국에 돌아왔던 시밍쩌는 2019년 하버드대 대학원 과정에 재등록해 공부하고 있다고 비키 하트즐러(Vicky Hartzler·공화당) 미국 연방하원의원이 2022년 2월 보도자료에서 밝혔습니다. 대학원 과정 공부에도 많은 비용이 듭니다. 그렇지만 특별한 변화가 없다면, 아버지에 이어 딸 시밍쩌도 박사학위를, 그것도 중국의 숙적인 미국의 심장부인 하버드대학에서 받는다는 소식을 우리는 조만간 접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전 세계 국가수반을 통틀어 매우 희귀한 ‘부녀(父女) 박사’ 가문이 탄생합니다.

그것은 그러나 권력자에게 돈·권력·명예가 집중되고 이에 대한 견제와 비판이 일절 용납되지 않는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중국 사회가 자유롭고 개방되고 공정한 사회, 연줄이나 배경 없는 평범한 중국인도 자신의 꿈[Chinese Dream]을 이룰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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