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어디까지 아세요] 한라산 가는 길목의 새침데기 그녀, 오! 사라!

이승태 여행작가, 오름학교 교장 2022. 11. 22.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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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오름
성판악에서 한라산 백록담 가는 산길 1,324m에 자리한 물을 품은 오름
아침나절에 본 사라오름과 제주 동부의 오름들. 멀리 성산일출봉까지 가늠된다.

368개나 된다는 제주의 숱한 오름 중에서 정상에 물웅덩이를 가진 곳은 아홉 개뿐이다. 금오름과 이시돌목장의 세미소, 어리목의 어승생악, 분화구 안에 문강사라는 절이 들어선 원당봉과 동부 중산간의 물영아리까지 다섯 곳은 탐방이 가능하다.

사려니숲 안의 물찻오름과 설문대할망이 자신의 큰 키를 자랑하다가 빠져 죽었다는 전설이 어린 물장오리, 동수악은 출입이 통제된 터라 더욱 신비감을 더한다. 마지막 하나가 한라산국립공원 고지대에 숨은 듯 자리한 사라오름이다.

여름날, 물이 가득 찬 사라오름. 바닥에 자란 이끼로 빛깔이 신비롭기 그지없다.

가장 높은 산정호수 오름

'사라'의 뜻에 관해서는 확실히 알려진 게 없다. 노산 이은상은 '신성한 곳'이라는 의미의 옛 말 ''에서 왔다고 했으나 좀 더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오름의 대부 김종철 선생은 '신라新羅를 사라斯羅라고도 했던 것으로 미뤄 이와 맥을 같이하는 말일 수도 있음직하다'고 했으나 정확한 의미를 알 수는 없다고 했다. 이처럼 유래가 아리송하지만 참 근사하고 글로벌한 이름인 것만은 확실하다.

산정호수를 가진 오름 중 가장 높은 사라오름(1,324m)은 한라산 성판악에서 백록담으로 가는 탐방로 중간에 있다. 때문에 오름을 보려면 여느 오름과 달리 꽤 긴 시간 산행을 감내해야 한다. 성판악을 출발해 산길 따라 5.8km 오른 곳에서 왼쪽으로 사라오름 탐방로가 갈린다. 여기서도 살짝 가파른 길 600m를 더 가야 얼굴을 보여 주니 이런 새침데기가 또 있을까!

사라오름 산정호수 바닥에 사는 이끼들. 물속에서 광합성을 하며 살아남는 게 신기하다.

사라오름은 한때 출입이 금지된 땅이었다. 한라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후 16년간 사람의 출입이 막혀 있던 사라오름이 다시 빗장을 풀고 일반에 개방된 것은 2010년 11월 1일이다. 이때 탐방로를 정비하고, 분화구 한쪽에 목재데크를 깔았으며 정상의 전망대도 만들었다.

오름 정상부엔 둘레 250m쯤의 둥근 분화구가 1.2km 길이의 야트막한 화구벽에 둘러싸인 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평평한 바닥의 산정호수는 접시의 물처럼 수면이 잔잔하다. 이 물은 한라산에 사는 동물들의 생명수여서 사라오름을 찾다 보면 한가로이 풀을 뜯거나 물을 마시러 온 노루나 산짐승을 만나기도 한다.

호수의 깊이는 보통 성인 허벅지 정도지만 여름날 폭우가 내리고 나면 물이 불어 파도가 칠 정도로 가득 차 장관이다. 겨울이면 얼음판이 되거나 눈에 덮이고, 가물 때는 화산송이로 가득한 바닥을 드러내어 사막이나 외계 행성같이 황량하다. 이처럼 강수량이나 시기에 따라 천의 얼굴을 가져서 갈 적마다 새로운 사라오름을 만나게 되니 탐방객의 걸음은 늘 설렌다.

하늘에서 본 사라오름과 한라산의 여름 풍광. 물이 찬 사라오름 굼부리가 설문대할망께 올리는 술잔처럼 보인다.
물이 가득 찬 여름날의 사라오름 굼부리의 산정호수. 주변 풍광을 그대로 투영하는 거울이다.

제주 최고의 명당, 사라오름

빈 몸으로 찾아오기도 숨이 가쁜 사라오름 분화구 안쪽에 몇 기의 무덤이 보인다. 예까지 어찌 상여를 메고 와서 묻었을까, 참 놀랍다. 알고 봤더니 사라오름이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제주 6대 음택혈 중 으뜸으로 치는 곳이라고 한다. 명당으로 소문 난 한라산 개미목과 영실보다 더 낫다고 하니 사람들이 사라오름에 조상의 묏자리를 쓰기 위해 별별 수를 다 썼을 듯싶다.

산정호수 왼쪽 가장자리를 따라 절반만 나무데크가 깔려 있다. 이 길을 따라 반대편까지 간 후 잠시 오르면 꽤 너른 전망대가 있는 정상이다. 전망대에 서니 풍수지리의 명당인지는 모르겠으나 조망으로는 가히 으뜸임을 알겠다. 두터운 구상나무 군락지 위로 백록담이 부드럽고도 강렬한 얼굴로 솟았다. 남서쪽으로 펼쳐진 광활한 숲의 바다…, 그 사이로 깊게 팬 수악계곡이 살아 꿈틀거리는 듯하다.

동쪽과 남쪽은 오름 천지다. 가까운 성널오름이 듬직하고, 남쪽으로 독특한 선을 보여 주는 논고악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틈새로 삐죽 얼굴을 내민 동수악도 반갑다. 전망대서 보이는 사라오름 서남쪽 사면은 온통 제주 조릿대로 덮였다. 이는 30년쯤 전에 발생한 산불 때문이란다.

드론을 날려 성널오름 쪽에서 사라오름을 보니 술잔이나 간장종지를 닮았다. 물이 차 있을 때는 주변과 하늘빛을 그대로 받아내는 거울에 다름 아니다. 특히 가을이 절정일 때 사라오름은 수면에 어린 단풍빛으로 비단을 깔아놓은 듯 황홀하다. 어쩌면 제주를 만들었다는 설문대할망도 한라산을 오가다 자신의 얼굴을 비춰볼 요량으로 사라오름을 만들었을지 모를 일이다. 아니면 설문대할망이 계절마다 자연의 풍미를 담아 마셨던 한 잔 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사라오름 맞은편에는 흙붉은오름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등성이의 조릿대 수풀 사이로 여기저기 드러나 보이는 화산송이가 유난히 붉다. 출입이 막혀 가볼 수 없기에 안타까운 곳이다.

백록담 부근에서 뒤돌아본 풍광. 고사한 구상나무가 더 많은 듯한 숲이 이국적이다.

편도 6.4km, 왕복 5시간은 잡아야

사라오름 탐방을 위해서는 아침 일찍, 최소 8시 이전에 성판악을 출발하는 게 좋다. 사라오름까지는 길이 완만하지만 왕복 12.8km로 5시간은 잡아야 한다.

대부분 탐방객은 사라오름 등반 후 등산로를 따라 백록담까지 올랐다가 반대편 관음사 코스로 내려선다. 이 코스를 산행하는 중간에 잠시 사라오름을 들르는 것이다. 그럴 경우 안전한 탐방을 위해서 12시 30분 전에 진달래밭대피소를 통과해야 하고, 정상에서 관음사 쪽으로는 14시 이전에 내려서야 한다. 정상에서 관음사 탐방로 입구까지가 8.7km로 5시간은 족히 걸리기 때문이다.

백록담을 오르려는 이들 대부분이 성판악 코스를 이용한다. 때문에 성판악 주차장은 늘 초만원이다. 버스를 이용하는 편이 더 나은 이유다. 한라산에서 성판악과 관음사를 잇는 탐방로는 사전예약제를 실시하고 있다. 고시 같은 탐방예약에 성공해야 입장이 가능하다.

하늘에서 본 백록담. 긴 가뭄에 장사 없는 듯, 물이 말랐다.

교통

제주국제공항·제주버스터미널에서 서귀포환승정류장을 오가는 181번 버스가 성판악을 지난다. 서귀포중앙로터리에서 출발하는 첫 차는 06:10, 막차는 22:20. 제주버스터미널에서 서귀포버스터미널까지 왕복하는 281번 버스도 성판악에 선다. 문의 동진여객 064-757-5714.

주변 볼거리

한라생태숲 한때 목장으로 사용하며 망가졌던 숲을 생태숲으로 되살려 2009년에 개장했다. 난대식물부터 한라산 고산식물까지 다양한 제주의 자생식물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오전 10시와 오후 2시마다 숲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넓은 주차장을 갖췄고, 입장은 무료다.

한라생태숲을 출발해 이웃한 족은개월이오름과 절물오름, 거친오름까지 이어지는 8km의 '숫르편백숲길'이 인기다. 제주 최고의 숲길을 만날 수 있다. 문의 064-710-8688.

고사리육개장.

맛집

고사리육개장만큼 제주스러운 음식도 드물 것이다. 해산물이 귀했던 제주 중산간 지역을 중심으로 자주 만들어 먹었고, 잔칫상에도 빠지지 않던 향토음식이다. 소고기와 대파, 무, 고사리로 만드는 육지의 육개장과 달리 돼지고기 삶은 육수에 고사리와 돼지고기, 메밀가루를 넣고 걸쭉하게 끓여낸다. '돼지고기 육개장'이라고도 부른다.

제주시 삼도2동의 '우진해장국(064-757-3393)'은 도민들이 해장국으로 즐겨 찾던 곳으로, 줄 서서 먹는 고사리육개장집이다. 몸국도 잘한다.

월간산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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