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가상자산 큰손 위믹스 앞에서 절절매는 거래소들

이정수 기자 2022. 11. 2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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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수 금융부 기자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위메이드에 특혜를 주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만약 다른 가상화폐 발행사가 위메이드와 비슷한 행태를 벌였다고 해도 한 달 넘게 처분을 내리지 않고 질질 끌었겠는가.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

지난 17일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 연합체인 DAXA가 위메이드의 자체 발행 코인 ‘위믹스’에 대한 상장폐지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결과 발표를 또 1주일 연장했다. 당장 DAXA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졌다. 가상자산 업계를 출렁이게 할 만한 거대 사건임에도, DAXA가 이 사건을 한 달 가까이 질질 끌고 있어서다.

일각에서는 DAXA가 과연 필요한 기관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됐다. 상폐 관련 원칙을 정했다면 이에 따르면 될 터인데, 왜 이리 오래 걸리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것이다. 위믹스 상폐 여부에 따라 비슷한 논란을 지닌 상당수의 코인의 운명이 결정되는 만큼, 신속하고 적절한 결론을 빨리 내야 한다는 의견도 심심찮게 들린다.

업계에서는 거래소들이 위믹스 사태를 두고 불공정 거래를 야기할 만한 위법 행위라고 판단했음에도, 정작 원칙대로 위메이드에 대해 합당한 조처를 내리는 데 계속 주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위메이드는 당초 위믹스를 발행하면서 각 거래소에 2억4957만개의 화폐를 발행하겠다고 통보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7245만개, 약 30%의 물량을 더 발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진 직후 위믹스는 희소성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가격이 하루 만에 25% 넘게 폭락했다.

거래소들은 이번 사태가 중대한 시장 기만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위메이드 측에 상세히 소명하라고 요구했다. 위메이드는 소명에도 성실하게 임하지 않았다. DAXA는 위믹스가 소명절차 기간 동안 제출한 자료에 일부 오류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위메이드는 위믹스 물량을 ‘뻥튀기’한 혐의로 투자 유의 종목 지정을 받았지만, 해명 자료를 내는 데도 불성실했다.

오히려 위메이드는 위세를 과시하기도 했다. 위메이드 측은 “위믹스의 상장을 폐지할 경우 엄청난 투자자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며 적반하장 태도를 보였다.

상황이 이와 같이 전개되자 거래소들이 가상자산 시장의 큰손 역할을 해 온 위메이드 눈치를 심하게 보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국내 대표 게임사 중 하나인 위메이드는 게임과 가상자산 기능을 결합해 시장 규모를 키우는데 일조해 왔다. 올 들어 비트코인, 이더리움을 비롯한 가상화폐 가격이 속절없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위메이드가 발행한 위믹스는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신종 코인이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백번 양보해 위와 같은 점을 고려한다 해도 위메이드가 투자자들을 기만하는 행위를 묵과할 경우 시장 신뢰성이 훼손되는 일은 피하기 어렵다. 특히 엄격한 공시 관리와 까다로운 검증으로 시장 관리를 책임져야 할 거래소들이 원칙을 잊은 채 거대 발행사에 끌려 다니고 있다는 인상을 줄 경우 제 2, 3의 위믹스 사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최근 세계 3위 거래소인 FTX는 고객 투자금 유용과 횡령, 자전거래 의혹 등에 휩싸이며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을 나락에 빠뜨렸다. 제대로 된 법안이나 감독 규정도 마련돼 있지 못한 가상자산 시장이 가뜩이나 사기꾼이 판을 치는 곳이라는 불신을 받고 있는데, FTX가 제대로 불을 지폈다.

만약 거래소들이 투자자 기만 행위라고 규정한 위믹스 발행 문제에 대해 원칙 대신 솜방망이 처벌을 내릴 경우 국내에서도 가상자산 시장 전체에 대한 불신론이 거세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내 거래소들은 수익의 99%를 코인 거래 수수료에서 얻는다고 한다. 규모가 큰 가상화폐인 위믹스는 거래소들 입장에서는 결코 놓칠 수 없는 수익원일 것이다. 지금 제 살을 깎아 먹는 것 같은 고통을 감수하고 원칙에 입각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면,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는 후폭풍을 감당해야 할 처지에 몰릴 수 있다는 점을 거래소들이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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