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의 마음속 세상 풍경] [132] 밑져도 본전일까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2022. 11. 2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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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 자녀를 둔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이제 지원할 대학과 학과를 선택해야 하는데 도전했으면 하는 곳 시험을 자녀가 보지 않겠다고 해 고민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떠오르는 말이 ‘밑져야 본전’이다. 그런데 ‘밑져야 본전인데 한번 도전해보자’는 조언에 ‘다시는 실패를 경험하고 싶지 않다’는 답변이 나오는 일이 적지 않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고려하면 밑져야 본전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실패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지나치면 회피 행동이 강해져 내 삶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성공한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가면 증후군’도 내면에 ‘결국은 실패할 것’이란 두려움이 있다. 사람들이 추앙하는 성공한 자기 모습이 가면으로만 여겨져 그 두려움에 더 나아가지 못하거나 자신을 망치는 자기 파괴적 행동이 나오기도 한다.

‘실패 두려움’엔 ‘좋은 정보를 가진 신뢰할 수 있는 멘토’가 큰 도움이 된다. 자신을 깊이 내보일 수 있는, 신뢰하는 사람이 있다면 두려움을 회피하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다. 거꾸로 신뢰를 주는 데 중요한 요소는 상대방 마음에 공감하며 경청하는 것이다. ‘밑져야 본전’ 같은 그 나름의 합리적 방식을 이야기하고 싶은 욕구를 누르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말을 더 많이 했다면 상대방의 어려움에 대한 공감 소통은 그 대화에서 잘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두려움을 비정상적으로 보지 않고 자연스러움의 반응으로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 ‘나약하게 쓸데없는 이야기 하지 마’보다 ‘충분히 그럴 수 있어’ 하는 소통이 필요하다. 그냥 말없이 잘 경청해주는 소통이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상대방의 두려움이 좀 가라앉았을 때 실제 선택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려면 멘토도 자신만의 멘토링 네트워크가 있어야 한다.

이런 좋은 멘토가 있다면 자연스럽게 자기 성찰과 관점 전환을 할 마음의 여유와 용기를 얻는 데 도움이 된다. ‘두려움은 정상적인 것, 나약한 것이 아니야, 감정은 소중한 것이지만 정보의 하나일 뿐 내 삶의 절대적 결정 요인은 아니야’ 같은 식의 셀프 멘토링이 가능해진다.

강한 스트레스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과거에 비해 무기력과 두려움이 상당히 커진 상황이다.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을 넘어 ‘만년 번아웃’이란 용어가 유행이다. 그래서 액티브(active)가 강조되고 있다. ‘무기력, 두려움이 나를 누르지만 하기 싫어도 액티브하게 먼저 행동해보자’는 의미이다. 행동이 거꾸로 무기력에 빠진 내 마음에 의외의 강한 동기 에너지를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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