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개회식 ‘돈쭐’ 내줬지만…경험과 경기력은 살 수 없었다[카타르 스토리]

윤은용 기자 2022. 11. 21.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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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화 잔칫상’ 걷어찬 카타르 축구
2022 카타르 월드컵 개막전 카타르와 에콰도르의 경기가 열린 21일 카타르 알코르 알 베이트 경기장의 관중석 곳곳이 비어 있다. 알코르 | 권도현 기자
올림픽 못지 않은 개회식 스케일
좌석마다 선물 꾸러미…‘부’ 과시
월드컵 첫 도전이었던 에콰도르전
유효 슈팅 한 번 못 날리고 ‘완패’
사상 첫 개최국 개막전 패배 쓴맛

현지시간으로 20일 오후 5시40분(한국시간 20일 오후 11시40분) 카타르 알코르의 알베이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개회식은 카타르 역사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베두인들의 후한 인심, 그리고 자존심을 제대로 엿볼 수 있는 무대였다. 하지만 개회식에서 보인 그 자존심은, 마무리까지 아름답진 못했다.

■ 낙타에 선물 꾸러미까지…위용 ‘뿜뿜’

카타르에 이번 월드컵은 벼르고 벼른 기회였다. 카타르는 2010년 월드컵 유치전에서 미국과 치열한 경쟁을 벌인 끝에 가까스로 개최권을 따냈다. 사상 첫 중동에서 열리는 월드컵의 명분에 세계 굴지의 산유국이 내민 ‘오일 머니’의 파워를 더해 월드컵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그러나 이후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논란이 이어졌다. 개최지 선정에서의 뇌물 스캔들, 이주노동자들의 비참한 죽음 등에 대한 비판이 나오며 개최권을 박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었다. 카타르 입장에서는 그동안의 잡음을 상쇄하고도 남을 뭔가가 필요했다. 그게 바로 개회식이었다.

개회식 현장에는 독특한 볼거리들이 가득했다. 우선 경기장 입구를 지키는 낙타병들이 눈에 띄었다. 고대부터 아랍인들을 상징하는 병과였던 낙타병들을 보면서 남다른 위용이 느껴졌다. 그 낙타병들이 베두인들의 텐트 외관을 한 알베이트 스타디움과 맞물려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

개회식 자체의 스케일도 대단했다. 이탈리아의 명연출가 마르코 발리치의 주도 아래 개막을 하루 앞당기면서까지 준비한 개회식은 비록 길이나 규모는 작았어도, 그 화려함만큼은 올림픽 못지않았다. 여기에 6만석이 훌쩍 넘어가는 좌석 전부에 선물 꾸러미를 놔두며 막강한 부까지 과시했다. 카타르는 2036년 하계올림픽 유치에 도전하고 있는데, 이번 개회식을 통해 올림픽 개최에 대한 카타르의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반대로 K팝의 상징인 방탄소년단(BTS)의 정국이 약 3분 동안이나 단독공연을 하며 개회식의 백미를 장식한 것을 두고는 왠지 모를 ‘국뽕’이 차오르기도 했다.

■ 개회식 망친 카타르 축구

개회식으로 들뜬 카타르의 분위기를 망친 것은 다름 아닌 축구였다. 카타르는 이날 에콰도르에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0-2로 졌다. 월드컵 사상 최초로 개최국이 개막전에서 패한 달갑지 않은 새 역사의 주인공이 됐다. 전후반 90분 통틀어 유효슈팅 하나 날려보지 못한 완패였다. 전반 3분 만에 에콰도르의 골잡이 에네르 발렌시아(페네르바체)에게 내준 선제골이 이번 대회에서 처음 도입된 반자동 오프사이드(SAOT) 기술의 혜택을 받아 취소되는 행운을 잡았음에도 그랬다. 골을 아쉽게 놓친 발렌시아는 전반 16분과 31분 연달아 골을 몰아치며 카타르를 농락했다.

카타르의 경기력이 생각보다 좋지 못하자 팬들의 실망감도 극에 달했다. 이에 전반전이 끝나고 일찌감치 경기장을 떠나는 팬들이 줄을 이었다. 떠나는 카타르 팬들과는 다르게 경기장 반대편을 채운 노란색 물결의 에콰도르 팬들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열띤 응원전을 펼치며 대조를 이뤘다.

이날 아들딸을 포함해 가족 5명이 개막전을 보러 왔다는 아바스(52)는 “물론 쉽지 않은 경기가 될 것으로 예상은 했는데,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날 줄은 몰랐다”며 아쉬워했다. 떠나는 국민들을 바라보는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의 마음이 어땠을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알코르 |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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