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 독재 저항’ 아르헨티나 민주화 운동의 상징 보나피니 별세
군사 정부에 두 아들 희생되자
대통령궁 앞 광장 시계탑에서
반시계 방향 도는 시위 이끌어
급진적 반미주의 견지 논란도
아르헨티나 민주화 운동가 에베 데 보나피니 ‘5월 광장의 어머니들’ 회장이 별세했다. 향년 93세.
현지 매체 라나시온과 AP통신 등의 보도에 따르면 보나피니 회장의 아들 알레한드라는 20일(현지시간) 어머니가 라플라타에서 별세했다고 확인했다. 알레한드라는 보나피니 회장이 입원 중일 때 국민들이 보내준 환대와 지지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보나피니 회장은 오랫동안 지병을 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보나피니 회장은 아르헨티나의 대표적 민주화 운동 단체인 ‘5월 광장의 어머니들’ 공동 창립자다.
1928년 항구도시 에센나다에서 태어난 그는 18세에 결혼해 세 명의 아들을 낳았다. 초등학교 졸업이 최종 학력인 세 아들의 어머니가 아르헨티나 민주화 운동의 길로 들어선 것은 좌파 무장조직에서 활동하던 두 아들이 군사정부에 희생되면서다. 1977년 장남 호르헤가 군부에 체포됐고, 몇 달 후 둘째 라울도 군인들에게 끌려갔다.
두 아들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병원과 법원, 경찰서, 시신안치소를 오가던 보나피니 회장은 같은 처지의 여성들을 만나 공동 행동에 나섰다. 1977년 4월30일 어머니 14명은 아르헨티나 대통령궁 앞 5월 광장에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광장 한복판의 시계탑 주위를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시위를 시작했다.
1977년 말부터 어머니들은 실종된 자녀들을 상징하는 아기 기저귀 천을 머리에 둘렀다. 흰색 수건은 그 뒤 ‘5월 광장의 어머니들’의 상징이 됐다. 당시 군사정부는 3명 이상 집회를 금지하고 있었으나 어머니들은 목요일마다 시위를 이어갔다. 군사정부는 리더 격이었던 아수세나 비야플로르를 납치해 살해하는 등 탄압했으나, 어머니들의 결속을 깨지 못했다.
1976년 쿠데타로 집권한 호르헤 비델라 군사정권이 1983년 퇴진할 때까지 정치인, 학자, 학생, 노동조합원 등을 비밀리에 납치해 고문·살해한 이른바 ‘더러운 전쟁’으로 3만명이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보나피니 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영리하고 활달한 전사이자 교사, 놀랍고 확신에 찬 혁명가였던 우리 아이들을 대신해 발언하고 싶었다”면서 “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 시선, 심장, 숨결이었다”고 말했다.
군사독재 종식 3년 뒤인 1986년 ‘5월 광장의 어머니들’은 보나피니 회장이 이끄는 보다 급진적인 조직과 법정 투쟁에 집중하는 보다 온건한 조직으로 분리됐다.
민주화 이후 보나피니 회장은 급진적인 반미주의를 견지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2001년 9·11 테러 발생 후 그는 “나는 행복하다. 나는 위선자가 되고 싶지 않다. 나는 (9·11에 대해)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은 중남미 공산주의 확산 방지를 이유로 비델라 정권의 인권탄압을 묵인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2016년에는 저소득층 주택 지원사업과 관련한 공금 횡령 재판의 증언을 거부해 체포 영장이 발부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검찰은 ‘5월 광장의 어머니들’이 추진한 저소득층 주택 지원사업이 자금 부족 등의 이유로 중단된 이후 공금 횡령 여부를 수사해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8년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아르헨티나에서 ‘5월 광장 어머니들’ 회원들을 만나 한국의 민주화실천가족협의회 어머니들이 준비한 보라색 수건과 기념사진 등을 전달한 바 있다.
고인과 각별한 사이였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인권을 향한 투쟁의 전 세계적 상징이자 아르헨티나의 자랑”이라고 추모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3일간의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다고 라나시온은 전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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