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300조 쏟아붓고도 개막전 3대 굴욕
카타르, 92년 만에 개최국 첫판 패배
개최국 망신이었다.
카타르는 21일(한국 시각) 알코르의 알바이트 스타디움에서 에콰도르와 2022 월드컵 개막전을 치렀다. 도하 시내에서 북쪽으로 50여㎞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이 경기장은 과거 사막 유목민들이 지냈던 전통 천막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지어졌다.
미국 배우 모건 프리먼을 등장시킨 개막식의 주제도 인류 화합이었다. ‘축구가 지구촌 부족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모두의 천막’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그룹 BTS 멤버인 정국은 대회 공식 주제가 ‘드리머스(Dreamers)’를 부르며 화려한 무대를 선보였다.
카타르는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 속에 조별리그 A조 1차전에 나섰다. 1930년 초대 대회부터 2018 러시아 대회까지 개최국이 첫 경기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던 기록(16승6무)을 이어갈지 관심을 모았다. 카타르는 앞서 자력으로는 월드컵에 나간 적이 없었고, 이번에 개최국 자격으로 본선 티켓을 쥐었다.
하지만 카타르는 타밈 빈 하마드 알 타니 자국 국왕과 6만여 관중의 기대를 허무하게 무너뜨렸다. 전반에만 에콰도르의 에네르 발렌시아에게 2골을 내주면서 결국 0대2로 완패했다. 월드컵 92년 역사상 처음으로 개최국이 첫 판에 지는 불명예를 맛봤다.
카타르는 중동에서 처음 열리는 이번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 우수 선수 영입에 공을 들였다. 26명 엔트리 중 10명이 귀화 선수였다. 대회를 앞두고 6개월가량 합숙 훈련을 하며 조직력을 다졌다. 스페인 출신인 펠릭스 산체스 감독에 대한 기대도 컸다. 2017년 부임한 그는 2019년 카타르를 아시안컵 우승으로 이끌었다. 당시 한국(8강)과 일본(결승) 등을 제압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아 이번 월드컵에도 지휘봉을 잡았다.
그러나 카타르는 첫 판부터 무기력한 경기력으로 팬들을 실망시켰다. 전술, 조직력, 개인기를 찾을 수 없었다. 투지조차 보이지 못했다. 전반 3분 만에 발렌시아에게 헤딩 골을 내줬다. 비디오 판독 끝에 오프사이드로 판정이 바뀌면서 한숨 돌리는가 싶던 카타르는 전반 16분 페널티킥 실점을 했다. 카타르 골키퍼가 페널티지역으로 파고들던 발렌시아의 다리를 손으로 잡아 넘어뜨렸다. 전진 수비 타이밍이 늦었다. 역대 개막전에서 페널티킥이 첫 골이 된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카타르는 전반 31분에 다시 발렌시아에게 헤딩골을 내줬다.
카타르는 후반 종료까지 제대로 된 반격을 펼쳐보지 못했다. 슈팅 5개(에콰도르 6개) 중 상대 골문 안쪽을 향한 유효 슈팅은 하나도 없었다. 4-4-2 전형으로 나선 에콰도르의 전방위 압박에 밀려 중앙선을 넘기조차 버거운 모습이었다. 상대 진영으로 한 번에 공을 보내 기회를 만들어보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카타르는 승부뿐 아니라 관전 매너에서도 졌다는 소리를 들었다. 상당수 홈 팬들은 전반이 끝나자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후반 20분 이후부터는 계속 관중이 빠져나가 알바이트 스타디움이 휑해졌다. 경기 초반 일방적인 응원전을 펼치던 카타르 관중이 침묵하고 힘을 잃자, 남쪽 스탠드에 위치한 에콰도르 팬들의 응원 함성이 경기장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ESPN은 “개막전에서 홈 관중이 전반을 마친 뒤 경기장을 떠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자국민 인구가 약 30만명밖에 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대다수가 축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ESPN은 또 “카타르가 대회 준비로 약 2200억달러(약 276조원) 이상을 지출했다”며 “관중을 돈으로 살 수는 있지만 그들의 열정적인 응원까지는 살 수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카타르 산체스 감독은 경기 후 “끔찍한 출발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첫 출전이고, 홈팬들 앞이라는 압박감이 우리를 몰아붙였다”며 “개막전 패배로부터 배우려고 노력할 것이다. 다음 경기엔 카타르 팬들을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 확신한다”고 했다. 하지만 카타르가 개막전에서 보여준 경기력이라면 1승이나 승점 1(무승부)은 고사하고 1골도 넣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카타르는 25일 세네갈과 2차전, 30일 네덜란드와 3차전을 치른다. /도하=성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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