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27서 합의된 손실·피해 기금은 '보상' 아닌 '대응'…이유는

이재영 2022. 11. 2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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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문에 '보상'·'책임' 개념 없어…'문책' 우려한 선진국 반대
한국은 기후변화협약상 아직 개도국이지만 기금 공여 압박 부딪힐 듯
COP27 정상회의장서 방독면 쓰고 시위 벌이는 환경운동가 (샤름 엘 셰이크 AP=연합뉴스) 15일(현지시간)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 열린 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7) 행사장에서 방독면을 쓴 한 환경운동가가 아프리카가 더 이상 화석가스 생산에 얽매이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6일 개막한 COP27은 오는 18일까지 개최된다. 2022.11.15 ddy04002@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기후변화로 개발도상국이 당한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를 정식으로 논의하고 관련 기금을 조성키로 합의한 것은 20일 폐막한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 최대 성과다.

개도국들은 오랫동안 선진국에 기후변화로 자신들이 입은 손실과 피해를 '보상'하라고 요구해왔다. 지금의 기후변화를 유발한 것은 경제를 발전시키며 온실가스를 내뿜은 선진국들이니 시혜를 베풀듯 기후변화로 위기에 빠진 개도국을 지원하는 것을 넘어 책임을 지고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 개도국들 주장이다.

올여름 대홍수로 국토 3분의 1이 잠기는 피해를 본 파키스탄 셰바즈 샤리프 총리는 지난 9월 유엔 총회 연설에서 전체 온실가스의 1% 미만을 배출한 파키스탄이 기후변화의 대가를 치렀다면서 "온실가스를 주로 배출하는 잘 사는 나라가 기후변화로 재난을 겪는 개도국을 지원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21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기후변화에 취약한 55개국은 지난 6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지난 20년간 자신들이 기후와 연관해 입은 손실이 5천250억달러(약 713조2천억원)로 자신들의 국내총생산(GDP) 합의 20%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2030년에 이르면 기후변화 취약국 손실이 연간 5천800억달러(약 787조9천억원)에 달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COP에서 30년 만에 '손실과 피해'가 정식의제로 논의되고 참가국들이 관련 기금을 조성하기로 합의됐을 때 국내외 언론이 '보상에 합의했다'라고 표현한 것은 시혜적 지원 외 '손실과 피해'에 보상을 요구한 개도국 주장이 일부나마 반영됐기 때문이다.

다만 선진국들은 '보상이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있다.

공식적으로 보상(compensation)이라고 한다면 자신들에게 기후변화를 유발한 책임이 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번 총회에서 도출된 손실과 피해 관련 결정문엔 '손실과 피해 복구에 초점을 맞춘 손실과 피해 대응 기금(fund for responding to loss and damage)을 조성한다'라고 규정됐다. 보상이나 책임(liability)과 같은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환경부는 "손실과 피해를 정식의제로 채택할 때부터 해당 의제와 관련된 결과물엔 책임과 보상 개념은 포함하지 않기로 합의됐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협상 때 일부 개도국이 기금이 보상적 성격을 지녀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선진국들이 반대해 결정문에 명시되지 않았다"라고 부연했다.

AFP통신과 CNN방송 등에 따르면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도 "기금은 손실과 피해와 관련해 무엇을 지원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출 것이며 책임이나 보상의 규정을 포함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강상인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15년 파리기후협정 때부터 손실과 피해와 관련해서는 책임과 보상의 개념은 없다고 합의됐다"라면서 "보상을 한다고 하면은 피해가 발생한 시기나 보상의 범위와 대상을 정해야 하는 등 법적으로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COP27 손실과 피해 관련 결정문엔 선진국 입김이 상당히 반영됐다.

대표적 부분이 '기후변화에 특히 취약한 개도국'이라는 표현이다.

결정문에는 '기후변화의 부정적 영향에 특별히 취약한 개도국을 지원하고자 신규 재원 지원체계를 설치한다'라는 내용이 들어갔다.

'특별히 취약한 개도국'은 선진국들이 포함하길 원했던 표현으로 대응이 가장 시급한 국가에 기금이 지원되도록 함과 동시에 기금을 지원받는 국가군이 확대되지 않도록 하려는 방편으로 풀이된다.

손실과 피해 기금 조성이 합의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누가 돈을 낼지부터 정해야 한다. 현재까지 유럽연합(EU)과 독일, 덴마크, 벨기에, 스코틀랜드 등이 소액이나마 돈을 내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공여국은 앞으로 1년간 가동될 위원회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한국 정부는 COP27 폐막 후 적응기금이사회(AFB) 이사에 재임되고 기후재원 논의를 주도하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부속기구인 '재정상설위원회'(SCF) 위원으로 진출하면서 "국제사회 기후재원 논의에 활발히 참여할 기반을 마련했다"라는 정도의 입장만 내놨다.

한국은 기후변화협정과 관련해 개도국 그룹(비부속서Ⅰ)에 속해있다.

엄밀히 따지면 손실과 피해 기금에 공여할 위치는 아닌 셈이다.

다만 경제 규모나 세계 수위권인 온실가스 배출량 등을 고려하면 한국도 기금을 부담하라는 압박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비부속서Ⅰ에 속하는 현재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가인 중국을 겨냥해서는 EU 등의 기금 공여 압박이 이미 이뤄지고 있다.

앞서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COP27 참석해 기자들과 만나 "신규 재원 수립이 결정되면 우리나라도 부처 간 협의를 거쳐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jylee2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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