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청사 철거” 청주시의 오판[기자메모]
“보존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보존해야 합니다. 한번 무너지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하세용 경기 시흥문화원 사무국장은 철거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옛 청주시청 본관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했다.
하 국장은 경기 시흥의 소래염전 소금창고 복원 운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만든 소래염전 소금창고는 한때 국내 최대규모 천일염 생산지인 소중한 유물이라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문화재청의 등록문화재 심사 3일을 앞둔 2007년 6월4일 창고 40개 중 38개가 순식간에 무너졌다.
골프장 건설을 추진 중인 소유주가 중장비 등을 동원해 벌인 일이다. 지역사회에서 복원 운동에 나섰지만 소금창고를 복원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남아 있는 2개의 창고만 지난 4월 경기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1965년에 지어진 옛 청주시청 본관도 15년 전 시흥의 소금창고처럼 헐릴 위기에 처해 있다. 이 건물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건축가 강명구씨의 작품으로, 철근콘크리트 구조와 현대건축 그리고 전통건축의 특징을 하나로 통합했다는 평을 받는다.
문화재청에서도 2015년, 2017년 두 차례 청주시에 문화재 등록을 권고하기도 했다. 당시 문화재청은 역사성·예술성·학술성·희소가치 등을 따져 ‘보존 가치 1등급’으로 분류했다. 청주지역 시민단체와 문화재 전문가들도 철거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새 청사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청주시는 2008년 시청사 본관을 보존하려는 태도를 보인 바 있다. 하지만 민선 8기 들어 입장을 바꿔 철거를 강행하고 있다. 건물 안전도 D등급 판정과 건물 내부에 ‘욱일기’ ‘후지산’의 형상 등 왜색이 보인다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소금창고 철거는 개인 사업자가 벌인 일이다. 반면 청주시청 본관은 문화재 보호에 앞장서야 하는 지자체가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 건물 철거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철거 이유로 내세운 왜색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오는 28일까지 진행되는 ‘청주 문화유산’ 선정을 위한 설문조사 목록을 보면 일본식 목조가옥인 옛 일해여관, 일제강점기 조선 수탈의 첨병 역할을 했던 식산은행 청주지점장 사택 등이 후보군에 포함됐다. 청주시가 미래 문화유산으로 지정해 보호할 후보로 꼽은 건축물들이 오히려 왜색이 짙어 황당할 따름이다.
이삭 기자 | 전국사회부 isak8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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