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95세 신인가수
올해 95세인 가수 겸 작곡가 앙헬라 알바레스가 지난 17일(현지시간) 라틴그래미 시상식에서 역대 최고령으로 신인상을 수상했다. 90세에 데뷔해 이룬 성과다. 등이 꼿꼿하고 눈빛이 맑은 그는 수상 소감에서 “삶은 고되지만 믿음과 사랑을 통해 꿈을 이룰 방법은 늘 있기 마련이다. 여러분께 장담컨대 너무 늦은 때란 없다”고 말했다. 청중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1927년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태어난 그는 14세에 작곡을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가수의 꿈은 아버지의 반대로 접어야 했다. 평온했던 가정주부로서의 삶 역시 1962년 쿠바혁명으로 흔들렸다. 미국으로 건너간 알바레스는 네 자녀를 보육원에 맡긴 채 청소노동자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야 했다. 2년 만에 아이들을 되찾고 기반을 잡는가 했더니 남편과 딸이 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가난과 실의에 빠진 알바레스를 위로한 것은 역시 음악이었다. 가족들이 모이면 기타를 꺼내 노래를 들려줬다. 음악프로듀서인 손자가 할머니의 노래를 가족용 기록으로 남기려고 지난해 첫 앨범을 제작했는데 뜻밖에 수상으로 이어졌다. 80년 만에 가수의 꿈을 이룬 것이다.
나이가 든다고 꿈까지 시드는 건 아니다. 알바레스와 동갑인 거장 피아니스트 시모어 번스틴은 2016년 인터뷰집에서 “나이가 들수록 배움의 용량은 커진다. 젊었을 때보다 나이 들어서 더 많은 발전을 이룰 수 있다”면서 “우리가 가진 재능이 우리 존재의 핵심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번스틴은 89세의 나이에 다큐멘터리 영화 주연을 맡아 경험의 지평선을 넓혔다고 했다. 올해 107세인 호주의 무용가 겸 작가 아일린 크레이머는 “나는 늙지 않았다. 그저 세상에 좀 더 오랜 시간 있었을 뿐”이라며 “아이였을 때든 지금이든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나의 태도는 한결같다”고 말했다. 올해 72세인 ‘가왕’ 조용필이 최근 발표한 신곡들은 세대를 초월한 감각적인 사운드로 가요계의 탄성을 자아내고 있다.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사람은 진정한 자신을 발견한다. 반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편견 속에 잃을 때에는 시든다. 늙기로 결심할 때에야 사람은 늙는다. 백세시대, 이들의 이야기는 새로운 모델이 되고 있다.
최민영 논설위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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