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투호, 3경기 치르는 잔디와 첫 만남…“훈련장과는 좀 달라요”
태극전사에게 파릇파릇한 잔디가 깔린 그라운드는 꿈을 펼치는 경연장이다.
잘 꾸며진 경연장에서 얼마나 잘 적응했느냐에 따라 전 세계 인구 절반이 시청한다는 월드컵에서 갈채를 받을 수 있다.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벤투호 선수들은 21일 카타르 알라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을 처음 방문해 잔디 점검에 힘을 기울였다. ‘캡틴’ 손흥민(토트넘)은 모처럼 마스크도 벗은 채 직접 손으로 잔디를 눌러봤고, 권창훈(김천)과 김진수(전북)는 아예 편한 마음으로 그라운드에 앉아보기도 했다.
벤투호는 3일 뒤 같은 장소에서 남미 강호 우루과이와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을 치른다.
국제축구연맹(FIFA)을 통해 입수한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8개 경기장과 81개 훈련장 모두 사이즈(105m*68m)와 표면 온도(24.1℃), 잔디 품종(파스팔럼), 잔디 길이(22㎜), 평탄도(77)가 규격으로 정리됐다. 4년 전 러시아 대회에 이어 이번에도 천연잔디가 아닌 하이브리드 잔디가 모두 시공됐다는 공통점도 있다.
한국 축구의 월드컵 도전사를 살펴보면 잔디 적응은 항상 고민거리였다. 큰 대회니 겉으로 볼 때는 문제가 있을리 없다. 하지만 경기장마다 잔디의 길이나 수분을 머금은 정도, 공이 튀어오르는 바닥 평탄도가 조금씩 다르니 긴장을 풀면 애를 먹기 일쑤다.
세계적인 선수가 결정적인 찬스에서 헛발질을 하거나 하늘 위로 공을 날려버리는 일이 그래서 나온다. 거꾸로 잔디에 잘 적응하면 실력 이상의 결과를 내기도 한다. 4강 신화를 썼던 2002년 한·일월드컵이 대표적이다.
당시 한국 축구를 이끌었던 거스 히딩크 감독은 대회를 마친 뒤 자서전에서 자신이 준비한 빠른 축구의 완성을 위해 폴란드와 개막전 전날 몰래 잔디를 규정보다 짧게 깎았다는 꼼수를 뒤늦게 고백하기도 했다. 20년의 세월이 흘러 원정에서 16강 재현을 이뤄야 하는 한국 축구도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
다행히 벤투호는 마치 2002년 대회처럼 행운이 따르고 있다. 카타르월드컵은 보통 경기 전날 짧은 시간이나마 경기장 적응 훈련을 하는 것과 달리 한 차례 잔디를 밟아보는 기회만 주어진다. 기존 월드컵이 12개 경기장에서 대회를 치른 것과 달리 8개 경기장에서 진행하다보니 생긴 변화다.
그런데 벤투호는 이번 대회에서 조별리그 3경기(24일 우루과이·28일 가나·12월 3일 포르투갈)를 모두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 한 곳에서만 치른다. 훈련 없이 경기를 치르는 우루과이와 첫 경기만 잘 적응하면 2~3번째 경기에 비단길이 깔리는 셈이다. 상대 국가인 우루과이와 가나, 포르투갈이 매번 다른 경기장을 돌아다니는 것과 비교된다.
벤투호의 행운은 이번 대회의 또 다른 경기장인 루사일 스타디움은 하루에 5만 리터의 물을 쏟아붓고도 개막 전 잔디가 말라있는 것이 며칠 전 문제된 터라 더욱 도드라진다. 카타르월드컵에서 잔디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데이빗 그레엄은 “카타르 기후에 맞는 잔디를 파종해 어느 대회보다 완벽한 무대를 준비했다”고 자신했지만 사람이 하는 일에 역시 완벽은 없었다.
선수들도 훈련장과 경기장의 잔디 차이를 감안해 남은 경기를 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황인범(올림피아코스)은 “훈련장이 약간 딱딱한 편인데, 훈련장보다는 푹신한 느낌이다. 훈련을 못해보는 게 아쉽다. 그나마 잔디를 밟아본 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고, 백승호(전북)는 “앞에 경기하는 팀들이 어떻게 경기를 하느냐에 따라 변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상태로는 좋다”고 부연했다. 벤투호가 이 작은 차이를 잘 살리느냐에 따라 경기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도하 |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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