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 노동’ 직종마다 성범죄 무방비 노출
[앵커]
여러 집을 찾아다니며 일하는 '가스 점검원'들이 성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문제, 지난달에 전해드린 적이 있는데요.
보도 이후, '방문 노동'을 하는 다른 여러 직종에서도 같은 피해를 호소하는 제보가 KBS에 잇따랐습니다.
그들의 근무 방식과 동선을 취재해 봤더니, 역시나... 위험을 막아줄 아무런 방비가 없었습니다.
이예린 기자입니다.
[리포트]
["(딩동) 안녕하세요."]
A 씨의 일은 정수기와 공기청정기, 비데 등을 점검해주는 겁니다.
매일 10가구 정도를 방문하는데, 최근 아주 불쾌한 경험을 했습니다.
[A 씨/정수기 점검원 : "(고객님께서) 몇 개월 전부터 계속 언제 시간 되느냐. 시간 되면 한 번 같이 밥 먹자 이렇게 얘기를 하시고…."]
분명히 거절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A 씨/정수기 점검원 : "'안 된다'라고 얘기를 했는데도 몇 번 접근을 하셔서... (그) 고객님 댁에 들어갈 때마다 좀 머리가 쭈뼛쭈뼛하면서 온 신경이 긴장돼 있죠."]
더 심한 일을 겪은 적도 있습니다.
[A 씨/정수기 점검원 : "뒤에서 소리는 나지 않는데 약간의 느낌상 이상해서 곁눈질로 이렇게 보니까 고객님께서 바지를 내리고 계셨어요."]
이런 피해 경험, 동종업계에선 한둘이 아닙니다.
[B 씨/정수기 점검원 : "남자 고객님이 옆에 자꾸 달라붙더라고요. 삼각팬티를 입고 있었어요."]
가전제품을 점검하는 일은, 다른 방문 직종보다 범죄에 더 취약한 면이 있습니다.
정수기 한 대를 점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20분입니다.
집에 점검해야 하는 기계가 많을수록 머물러야 하는 시간은 더 늘어납니다.
방문 직종을 상대로 한 범죄의 판결문을 검색해봤더니, 정수기 등을 점검하는 노동자들이 눈에 띄게 많았습니다.
가스점검원처럼 업무용 단말기에 긴급 구조 버튼이 제공되는, 최소한의 안전 장치도 없습니다.
[B 씨/정수기 점검원 : "(SOS) 단추만 누르면 되게끔 해도 상관이 없잖아요. 근데 그런 게 없어요. 그래서 조금 위험하긴 하죠."]
'2인 1조' 근무도 말뿐입니다.
[B 씨/정수기 점검원 : "(회사에서) '위험할 때 같이 가라' 이렇게 하는데, 2인 1조 갈 수 있는 시간이 안 되잖아요."]
'주민등록 사실조사원'도 방문 업무를 합니다.
등록된 주민의 실거주 여부를 확인하려면 집집마다 찾아가봐야 하는데, 마찬가지로 성폭력에 노출될 때가 있습니다.
[주민등록 사실조사원/음성변조 : "남자 세대주가 팬티를 입고 나오신 거예요. 너무 놀랐고 그게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요."]
공적인 행정업무를 맡겨놓고도 정부나 지자체에선 '안전'에 손을 놓고 있습니다.
행정안전부가 마련한 '주민등록 사실조사 추진계획' 사고 발생 시 담당 공무원이 '탄력적으로' 대응하라는 문구뿐입니다.
[행안부 관계자/음성변조 : "현장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두 쪽에 해당하는 매뉴얼로는 충분히 기술할 수 없으니까."]
취재가 시작된 이후에야 일부 지자체는 2인 1조 등의 안전 지침을 수립해줄 것을 행안부에 건의했다고 밝혔습니다.
KBS 뉴스 이예린입니다.
촬영기자:김형준 홍성백/영상편집:여동용/그래픽: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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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린 기자 (eyeri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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