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기 탑승 거부도 취재입니다
[편집국에서]
[편집국에서] 정은주 | 콘텐츠총괄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거부한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합니다만 <한겨레> ‘독자’에게도 올바른 결정인지는 의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9~11일 동남아시아 순방에서 대통령 전용기가 아니라 민항기를 이용해 취재하며 겪은 순방 동행 기자의 고생과 불편함을 담은 <한겨레> 기사를 보고 김경식 열린편집위원회 위원이 말했습니다. 열린편집위원회는 한겨레 콘텐츠를 독자의 시선으로 평가하고 다양한 의견을 편집국 등 사내에 전달하는 기구입니다.
순방 취재 후기를 담은 이 기사는 대통령 전용기를 타지 않은 탓에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인도네시아 발리까지 이동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그 때문에 윤 대통령의 주요 20개국(G20) 회원국 경제단체와 기업 대표들이 참여하는 ‘B20 서밋’ 기조연설과 대통령실 브리핑을 여러차례 놓쳤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김 위원은 “신문사의 판단 기준은 독자의 알권리에 있기에 (한겨레는) 전용기 탑승 거부로 의사를 표한하기보다는 다른 방법으로 비판해야 했다. 기자는 취재 대상과 같은 현장에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통령 전용기를 이용하지 않은 탓에 윤 대통령의 캄보디아-인도네시아 순방 취재 현장 일부를 한겨레 동행 기자가 놓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독자의 알권리를 침해한 것이라는 비판은 동전의 한면만 본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른 면에서 보면,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가 언론의 취재 활동을 제한한다는 것을 독자에게 알리는 구실을 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실은 지난 9일 <문화방송>(MBC) 출입기자에게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느닷없이 통보했습니다. 동남아시아 순방을 사흘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윤 대통령은 10일 출근길에 “대통령이 국민 세금을 써가며 해외순방을 하는 것은 중요한 국익이 걸려 있기 때문”이라며 “기자에게도 외교안보 이슈에 관해서 취재 편의를 제공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관련 비용을 내고 공적 자산인 대통령 전용기에 탑승한 기자들에게 취재를 보장하는 게 당연한데도, 이를 선택적으로 베푸는 시혜적 대상으로 바라본 것입니다.
언론계는 강하게 항의했습니다. 언론인단체들은 “헌법이 규정한 언론 자유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라고, 외신기자들은 “특정 매체에 대한 취재 제한 조치는 국내외 모든 매체의 언론 자유에 대한 우려를 키운다”고 반발했습니다. 비판이 거세지자 대통령실은 “(대통령 탑승 배제는) 단순히 취재 편의를 일부분 제공하지 않는 것이지, 취재 제한은 전혀 아니다”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나 ‘선택적 취재 편의 제공’은 순방 내내 되풀이됐습니다.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과 한-일 정상회담 현장을 순방 동행 취재단에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통상 각국 정상과의 회담은 ‘풀(대표) 기자 취재’ 형식으로 머리발언 등이 공개되는데, 이번 회담에서는 대통령실 관계자만 회담장에 들어가고 기자들에게는 편집된 양국 정상 발언과 영상·사진만 전달했습니다. 프놈펜에서 발리로 이동할 때는 윤 대통령 전용 공간에 평소 친분이 있던 <시비에스>(CBS)와 <채널에이(A)> 기자 2명만 따로 불러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순방이 끝난 뒤 ‘선택적 취재 편의 제공’이 취재 제한이라는 것을 한겨레 기자는 대통령 전용기를 타지 않음으로써 독자에게 알렸습니다. 전용기 탑승이 배제된 매체는 대통령 현지 발언과 대통령실 언론 브리핑을 일부 놓칠 수밖에 없고, 전용기 안에서 벌어진 일도 뒤늦게 알게 된다는 것을 취재 후기에서 드러냈습니다. 대통령 전용기 탑승은 물론 거부도 취재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윤 대통령의 ‘취재 제한’은 더욱 노골화하고 있습니다. 문화방송과의 갈등을 이유로 21일 대통령의 출근길 약식 회견(도어스테핑)을 중단하고, 지난 18일 도어스테핑 직후 이기정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과 설전을 벌인 문화방송 기자에게 불이익을 가할 것이라고 합니다. 대통령실 1층 로비 출입문에는 가림막을 세워 대통령 출근 모습을 감춰버렸습니다. 취재 제한에 맞설 방법은 한겨레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 거부와 같은 언론의 공동 대응뿐입니다. 그것이 한겨레 독자의 알권리만이 아니라 국민의 알권리를 지키는 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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