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인도태평양 전략’ 발표…대양-대륙 품는 지정학적 설계를
[왜냐면] 김성배 |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우리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처음으로 발표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1일 한-아세안 정상회의와 13일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번영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을 비전으로 하는 한국의 독자적인 인도태평양 전략을 천명했다. 핵심 원칙으로는 ‘규칙 기반의 국제질서’ ‘힘에 의한 현상변경 반대’ 등을 내세웠으며, 구체적 정책 차원에서는 남중국해에서의 항행의 자유 보장, 전방위 분야의 한-아세안 협력 강화가 강조됐다.
지금까지 나온 정부 발표를 토대로 보면 미국, 일본 등 여타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메가(mega) 지역전략이라기보다는 동남아-서남아-태평양 지역에 초점을 맞춘 하위(sub) 지역전략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도 궁극적으로 메가 지역전략을 지향하는지는 정부가 예고한 후속 구상을 보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주지하듯이 인도태평양이라는 지정학적 설계의 원조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다. 일찍이 2007년 아베 전 총리가 주창한 인도태평양 전략은 아시아태평양이라는 지리적 개념에 익숙해 있던 서방 전략가들의 지정학적 상상력을 자극했으며 오늘날 미국, 호주, 인도, 영국 등 상당수 국가의 지역전략으로 채택됐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행정부 이후 아시아태평양이라는 기존 용어가 구식으로 느껴질 정도로 인도태평양이 지배적 언어로 정착했다. 미국 내에서도 미 군사력이 주로 아태지역에 투사된 전략적 현실을 외면하고 인도양에 상당한 무게중심을 두는 용어가 적절한지에 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 견제 함의가 강한 인도태평양 개념은 미 조야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얻었다.
인도태평양은 지리적으로 아프리카 동쪽에서 미국 서쪽에 이르는 지역을 아우르는 메가 지역 개념으로서 대륙보다는 해양 중심, 남북보다는 동서축에 입각해 만들어진 지정학적 구상이다. 미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등 해양세력이 이런 개념을 채택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인도 역시 자국이 중심적 위치가 되는 개념을 마다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아프리카·중동-인도-아시아 지역에 순차적 접근하는 경로를 연상시키는 동서축 개념을 선호하는 것도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대륙과 해양을 모두 품고 있는 반도국가이자 해륙국가이다. 동서축도 중요하지만 남북축도 무시할 수 없는 처지이다. 인도태평양은 글로벌 추세를 반영하는 신선한 개념이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플러스 알파가 필요해 보인다.
전통적으로 우리의 지정학적 설계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고 동북아, 동아시아 등 아시아, 그리고 대륙과 해양을 망라하는 것이었다. 특히, 보수와 진보정부를 가리지 않고 대륙으로의 확장은 필수 요소였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중심국가 구상, 이명박 정부의 신아시아 구상, 박근혜 정부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과 신유라시아 구상 등 예외가 없었다. 우리의 지정학적 구상이 오직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일원화된다면 기존 아시아 중심, 대륙 중시의 전통으로부터의 일정한 이탈인 셈이 됐다.
우리의 지정학적 범위를 동서축으로 확장하는 것에 반대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다만, 굳이 대륙이 누락되고 아시아가 실종되는 방식일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인도태평양이라는 개념에서는 유라시아와 극동시베리아, 중국, 몽골, 인도차이나반도 등이 포함돼 있다는 느낌이 약하다. 한마디로 아시아 대륙이 사라진 인상이다. 일본은 19세기 말 탈아입구론이 제기된 이래 한사코 아시아를 무시하려는 성향을 보여왔다. 대동아 구상은 아시아 지배를 위한 구실이었을 뿐이다. 일본이 인도태평양이라는 신조어를 주창한 것도 이러한 아시아 방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러한 지정학적 설계가 해륙국가인 우리의 전략적 이익에 완전히 부합하는지는 깊이 따져봐야 하는 문제다.
정부가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이 우리의 지정학적 설계를 유일하게 대표하는 메가 지역전략이 아니라 동남아-서남아-태평양 지역에 특화된 것이기를 바라며 앞으로 한반도와 아시아 대륙을 포괄하는 후속 지역전략이 플러스 알파로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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