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포르노” 뭐가 문제란 말인가…우려할 것은 당신들의 반지성
[왜냐면] 나임윤경 |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얼마 전 한 인터넷카페의 “심심한 사과” 발언이 뜻하지 않은 ‘공분’을 부르며 낮아진 문해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모았다. 읽고 쓰기 쉽게 만들어진 한글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라도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 한국인의 문해력에 대해 의심해 본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한 교사는 문해력뿐 아니라 길어진 비대면 상황이나, 간명한 정보만 주고받는 디지털 환경 등이 “대박 죄송”처럼 중2 정도가 쓸법한 표현에만 익숙하게 했을 거라 분석한다.
그러나 내가 주목했던 것은 “심심한 사과” 발언을 이해하지 못했던 일부 사람들의 안하무인 격 태도다. 욕설과 조롱 섞인 일부의 과격한 반응에는 주어진 정보를 이해하지 못했을 때의 당황스러움이나, 호기심 같은 뭔가 이해하거나 배우려는 태도가 없다. 맘에 들지 않는다면 뭐든 거슬려하고 시비 걸듯 하는 그들의 태도는 낮아진 문해력만큼이나 걱정스럽다. 대기업 편의점 캠핑 광고와 경찰청 홍보물에 대해 덮어놓고 했던 ‘남혐’ 주장이나, 여대 재학 중인 숏커트 국가대표 선수에 대한 금메달 회수 요구 등에는 ‘도를 넘었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뭔가가 있다.
대통령 배우자에 대한 이번 야당 의원의 “빈곤 포르노” 발언 역시도 난해했던 듯, 그 황당했던 ‘남혐’ 논란 못지않은 여당 정치인들의 격한 반응을 불렀다. 10년 가까이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직을 조용히 수행해 온 배우에 대해 뜬금없이 그가 “포르노 배우냐”고 질타하질 않나, 엉뚱하게도 대한민국 모든 여성에게 사과하라는 호기를 부리질 않나. 이들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크게 성을 내는 상황을 예상했다면 “빈곤 포르노” 대신 “선진국에서였다면 꿈도 못꿨을 봉사활동”, “백인 아동을 대상으로는 생각지도 못했을 봉사활동”, “품 안의 아동이 아니라 아스라이 먼 곳을 응시하며 잿밥에만 관심 보인 봉사활동”, “마스크도 쓰지 않은 코로나 전파 봉사활동” 등으로 말했어야 했나.
<급진의 20대> 저자 김내훈은 이른바 ‘이대남’의 페미니즘에 대한 ‘극혐’에 대해 페미니즘에 대해 제대로 모르면서 그 이름에만 ‘극불호’의 정서를 갖는 것이라 분석한다. 새롭고 낯선 개념이나 현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 의미를 차근차근 배우려는 진지한 노력 대신, 혐오, 조롱, 분노의 손가락질부터 한다는 것이다. 의미를 알려고 하지 않으니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이번 “빈곤 포르노”에 대한 여당 정치인들의 반응에서 보듯, 논지를 벗어나 전혀 무관한 논리로 자주 변질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본다면 어떤 이론이나 개념에 대해 의미를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분노의 정서부터 표출하며 권력감과 정치적 효능감을 맛보려는 자들이 다만 20대 일부 남성만은 아니다.
민주화의 주역이라면서 성차별과 성폭력에 무감한 정치인들, 자유와 법치를 말하면서 언론의 자유와 성평등은 안중에 없는 정치인들, 국민만 본다면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은 책임지지 않는 정치인들, 청년 남성을 대변한다면서 페미니스트를 ‘페미나찌’라 멸칭하는 정치인들, 페미니즘이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여긴다는 가짜 뉴스로 남성들을 울분의 정동으로 몰아넣는 정치인들. 이처럼 ‘87 민주화 체제 이후에조차 의미를 모르는 화려한 공언, 빈말들만으로도 정권을 교체하고 권력을 잡고, 호통치며 호가호위하는 것이 가능했던 한국 사회 반지성주의 정치사는 빈곤 포르노 ‘우화’에서도 예외 없이 반복되었다.
한국보다 가난한 나라이기에 가능했던 비공식 “봉사활동”, 백인들의 인종주의를 한껏 흉내 내며 동남아 아동을 품에 안은 ‘하얀’ 피부의 대통령 배우자, 품 안의 아동이 아니라 자신에게 심취한 시선을 포함한 그 한컷의 사진 모두는 “빈곤 포르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므로 정치인들이여, 대한민국 여성은 물론 난민을 위해 봉사해 온 그 배우의 명예는 한없이 높아 그 어떤 정치인도 감히 훼손할 수 없으니, 생각해주는 척 목소리 높이지 마시라. 대신 뜻도 모르면서 자유, 민주주의, 성평등, 생명, 책임, 성찰 등을 입에 담을 수 있는 ‘무식하니 용감할 수 있는’ 당신들의 반지성은 돌아보시라, 제발.
▶관련 기사 : 김건희 여사 이 사진, ‘빈곤 포르노’와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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