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감선(減膳)과 폼 나는 사표 [전형일의 사주이야기]
편집자주
‘네 살 차이는 궁합도 안 본다’는 말은 사주팔자에서 연유됐다. 생활 속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말과 행동, 관습들을 명리학 관점에서 재미있게 풀어본다.
고대 중국에서는 인간 행위의 선악(善惡)에 따라 하늘이 이변(異變)이나 재앙(災殃)을 내린다고 믿었다. 가뭄, 홍수, 지진이나 일식(日蝕), 월식(月蝕) 등을 포함한 재난이 있으면 모두가 통치자의 실정(失政)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길조(吉兆)에 대해서도 역(逆)으로 적용됐다.
이는 인간의 행위가 자연현상에 영향을 끼친다는 천인상관설(天人相關說)의 하나인 이른바 재이설(災異說)이다. 이 사상은 한대(漢代)에 유학을 국교로 정착시킨 정치가이자 유학자인 동중서(董仲舒)가 하늘(天)을 인격화하면서 자연과 사회현상을 일치시킨 천인감응론(天仁感應論)으로 발전했다. 이때 하늘(天)은 물질적인 하늘을 가리키기도 하고, 의지를 갖는 자연 신(神)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상의 기초는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로서, 인간과 자연의 음양이 서로 대응한다는 사고에 기반한 것이다. 재이설은 왕정국가에서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는 군주를 제약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그래서인지 한 무제(武帝)는 동중서를 곁에 두지 않았다. 그럼에도 음양오행설과 재이설을 받아들인 유학은 한나라 때 국가 공인 학문이 되면서 중국뿐 아니라 동아시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재이설에 따른 군주의 대표적인 행동이 자신의 식사를 줄이는 '감선(減膳)'이다. 감선은 '시경(詩經)' 등에 가뭄이 들었을 때는 군주의 식사를 줄인다는 규정 근거에, 사상적 배경을 더했다. 우리 역사 기록에서는 신라 소지왕(492년)이 가뭄에 감선한 것이 최초이다.
유교 사상이 확립된 조선왕조에서 감선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었다. 첫째, 수라상에 올리는 음식의 양이나 가짓수를 줄이는 일. 둘째, 하루에 다섯 번 받는 음식의 횟수를 줄이는 일. 셋째, 수라상에 올리는 고기 음식의 가짓수를 줄이는 일이다.
특히 세종은 감선에 적극적이고 금욕적인 태도를 보여 함께 금주(禁酒)도 하는 관행을 세웠다. 문종은 더 나아가 '기월철선(忌月撤膳)'을 시행했다. 당시 임금은 위로 삼대까지 조상 기일(忌日)에 고기반찬을 들지 않는 철선을 행했는데, 문종은 아예 기일이 들어가는 달 전체를 기월로 삼아서 철선하는 달로 삼은 것이다.
이렇게 점차 심화되던 감선의 관행을 중단시킨 이는 다름 아닌 연산군(燕山君)이었다. 그는 군주 독재 체제로의 전환을 시도하며 단순히 감선을 시행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그 사상적 배경이 되는 재이설조차 무시했다. 뒤를 이은 왕들은 다시 감선을 했으나, 세종이나 문종처럼 정성스러움은 없었다.
감선은 고도의 정치성을 띤 상징적 행위였다. 우선 그것은 통치집단이 피통치 집단에게서 지지를 유도하는 하나의 의례였다. 또 통치집단의 한 축인 관료집단에 유교의 지향점인 성인(聖人)과 군자(君子)가 되기 위한 노력을 보임으로써 군주의 권위를 지키며 왕권 보호에 기여했다. 감선은 태종부터 시작해 순종까지 이어졌으며, 조선왕조 519년 동안 341회 행해졌다.('음식 윤리')
이처럼 세습제인 절대 왕정 시대의 군주조차 인재(人災)가 아닌 천재지변에도 '정치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이 같은 정치 문화와 전통은 현대 들어서도 유효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실질적 책임'마저 '도의적 책임'으로 회피하는 경우가 있다. 정약용은 "책임은 자신에게 무겁게 지우고 남에게는 가볍게 해야 한다"고 했다.
실생활에서도 말(言)에 대한 책임이나 시간개념 등이 희박한 사람들이 있다. 사주(四柱)에 '관(官)'이 없거나 약한 사람들이 그렇다. 명리학(命理學)에서 '官'은 공직자나 조직의 책임자 또는 법, 규율, 책임감 등을 나타낸다.
일반인과 달리 공직자의 무책임은 대부분 '법률적 책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예방을 못 한 사람이 수습은 잘할까.
전형일 명리학자·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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