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갈회옥(被褐懷玉), 소박해 보이는 집단에너지의 강력함 [유승훈의 에너지의 경제학]

2022. 11. 2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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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우리나라는 에너지 부족 국가이면서도 탄소중립과 에너지안보라는 두 목표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이슈를 에너지 경제학의 관점에서 점검해본다.
그래픽=김문중기자
두 차례 오일쇼크 교훈이 가리키는 집단에너지
친환경과 에너지 효율을 동시에 보장하는 역할
지난해 제주 64일 전기 폐기사태 재발도 막아

노자(老子)의 도덕경을 보면 피갈회옥(被褐懷玉)이란 글귀가 있다. 겉으로는 허름한 옷을 입고 있지만, 가슴속에는 영롱한 옥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진정으로 강한 자는 그 능력을 가슴에 품고 겉으로는 잘 드러내지 않는다. 노자의 가르침이 있은 후 2,500여 년이 지난 지금, '진정 강함'의 의미를 새삼 되뇌게 된다.

19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석유 가격이 4배까지 올랐다. 대중교통과 공장이 멈추면서 우리는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이때 두 가지 교훈을 얻었다. 첫째, 수입 에너지를 다양화하면서 석유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이에 1980년대 후반부터 천연가스를 본격적으로 도입하여 도시가스 보급 및 전력 생산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둘째, 기왕 수입한 에너지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이에 1990년대 초반부터 열과 전기를 동시에 생산하여 에너지 효율을 최대화하는 천연가스 열병합발전소를 대도시 및 신도시에 건설하여 운영하기 시작했다. 천연가스 발전의 효율은 50%에 불과하지만, 열병합발전의 효율은 80%나 되기 때문이다.

열병합발전의 도입으로 집단에너지라 불리는 새로운 사업도 개시되었다. 집단에너지는 전기와 열을 함께 생산한 후 한전에 전기를 판매하고 소비자에게 지역난방을 통해 온수나 난방을 공급하는 사업을 의미한다. 공간을 차지하는 보일러를 갖추지 않고도, 1년 내내 온수 및 난방 사용이 가능한 것은 그야말로 집단에너지 덕분이다.

집단에너지는 생활폐기물 및 의료폐기물 소각장이나 다른 발전소에서 버려지는 열도 수거하여 지역난방 공급에 사용한다. 또한 하수처리장, 쓰레기 매립장 등에서 발생하는 바이오가스를 이용하여 열과 전기를 생산하기도 한다. 이렇게 버려지거나 남는 에너지를 한데 모아 활용하는 부문은 집단에너지가 유일하다.

그래픽=김문중기자

이렇게 집단에너지는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가 열과 전기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소비할 수 있게 하는 유력한 방안이다. 특히 열병합발전소는 전기의 수요지 내에 입지하고 있기에, 전국 곳곳에서 심각한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송전탑 건설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장점을 가진다. 요컨대 집단에너지는 우리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집단에너지는 열과 전기를 따로 생산할 때에 비해 다양한 환경개선 효과를 창출한다. 첫째, 미세먼지와 같은 대기오염물질의 배출을 70% 이상 줄일 수 있다. 둘째,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 배출을 절반 이상 줄일 수 있다. 셋째, 에너지 사용량을 30% 이상 줄여 무역수지를 개선하고 에너지 안보에도 기여한다.

유럽 등의 선진국에서는 일조량 및 풍량이 풍부하여 태양광 및 풍력 발전으로 생산된 전기가 너무 많아 버려지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이때 집단에너지는 수요에 비해 많이 생산된 전기를 버리지 않고 사용하여 만든 열을 축열조에 저장해 놓았다가 온수나 난방으로 공급하고 있다. 전기의 저장은 어렵지만 열의 저장은 용이하기 때문이다.

즉 집단에너지는 전기가 필요할 때는 전기를 생산하고 전기가 남아 버려질 때는 전기를 소비할 수 있다. 작년 제주에서는 이렇게 전기가 남아 버려지는 경우가 64일 발생했는데, 향후 재생에너지 보급이 늘어나면 육지에서도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할 것이다. 이때 전기 생산자인 집단에너지는 버려지는 전기를 활용하는 역할도 담당할 수 있다.

집단에너지는 화석연료를 사용하면서 소각장, 하수처리장, 매립장 등에서 버려지는 지저분한 에너지를 활용하는 겉모습을 가진다. 하지만 주택의 공간 활용도를 제고하면서, 온실가스 및 미세먼지 배출을 줄이고, 에너지 사용량도 절감할 수 있다. 광채를 품고 있으면서도 뽐내지 않는 집단에너지의 역할은 한마디로 피갈회옥이다. 앞으로 그 역할이 더욱더 확대되길 기대한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창의융합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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