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호의 투자 프레임 <5>]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 수요부터 살려야
부동산은 의식주 중 하나다. 주식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지만 부동산은 다르다. 월세든, 전세든, 자가든 각자 상황에 따라 부동산 사이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떤 이는 ‘무주택자가 힘들지, 자가 소유자는 뭐가 힘든가. 길게 보면 부동산은 우상향을 이어 가지 않았나’라고 묻는다. 그러나 온전히 내 집을 갖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은행과 함께 소유한다. 담보대출 비율만큼 소유권의 의미는 달라진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우리가 부동산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이 우리를 소유하는 시대인 것이다.
은행이 부동산을 통해 우리를 지배하는 삶에서 금리는 모든 변화의 출발점이다. 금리가 움직이자 부동산 시장은 혹한기에 들어섰다. 아파트 거래량은 역사적 저점을 갱신하며 위축된 수요를 대변하고 있다. 금리 상승이 멈출 때 주식 시장은 기대감을 선제 반영하며 반등하지만, 부동산은 다르다.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에서 거래가 다시 살아나려면 절대 금리 레벨이 낮은 수준으로 떨어져야 한다. 주택 담보대출 금리 기준으로 최소 4% 수준은 돼야 한다. 그러나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점도표를 보면 2023년 상반기까지 금리가 올라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당분간 수요가 되살아나기는 어렵다. 절대 금리 레벨이 낮아지려면 빨라도 2024년 말은 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매수 심리 높았던 부동산 시장
수요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다. 국토교통부는 매년 주거 실태 조사를 통해 주택 보유 의식을 파악한다. 집을 사야 하는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조사하는 통계인데, 2020년 당시 주택 보유 의식이 전 연령에서 큰 폭으로 증가했다. 특히 40세 미만에서는 6%포인트가 증가하며 가장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젊은 세대를 필두로 주택 소유 욕구가 그 어느 때보다 강했던 것이다.
자극된 매수 심리는 빌라, 오피스텔의 거래 추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빌라와 오피스텔은 과거 추세적으로 동행하는 특성이 있었는데, 최근 3년간 오피스텔의 거래량 증가보다 빌라 거래량 증가가 더 가팔랐다. 이는 사람들의 소득(월세) 수익에 대한 욕구보다 자본 수익, 즉 절대 가격의 상승에 대한 욕구가 더 높았다는 뜻이다. 작은 평수의 오피스텔을 사면 월세는 받지만 가격 상승이 더디고, 작은 평수의 노후화한 빌라를 사면 재개발 기대감으로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돼 있다.
올해 9월 누계 기준으로 전국 분양 실적을 살펴보면, 2021년 대비 3% 감소하는 데 그쳤다. 구축 시장보다 분양 시장의 성과가 썩 나쁘지 않았다는 뜻이다. 구축 매매의 씨가 마른 상황에서 분양이 소폭 감소하는 데 그쳤다는 것은 신축에 대한 수요가 잠재돼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집값이 얼마나 비싼지 알기 위해 소득 대비 집값(PIR)을 살펴봤다. 올해 6월 서울 기준으로 전 소득 분위에서 PIR은 17.5~20.7배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PIR이 가장 낮았던 때는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 직후였을까. 당시 전국 PIR은 5~7배, 서울은 11~12배를 기록했다. 오히려 PIR이 가장 낮았던 시기는 2014~2015년 한국 부동산 호황기였다. 이 당시 전국 PIR은 5~6배, 서울은 9~11배를 기록했다. 당시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 확대와 저금리 기조에 더불어 건설사들의 미착공 프로젝트파이낸싱(PF) 밀어내기를 통해 수요와 공급이 양방향으로 폭발하던 시기였다. 그러니까 시장에 수요와 공급이 모두 많아서 거래량이 활발하던 시기에 비싼 집은 비싸게, 신축이 구축보다 비싸게 거래되면서 시장의 정상화와 안정화가 이뤄졌다.
부동산 정책, 수요에 초점 맞춰야
우리가 지난해까지 공급을 늘려야 집값이 안정된다는 논리를 펼칠 수 있었던 배경은 이처럼 수요가 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최근과 같이 고금리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으로 소비 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 누가 집을 살 수 있을까. 임기 내 250만 가구 공급 같은 정부의 공급 슬로건은 타이밍이 제대로 엇박자가 나버린 상황이다. 그래서 정책의 키워드가 지금은 공급이 아닌 수요에 초점이 맞춰질 때라고 생각한다. 최근 전월세 시장에서 월세가 전세 비중을 넘어서면서 그 어느 때보다 주거의 불안정성이 확대되고, 무리하게 대출받은 실거주자의 현금흐름이 깨지고 있다.
미국, 영국, 싱가포르 같은 선진국들은 이미 실거주자에게 여러 방면의 지원책을 제공하고 있다. 변동 금리 대출의 금리 상한 폭을 제한하거나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의 경우 정부의 직접 대출과 정부 보증 대출을 섞어 최대 95%의 금융 지원을 해준다. 법인의 주택 구매 LTV를 15%로 제한하는 등 사회 안전망 구축을 위한 다양한 정책도 존재한다.
우리나라도 최근 LTV 규제 상한을 50%로 단일화했으나 여전히 역부족이다. 수요 지원책을 손대면 자연스럽게 가계 부채에 대한 우려가 동반되는 상황이다 보니 공격적으로 정책을 펼치기 어려울 수는 있다. 그래서 쉬운 카드인 공급 규제부터 손을 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급의 주체인 건설사나 시행사 입장에서는 지금 모든 공급 규제를 다 없앤다고 해도 사업을 진행할 유인책이 없다. 금리와 건자재 가격이 높아 마진을 확보하기 어려운데, 수요도 위축돼 분양가를 함부로 높게 책정할 수도 없다. 따라서 수요 지원책이 없는 한 아무리 공급 규제를 풀어도 임기 내 250만 가구 공급은 쉽지 않아 보인다.
집값이 어떻게 얼마나 빠질지를 예측할 수는 없다. 다만 확신하는 두 가지는 절대 금리 레벨이 내려오기 전까지 주식 시장은 먼저 반등할 수 있어도 부동산은 곧바로 반등하기 어렵다는 점, 잠재된 수요와 잠재된 공급 덕분에 다시 부동산 시장이 좋아질 때가 온다면 그 속도가 매우 가파를 것이란 점이다.
정부의 역할은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주거 불안을 느끼는 실수요자와 젊은 세대들이 더 크게 다치지 않도록 여러 수요 지원책과 제도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금리 상승에 따른 혹한기가 지나고 나면 우리는 정상적인 부동산 환경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신축이 구축보다 비싸게, 오피스텔은 아파트보다 싸게, 실수요자는 신용대출이 아니라 담보대출로 집이 거래되는 날이 몇 년 뒤에 올 것이다.
부동산은 은행과 함께해야 다수가 소유할 수 있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완화되고, 금리가 낮아져야 한다는 뜻이다. 실수요자에 대한 LTV 규제 완화, 조정 지역 해제 등의 조치만으로는 분위기를 돌리기 힘들다. 여전히 높은 가계 대출 수준은 DSR 규제를 정당화시킬 것이다. 현금이 있다면, 채권과 주식에 먼저 투자하고 상황이 변한 뒤에 부동산 투자에 나서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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