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 열전 | 박수은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정조 아들 앗아간 것도 홍역…‘백신 회피’ 위험한 생각”

김명지 조선비즈 기자 2022. 11. 21.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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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은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부산대 소아청소년과 의학 박사,현 대한소아감염학회 부회장 사진 김명지 기자

지난해 인기를 끈 MBC 사극 ‘옷소매 붉은 끝동’은 정조와 성덕임의 로맨스를 다뤘다. 성덕임은 정조의 후궁 가운데 유일하게 승은(承恩)을 입은 여성인데, 승은을 계속 피하던 성덕임이 정조의 끈질긴 구애 끝에 아들 문효세자를 낳고 의빈 성씨에 오른다는 내용이다.

숙종과 장희빈(장옥정)의 로맨스가 치정극이라면, 두 사람의 로맨스는 순정 만화에 가깝다. 성덕임과 정조의 로맨스는 비극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의빈 성씨는 문효세자를 홍역으로 잃고, 자신도 곧 병으로 죽고 만다.

박수은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구중궁궐에 있는 왕의 자식도 감염병은 피할 수 없었다는 뜻”이라며 “그만큼 백신으로 얻는 공중보건적 이득이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홍역으로 자식과 처를 모두 잃은 정조가 정약용에게 감염병을 극복하는 의학서 ‘마과회통’을 쓰게 지시했다는 설도 있다. ‘마과회통’을 쓴 정약용도 자식을 홍역으로 잃었다.

정부가 올겨울을 앞두고 추진하는 코로나19 백신 추가 접종에 대한 국민적 호응이 낮다. 11월 13일 기준 코로나19 백신 추가 접종 접종률은 60세 이상 연령대 인구 대비 9.6%에 그친다. 지난해 1·2차 접종 때와 비교하면 추가 접종률이 오르는 속도는 턱없이 더디다. 백신이 없었던 과거 감염병 피해를 생각한다면 ‘백신 회피’는 위험한 생각이라는 것이 감염병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박 교수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국가예방접종’으로 추진하는 백신 접종률까지 전 세계적으로 떨어지는 추세”라고 우려했다. 한국에서는 생후 2개월부터 디프테리아, 백일해, 파상풍 등 감염병 접종이 시작된다. 박 교수는 “사회적 거리 두기로 사람 간 접촉이 줄어들면서 감염병 유행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이건 착시에 불과하다”라고도 했다. 박 교수는 지난해 제11회 결핵예방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국가예방접종이 왜 중요한가.
“디프테리아, 백일해, 파상풍 등은 언제든지 유행할 수 있는 잠재적인 위험이 있는 감염병이다. 이런 감염병을 국가예방접종으로 지정해 백신 접종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주변에 디프테리아, 백일해, 파상풍 등 감염병에 걸린 사례는 거의 보지 못했다.
“이들 감염병원 감염 사례가 극히 드문 건 맞다. 그런데도 백신 접종을 해야 하는 이유는 이런 감염병은 방어 면역이 없으면, 언제든 걸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효과적인 치료 약제가 없다. 병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안전한 백신이 있다면, 맞는 게 최선의 예방책 아닌가.”

이론적으로 감염병은 바이러스 접촉을 피하면 안 걸리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일부 사람이 예방 접종을 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해당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있는 인구의 비율이 증가하고, 결국에는 유행성 집단 감염이 발생하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1980년대 소비에트 연방으로, 해당 지역에 백신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다. 예방 접종률이 낮아졌고, 디프테리아가 유행했고, 수만 명의 환자가 사망했다. 최근 미국 뉴욕에서는 예방 접종을 하지 않은 폴리오(소아마비) 환자가 확인돼 감염병 학계에서 논란이 됐다. 소아마비는 백신 접종으로 충분히 예방 가능한 질환이다.”

사회적으로 유행을 막아야 하니 ‘백신을 맞으라’는 논리에는 거부감이 느껴진다.
“예방 접종은 질환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가장 과학적인 방법이다. 예방 접종은 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 저렴한 보험이다. 보호자들에게 이런 얘기를 종종 한다.”

디프테리아나 소아마비 외에 대중적으로 알려진 감염병 사례도 있나.
“조선 시대 문효세자의 목숨을 앗아갔던 홍역도 위험한 감염병 중 하나다. 홍역은 감염률이 굉장히 높기 때문에 예방 접종률이 조금만 줄어도 대유행할 가능성이 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전 세계 홍역 2차 예방 접종률이 크게 줄었다. 홍역이 다시 유행할 수도 있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필수 백신 접종률이 많이 떨어졌나.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니세프(UNICEF) 보고에 따르면, 지난해 거의 모든 국가에서 소아의 예방 접종률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백신 접종 트렌드가 많이 바뀔 것으로 보나.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선택 접종인 로타바이러스 백신이 국가예방접종에 도입될 가능성이 있고, 6가 DTaP 혼합 백신 같은 새로운 혼합 백신 도입 여부에 대해 논의할 여지가 있는 것 같다.”

6가 혼합 백신이 뭔가. 여섯 가지 질병을 모두 예방하는 백신이라는 건가.
“혼합 백신은 여러 가지 항원을 포함한 백신이다. 여섯 가지 질병을 예방한다기보단 여섯 가지 항원을 대상으로 한다고 이해하면 쉬울 것 같다. 국내에서는 이미 디프테리아, 백일해, 파상풍, 폴리오를 합친 4가 DTaP 혼합 백신(DTaP-IPV), 여기에 B형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를 합친 5가 DTaP 혼합 백신(DTaP-IPV/Hib)이 사용되고 있다. 최근 5가 DTaP 혼합 백신에 B형 간염 백신이 혼합된 6가 DTaP 혼합 백신이 나왔다. 혼합 백신의 가장 큰 장점은 주사 횟수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를 섞은 혼합 백신을 도입해야 할 이유가 있나. 그냥 여섯 번 주사를 맞으면 안 되나.
“굉장히 어른 중심적인 생각이다. 어린아이들은 생후 2개월부터 12개월까지 한 달에 몇 번씩 주사를 맞는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주사를 놓고 나서 표정을 보면, 아기들이 말로 표현을 못 해서 그렇지 정말 아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또 접종 횟수를 줄이면 의료기관에서는 각각의 백신을 위한 공간 마련이 쉬워지고, 보관에 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올겨울 감기약 품귀를 우려해서 정부가 단가를 올려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의료 현장의 반응은.
“출산율 감소로 인구가 줄어들면 제약사 입장에서는 수요가 줄어 현재의 단가로 손해난 부분을 메우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페니실린G 같은 필수의약품 항생제를 국가가 좀 더 관리해줬으면 좋겠다고 한다. 이 약은 극히 드물게 사용되지만, 이 약이 없으면 치료가 안 된다. 사용량이 매우 적다 보니 국내 제약사가 생산하는 족족 손해가 돼, 결국 국내 생산을 포기하게 됐다.”

요즘 의대생들 사이에는 소아청소년과 전공을 기피한다는 얘기도 있다.
“다른 나라에서도 소아청소년과는 인기 있는 과목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소아청소년과가 아예 기피 과로 전락할 것 같다. 이런 현상이 수년만 지속돼도 현장에서 어린이를 돌볼 수 있는 의사가 없을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고 보나.
“과거 다양한 전공을 선택하는 것과 달리 현재는 최상위 성적의 아이들이 거의 모두 의대에 진학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현상은 올바르지 않다고 본다. 의사는 무엇보다 사람을 돌보는 영역에 있다. 사람에 대해서 관심이 있고 이해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의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있는 학생이 의사가 돼야 한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굉장히 복잡하다. 환자가 약 처방만으로 호전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관계 속에서 호전되는 경우도 있다. 전문의가 되는 것은 수련 과정을 통해서도 배우고 익힐 수 있으니, 의사가 되려면 성실하고 책임감 있으며 무엇보다 사람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있어야 할 것 같다. 혹시 자녀를 의료인으로 키우고 싶은 부모라면, 먼저 우리 아이에게 이런 성향이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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