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사이언스카페 | 온난화 환경 불평등 어찌 하나] 온실가스 배출 적은 저소득 국가, 홍수·폭염 피해는 몰렸다
전 세계가 지구 온난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화석연료인 석유와 석탄을 태우면서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가 나와 지구 평균 기온을 계속 높였다. 이로 인해 극심한 가뭄과 홍수, 산불이 잇따르면서 세계 곳곳에 심각한 경제적 피해도 입혔다.
특히 기후 변화 피해는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지도 않은 저개발 국가들에 집중됐다. 11월 6일(이하 현지시각) 이집트에서 개막한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는 기후 변화로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를 본 저개발 국가에 사상 최초로 어떻게 배상할지 논의하기 시작했다.
기후 변화 피해 배상 처음 논의
11월 6~18일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 열린 COP27은 세계 120여 개국에서 온 대표들이 참석했다. COP27 분위기는 심각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11월 6일 COP27 개막식에서 “세계기상기구(WMO) 보고서는 지난 8년간이 사상 최고로 더웠던 시기임을 보여줬다”며 “지옥행 고속도로에서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것과 같다”고 밝혔다.
세계기상기구는 해수면 상승률도 30년 전보다 두 배가 됐으며, 온난화를 유발하는 이산화탄소와 메탄 농도 역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세계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인 150년 전보다 1.15℃ 상승했다. 2015년 195개국이 합의한 파리협정은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 이상 오르지 않도록 각국이 온실가스 배출 목표를 정해 실천하기로 했다. 세계가 합의한 한계선이 눈앞에 온 것이다.
기후 변화 피해는 저개발 국가에 집중되고 있다. 태평양 섬나라들은 해수면 상승으로 국토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으며, 극심한 기상 이변이 불러온 홍수와 태풍은 인도, 필리핀을 강타했다. 파키스탄은 지난 6~9월 연간 평균 강수량 2~3배의 폭우가 쏟아져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기는 홍수를 겪었다. 피해액만 41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COP27은 사상 최초로 기후 변화가 초래한 손해를 보상할 기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공식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이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했지만 이로 인한 온난화와 기후 변화 피해는 고스란히 자신들이 받았다며 배상을 요구했다.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COP27 정상 연설에서 “파키스탄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 세계 158번째로 아주 적지만 인류가 만든 재앙의 큰 피해자가 됐다”며 “기후 위기에 책임 있는 선진국이 피해자인 개발도상국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폭염의 경제적 피해도 저개발국에 집중
그동안 미국과 유럽은 기후 변화 배상금을 마련하면 손해배상 요구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반대했지만, 중국의 지원을 받은 저개발국과 신흥 경제국들이 기후 변화 손해배상을 의제로 삼는 데 성공했다. 최근 기후 변화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저소득 국가에 집중됐다는 연구 결과까지 나와 저개발국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미국 다트머스대 지리학과의 저스틴 맨킨 교수 연구진은 10월 28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기후 변화로 인한 폭염(暴炎)이 전 세계에 수조, 수십조달러의 경제적 손해를 유발했으며, 그 피해는 적도 주변 저소득 국가들에 집중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1992~2013년 각국의 연간 평균 기온과 연중 가장 더웠던 닷새간을 분석했다. 크리스토퍼 캘러한 다트머스대 연구원은 “폭염이 발생하면 곡물이 말라 죽고 노동생산성이 떨어지며 작업장에서 부상도 더 많이 일어난다”고 밝혔다.
분석 결과 온실가스는 부유한 나라들이 더 많이 배출하지만 기온 상승으로 인한 피해는 저소득 국가들이 더 많이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온난화로 전 세계 경제가 입은 누적 피해가 5조~29조달러(약 6685조~3경8773조원)에 이르지만 피해는 나라마다 달랐다. 적도 근처 저소득 국가들은 국내총생산(GDP)이 평균 6.7% 감소했지만, 선진국들은 1.5% 줄어드는 데 그쳤다. 미국 컬럼비아대의 카이 콘후버 교수는 11월 7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이번 연구는 환경 불평등을 다룰 기후 정책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COP27의 핵심 주제인 기후 변화 배상 논의를 뒷받침한다”고 밝혔다.
다트머스대 연구진은 이번 결과는 폭염이나 폭우 피해를 본 나라들을 실질적으로 도울 전략을 알려줄 수 있다고 밝혔다. 크리스토퍼 캘러한 연구원은 “이번 결과는 1년 중 가장 뜨거운 닷새에 경제적 피해가 집중됐음을 의미한다”며 “이 시기에 폭염 피해를 줄일 투자를 집중하면 경제적 보상을 더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 전쟁으로 온실가스 증가
사이먼 스티엘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은 이번 COP27에 대해 “이제 피해 배상에 대한 논의를 위한 공간이 마련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렇다고 당장 각국이 기후 변화 손해배상에 대해 합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배상 기금을 만들지, 기금 분담을 어떻게 배분할지, 아무런 합의도 없는 상태다.
더욱이 최근 정세는 그동안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세계 각국이 봉쇄 정책을 펴면서 2020년 온실가스 배출이 감소했다. 하지만 이제 코로나19 방역 정책이 완화하면서 다시 온실가스 배출이 늘고 있다. 항공 여행이 급증하고 공장 가동도 늘었다.
특히 올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파리협정이 약속한 석탄 사용 감축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러시아가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하자 유럽은 석탄 화력발전을 늘렸다. 글로벌 탄소 프로젝트는 이번 COP27에서 석탄 사용량이 늘면서 올해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전년보다 1.0%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지난 10년간 배출량 증가율의 두 배에 이른다. 인도는 올해 배출량이 6%나 늘 것으로 전망됐다. 글로벌 탄소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의 코린 르 케레 교수는 “이런 추세라면 9년 안에 산업화 이전보다 1.5℃ 이상 기온이 올라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파리협정이 세운 목표가 무너지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1월 11일 COP27에서 “러시아의 전쟁은 전 세계가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환이 시급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인류가 경제적 불평등과 전쟁이라는 난관을 극복하고 온난화를 막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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