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지상주의가 빚어낸 빈자리들 [서필웅 기자의 중동방담]

서필웅 2022. 11. 21.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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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현지시간) 저녁 카타르 수도 도하에서 1시간여 떨어진 신도시 알코르의 알바이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개막전.

개최국 카타르와 에콰도르가 맞붙은 이날 경기 후반 당황스러운 장면이 연출됐다.

하지만, 월드컵 개막전에서 이렇게 경기장 빈 자리가 넘쳐나는 장면을 볼 것이라 생각한 축구팬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제는 한국 축구팬들도 월드컵 그 자체에 집중하고, 선수들이 승리보다는 멋진 경기를 치르기를 바랄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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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현지시간) 저녁 카타르 수도 도하에서 1시간여 떨어진 신도시 알코르의 알바이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개막전. 개최국 카타르와 에콰도르가 맞붙은 이날 경기 후반 당황스러운 장면이 연출됐다. 한창 경기가 진행 중인데 카타르 관중들이 썰물처럼 스타디움을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 후반 중반이 되자 눈에 띄게 빈자리가 보이기 시작했고, 후반 40분이 넘어설 때쯤에는 빈자리가 더 많았다.
사진=AFP연합뉴스
스포츠 세계에서 낯선 일은 아니다. 경기가 실망스러울 때 종종 이런 장면은 나온다. 카타르가 이날 충분히 팬들이 실망할 만한 경기를 치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월드컵 개막전에서 이렇게 경기장 빈 자리가 넘쳐나는 장면을 볼 것이라 생각한 축구팬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의문이 든다. 과연 카타르 축구팬들은 무엇에 실망하며 자리를 뜬 것일까.

흔히 월드컵을 ‘꿈의 무대’라 부른다. 선수들은 월드컵이 펼쳐지는 그라운드에 서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하지만, 선수들에게만 ‘꿈의 무대’가 아니다. 축구팬들에게도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월드컵 경기를 눈앞에서 지켜보고 축제의 일원이 되는 것은 꿈이다. 그렇기에 엄청난 비용을 들여 월드컵이 열리는 나라를 찾는다.

이날도 1만여 명 가까운 에콰도르 팬들이 노란색 유니폼을 맞춰 입고 경기장 한쪽에서 열정적인 응원을 펼치며 낯선 나라에서 축제를 한껏 즐겼다. 하지만, 이보다 몇 배 많은 카타르팬들은 축제를 즐기지 못하고 팀이 패배에 직면하자 빠른 귀가를 위해 서둘러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이렇게 월드컵 개막식 역사상 가장 보기 흉한 황량한 관중석 장면이 만들어졌다.

과거 한국도 월드컵에서 승리에만 집착했던 시절이 있었다. 팬들은 한국축구가 세계무대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무리한 승리만 대표팀에 요구했고, 패배하면 가차없이 실망했다. 다행히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란 쾌거 속 한국축구뿐 아니라 팬들도 성장했다. 이제는 한국 축구팬들도 월드컵 그 자체에 집중하고, 선수들이 승리보다는 멋진 경기를 치르기를 바랄 수 있게 됐다. 40년 세월이 지나며 팬들도 그만큼 성숙했다.

개막전이 끝난 뒤 해외 언론에서 관중 동원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가 나왔다. “진짜 축구팬이라면 월드컵 개막전 중간에 자리를 떠날 리가 없다”는 것이다. 의혹이라기보다 개막전을 찾은 팬들에 대한 깊은 실망감을 제기한 기사다. 그만큼 이날 카타르 축구팬들에게서 축구를 사랑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과연 이들도 몇 십년 후에는 제대로 월드컵을 즐길 수 있게 될까. 개막식이 열리는 관중석에서 반대편 황량한 빈 좌석들을 바라보며 든 생각이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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