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4대 과기원 `예산 소동` 후폭풍

2022. 11. 21.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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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2022 프로야구 한국시리즈가 SSG 랜더스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시즌이 끝나자 어김없이 순위 경쟁보다 더 뜨거운 '스토브 리그'가 시작됐다. 스토브 리그는 프로야구 한 시즌이 끝나고 다음 시즌이 시작하기 전까지의 비시즌 기간을 일컫는다. 스토브(난로)를 놓고 각 구단의 선수 영입과 시즌 계획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비시즌임에도 팬들의 관심이 불탄다라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각 구단들은 매년 다음 시즌 전력 보강을 위해 저마다 스토브 리그에 뛰어들고 있다. 내년 시즌에서 이미 검증된 실력으로 결정적 역할을 해 줄 'FA(자유계약선수) 영입'을 비롯해 기존 선수와 재계약, 방출 여부 등을 정하고, 각 팀 선수 간 '트레이드 카드'도 맞춰 보면서 다가오는 시즌을 대비한다. 시즌 중에 노출된 팀의 약점을 보완해 내년 시즌에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프로야구의 스토브 리그 얘기를 꺼낸 것은 최근 과학계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국회의 내년 예산 심의를 앞두고 KAIST(한국과학기술원)를 포함한 GIST(광주과학기술원),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 UNIST(울산과학기술원) 등 '4대 과기원'의 예산을 새로 신설되는 교육부 소관의 '고등·평생교육지원 특별회계'로 이관하겠다고 기획재정부가 과기정통부에 통보한 것이다.

4대 과기원의 주무 부처인 과기정통부가 매년 정부출연금으로 지원하는 규모는 약 5200억원. 이 예산 주머니를 신설되는 교육부의 고등교육 특별회계로 옮기겠다는 것이다.

프로야구의 트레이드에 비유하면 '기재부'라는 구단이 '4대 과기원' 선수를 이끌고 있는 과기정통부 구단에 일종의 '예산 트레이드'를 하자고 제안한 것과 같은 상황이다. 하지만, 트레이드를 위한 물밑 사전 협상 없이 기재부가 일방적으로 '예산 트레이드'를 하자고 카드를 꺼낸 셈이다.

기재부는 예산 주머니가 과기정통부에서 교육부로 바뀌더라도 현행 예산 편성·집행 체제와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설득했고, 4대 과기원에는 예산 트레이드에 동의하면 각 기관별로 100억∼200억원의 예산을 더 주겠다는 사탕발림 약속을 제시하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이 예산 트레이드는 국가 예산권에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는 기재부가 사전에 짜놓은 각본과 연출에다 관련 부처인 교육부의 '눈감고 있기', 과기정통부의 '눈치 보기', 4대 과기원의 '얇은 귀' 연기가 더해져 설익은 채로 막을 올렸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과학계 관객들의 거센 항의와 반발에 부딪혀 막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기재부 주도의 신박했던 '부처 예산 트레이드'는 왜 결렬됐을까. 무엇보다 트레이드의 기본 원칙이라 할 수 있는 '윈윈'에 어긋난 채 기재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한 게 가장 큰 원인이다. 트레이드는 양쪽 이해 당사자 간 신뢰와 호혜가 맞아 떨어질 때 가능한 법이다. 하지만, 기재부는 이를 깡그리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추진했고, 예산 트레이드 파트너인 과기정통부는 예산 눈치를 보느라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자칫 4대 과기원을 타 구단에 넘겨줄 뻔 했다. 일부 과기원 역시 돈을 더 주겠다는 기재부의 말에 귀가 솔깃해져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예산 트레이드에 반대하는 과학계 팬들의 목소리는 계속 커졌고, 이런 여론에 힘입어 과기정통부가 기존 수세적 입장에서 공세적 입장으로 돌아서 4대 과기원 선수들을 트레이드하지 않겠다고 최종 통보했다. 이를 기재부가 수용하면서 예산 트레이드는 협상 테이블로 나온 지 1주일 만에 없던 일로 됐다.

4대 과기원은 예산 트레이드 과정에서 눈 앞에 보이는 돈을 좇으려는 애매모호한 행동에 그동안 국가 과학기술 발전과 과학기술 분야 고급 인재 양성을 위해 헌신해 온 공든탑을 자칫 무너뜨리는 우(愚)를 범할 뻔 했다. 그리고 돈 앞에 흔들린 나머지 과기정통부에 실망감을 줬다.

정부 부처에서 '갑중의 갑'으로 통하는 기재부는 결렬된 예산 트레이드로 인해 분명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이를 계기로 기재부가 내년 4대 과기원을 포함한 과학기술 분야 예산에 어떤 생채기를 낼 지 우려스럽다. 벌써부터 뒷맛이 개운치 않은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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