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앨 고어의 Climate Trace
◆ 매경춘추 ◆
COP27이 끝났다. 만약에 탄소에 색깔이 있어서 미세먼지나 수질오염처럼 볼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탄소 감축 주제로 국가 지도자들이 모여 27차례나 회의를 했을지 의문이다. 그런데 이번 기후변화 총회에서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과 함께 신박한 환경단체가 등장해 화제가 됐다. 탄소 배출량을 데이터와 그래프로 시각화해 실시간으로 보여주며 탄소 감축을 촉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이 단체의 이름은 기후추적(Climate TRACE)이다.
올해 1월 앨 고어는 다보스포럼에서 인공위성을 이용해 개별 국가·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측정할 기술을 공개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그동안 온실가스 배출 데이터는 개별 국가의 자체 분석을 기초로 한 것이라 측정이 어렵고 규모도 거대해서 문제로 실감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기후추적' 덕분에 인공위성이 실제 배출량을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급진적으로 투명하게 감시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예컨대 2021년 온실가스 배출량 총 563억t 가운데 1위 배출지는 2억861만t을 배출한 미국 텍사스주의 퍼미언 분지로 셰일오일 생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2위는 러시아 국영 가스프롬의 석유·가스전이 있는 우렝고이스코예. 3위는 천연가스전이 있는 미국 동부 마셀러스로 약 1억3만t을 배출했다. 우리나라도 포스코 광양제철소, 태안발전소, 당진발전소 등 탄소 배출량을 기준으로 총량과 순위를 매겨 보여주고 있다.
'기후추적'은 교통수단, 공장, 목장 등 개별 시설 단위로 배출량이 측정되기 때문에 실감 나는 정보를 알려주고 가짜뉴스를 피할 수 있게 해준다. 인공지능이 측정하는 데이터이기에 이데올로기나 당파성이 개입할 여지가 없어서 정부는 최선의 전략을 세울 수 있고 기업과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자료들을 들추며 추적 단체의 아이디어도 좋았지만 '바른 소년' 범생 이미지 앨 고어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1985년 '코스모스'를 쓴 과학자 칼 세이건을 기후위기 증인으로 의회에 세우고 의원들에게 지구온난화의 문제를 알린 사람이 바로 앨 고어 의원이었다. 이후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보고서를 바탕으로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정한 교토의정서의 합의를 이끌어낸 것도 같은 사람이다. 2006년에는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을 통해 기후변화 문제를 세계인에게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했으며, IPCC 연구진과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대통령 선거에선 떨어졌지만 더 큰 세계에서 환경대통령으로 거듭난 정치인 앨 고어. 이런 정치인 우리나라엔 없을까. 아옹다옹 그들만의 리그에서 치고받고 싸우는 모습, 바라보는 것조차 부끄럽다. 현직에 있을 때는 물론이거니와 직을 떠나서도 우리 사회를 위해 헌신하며 자신의 사명을 추구하는 정치인, 다음 생에서나 볼까 싶다.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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