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예금 금리 인상 자제하라”… 은행권 “올리라고 하더니 인제 와서 딴말”

정민하 기자 입력 2022. 11. 21.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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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연 5%를 돌파하는 등 수신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금융당국이 예금금리 인상 자제를 당부하고 나섰다. 은행의 자금 쏠림이 제2금융권의 유동성 위기와 취약 차주의 대출금리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은행권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년 전만 해도 예대마진 격차 축소를 정책 목표로 제시했던 당국이 상반된 요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당국 요청에 따라 회사채 시장 안정을 위해 은행채 발행을 줄이고 있고 대내외 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져 은행이 예금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점도 은행권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 예금금리 안내문. /연합뉴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최근 시중은행들에 예·적금 금리 인상 경쟁을 자제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잇달아 김주현 위원장과 시중은행장 간담회, 은행권 금융시장 점검회의를 열고 “은행권 시중 자금 쏠림현상이 제2금융권의 유동성 부족을 야기할 수 있다”며 “과도한 자금조달 경쟁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제2금융권에서 은행권으로의 ‘자금 쏠림’을 막기 위해서다. 은행이 높은 금리로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면, 상대적으로 건전성이 취약한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의 유동성 부족을 야기할 수 있다. 우량채 등을 통해 자금조달이 가능한 시중은행과 달리 저축은행은 자금을 끌어모을 수 있는 창구가 예·적금으로 제한적이다. 실제 시중은행이 정기예금 금리를 5%대로 올리자 저축은행권도 연 6%대에 진입한 상황이다.

취약 차주의 상환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점도 당국에는 부담이다. 예·적금 금리가 오르면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가 상승한다. 신용대출뿐만 아니라 주택담보대출(주담대)과 전세자금대출 등 은행권 변동형 대출금리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가 오르면 대출 금리 역시 상승한다. 지난달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9월(3.40%)보다 0.58% 포인트 높은 3.98%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기준금리 추가 인상이 예상되면서 주담대 금리 상단 역시 8% 돌파를 눈앞에 뒀다.

은행권은 당국의 이러한 움직임에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다. 당초 은행들의 예금 금리 인상 경쟁이 시작된 배경엔 올해 초부터 당국이 주도한 예대금리차(대출금리와 저축성 수신금리 차이) 공시 등 정부 정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인 예대금리차 공시는 은행들의 지나친 ‘이자 장사’를 막기 위해 지난 8월부터 본격 시행됐다. 제도 도입 후 은행들은 정부 의도대로 1위를 피하고자 대출금리를 내리는 한편 시장금리 상승분 이상으로 수신금리는 올려 왔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당국의 은행채 발행 자제 주문도 예금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은행채는 한전채와 함께 레고랜드 사태 전부터 채권시장 자금을 빨아들여 왔다. 그런데 레고랜드 발(發) 채권시장 위축 사태로, 남은 채권 수요마저 은행으로 몰리면 자금경색이 심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당국은 은행채 발행 자제령을 내렸다. 은행들은 주요 돈줄인 은행채가 막혔으니 예·적금 의존도가 높아지게 되고, 금리를 높여 유인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선 은행 정기예금 경쟁에 찬물이 끼얹어진 상황에서 저원가성 예금이 빠르게 줄고 있는 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저원가성 예금은 수시입출금예금처럼 금리가 낮아 은행 입장에서는 적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상품이다. 그러나 최근 고금리 예금으로 돈이 몰리면서 은행 정기예금 잔액이 저원가성 예금 잔액을 추월하는 현상까지 벌어졌다.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수익성 악화까지 이어질 수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저원가성 예금 이탈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 통상 수신금리를 인상하고 은행채 발행을 늘려야 하는데 사실상 이 두 통로가 다 막힌 상황”이라면서 “(당국의) 취지는 이해가 가지만, 자금 조달 여건이 어려워지면서 애로사항이 많은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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