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 12시간’ 제한 사라지나…근로시간 개편 따져보니

홍성희 2022. 11. 2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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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공약했던 52시간제 개편의 밑그림이 최근 공개됐습니다. 고용노동부의 의뢰를 받은 전문가 기구 '미래노동시장연구회'에서 지금까지 논의한 안을 지난 17일 발표했습니다. 고용부가 노동시장 개혁 추진을 발표한 지 다섯 달 만입니다.

연구회는 "노사가 근로시간을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게 선택권을 확대했다"고 강조했습니다. 구체적인 방안으론 '연장근로시간 제한 단위 확대'를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노동계는 "52시간제 무력화"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무엇이 어떻게 바뀌는 것이고, 쟁점은 뭔지 바쁜 직장인들을 대신해 자세히 풀어드립니다.

■ '1주에 12시간' 벽이 사라진다

연구회는 연장근로시간 제한 단위를 현행 '1주일'에서 '월 단위 이상'으로 확대하는 안을 제시했습니다. 근로기준법은 "하루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돼 있습니다. 많은 직장인이 아침 9시에 출근해 저녁 6시에 퇴근하는 이유입니다. 이걸 '법정근로시간'이라고도 합니다. 하루에 8시간을 넘겨서 일하면 그때부터 '연장근로'가 됩니다. 연장근로를 무한대로 허용하면 안 되겠죠. 그래서 근로기준법은 "1주간에 12시간을 한도로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1주간에' 라는 표현이 보이시죠? 이게 바로 앞에서 언급한 '연장근로시간 제한 단위'입니다. 현재는 일주일을 단위로 제한하고 있는 것이죠.

연구회는 이 단위를 월 이상, 그러니까 월 또는 반기, 분기, 연 단위로 다양화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연장근로시간 제한 단위를 '월'로 가정해보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 1달간에 52시간을 한도로'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게 됩니다. 즉, 한 달 동안의 연장근로시간을 다 합쳐서 52시간만 넘기지 않으면 된다는 의미입니다. 한 달이 단위이기 때문에 한 주에는 연장근로를 얼마나 하든 상관이 없습니다. 52시간 한도 내에서 특정한 주에 연장근로를 몰아서 할 수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 제한 단위를 '1분기'로 더 넓힌다면 산술적으로 ' 1분기 안에 156시간'(52시간×3달)을 한도로 연장근로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연장근로제한 단위가 확대되면 '1주에 12시간'이란 벽이 사라지게 됩니다. 필요하면 1주에 연장근로만 17시간을 해도 되는 겁니다. 연구회가 선택권을 확대했다고 하는 이유입니다. 물론 연장근로가 무제한으로 허용되는 건 아닙니다. 연구회는 이 경우 근로일과 근로일 사이에 '11시간 연속으로 휴식'하는 것을 강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어젯밤 9시에 퇴근했다면 퇴근 시각으로부터 11시간이 지난 뒤에야 출근할 수 있게 하는 겁니다.


■ 누구를 위한 선택권?

연구회의 안대로 제도가 바뀌면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요? 직장인들에게도 도움이 될까요? 집중적인 연장근로가 필요한 직장인, 즉 '나는 1주일에 12시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직장인이 있다면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러나 이런 직장인이 많을 것 같지 않습니다. 최근 노동시장에서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중시되고, '조용한 사직'이 유행하는 흐름이기 때문입니다. 조용한 사직이란 '직장에서 최소한의 일을 한다'는 뜻의 신조어입니다. 취업 플랫폼 '사람인'이 20~39살 남녀 2,708명을 대상으로 '가장 입사하기 싫은 기업 유형'을 조사한 결과에서는 '초과 근무 많은 기업'이 41.5%로 1위로 나온 적이 있습니다. 이런 직장인들에게 '자유롭게 연장근로를 할 수 있는 선택지'를 주면서 선택권을 확대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반면 경영계는 개편안이 나오기 전부터 연장근로제한 단위 확대를 요구해왔습니다. 손경식 한국경영인총연합회 회장은 지난 5월 국회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연장근로를 1주 단위 제한에서 월이나 연 단위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태희 중소기업중앙회 상무도 "아직 많은 중소기업이 구인난, 불규칙한 초과근로 등으로 주52시간제 시행에 애로를 겪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일까요? 중소기업은 일감이 시장 상황에 따라 들쭉날쭉할 때가 많습니다. 따라서 연장근로도 불규칙한데 일률적으로 12시간만 허용하니 회사 운영이 어렵다는 뜻입니다. 사실 연구회도 발제문에서 "일시적으로 일이 몰리는 경우 연장근로를 유연하게 활용하여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노사의 선택권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적었습니다. 경영계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물론 기업이 살아야 거기서 일하는 사람도 살 수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경영진을 위한 선택권이라고 볼 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연장근로 유연화가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설문조사에서 보듯 '오래 일해야 하는 회사'는 취업 기피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대기업-중소기업 간 근무조건의 격차가 갈수록 커져, 노동시장이 둘로 나눠지는 이른바 '이중구조'가 심화 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효율성이 아니라 연장근로에 의존해 문제를 해결하면 인력난이 더 가중될 수 있습니다.


■ 회사가 일방적 시행 가능한가?

그렇다면 연장근로시간 제한 단위를 '월 이상'으로 변경하는 건 회사가 일방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걸까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연구회는 발제문에서 변경을 위한 요건에 대해선 논의 중인 안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당사자 간에 합의하면 1주간에 12시간을 한도로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연장근로의 요건은 당사자 간 합의입니다. 당사자는 개별 노동자를 의미합니다. 단체교섭이나 노사협의회를 통한 집단적인 동의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현장에서는 연장근로를 할 때마다 회사에서 동의서를 받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대법원은 "당사자 간 합의는 연장근로를 할 때마다 하는 것이 아니고 근로계약 등으로 미리 정할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근로계약서나 취업규칙으로 미리 연장근로의 근거를 포괄적으로 정해놓고, 이에 근거해 연장근로 명령을 내리는 경우가 많은 겁니다. 개별 노동자의 동의 절차가 현실에선 종종 무력화되는 이유입니다.

변경 요건을 현재처럼 당사자 간 합의로 할지, 아니면 집단적 동의로 설정할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개별 노동자가 회사를 상대로 교섭력을 발휘해 원하는 대로 관철 시키긴 쉽지 않겠죠. 그러나 집단적 동의가 요건이 되면 다릅니다. 근로자 대표가 동의해야만 근로시간 제도를 변경할 수 있습니다. 근로자 대표는 누구일까요? 근로기준법에선 "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 노동조합,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과반수 조직된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를 별도로 선출해야 합니다. 선출 방식에 대해선 법에 규정된 게 없습니다. 다만 사용자의 간섭이 배제되고 노동자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 보장돼야 한다고 판례는 보고 있습니다.

노동계에선 집단적 동의라는 '안전 장치'가 들어오더라도 제도 변경이 일방적으로 이뤄질 우려는 여전하다고 봅니다. 특히 중소업체에서 근로자 대표를 선출하는 경우, 실질적으로는 회사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채워질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섭니다.

연구회가 이번에 공개한 안은 최종안은 아닙니다. 연구회는 앞으로 노사 의견 수렴을 거쳐 다음 달 12일 최종안을 정부에 제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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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희 기자 (bombom@kb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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