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부순 조선 왕 초상화 봉안처 ‘선원전’ 실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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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고종 황제(1852~1919)가 한일병합 뒤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았던 덕수궁에서 황실 의례를 치르던 전각이던 옛 선원전(璿源殿) 터의 기초 부분 흔적이 드러났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22일 오후 서울 정동 옛 덕수궁 선원전 터 발굴 현장에서 조사 성과를 공개한다고 21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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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고종 황제(1852~1919)가 한일병합 뒤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았던 덕수궁에서 황실 의례를 치르던 전각이던 옛 선원전(璿源殿) 터의 기초 부분 흔적이 드러났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22일 오후 서울 정동 옛 덕수궁 선원전 터 발굴 현장에서 조사 성과를 공개한다고 21일 밝혔다. 조사는 역대 조선왕조 임금들의 초상화 어진을 봉안했던 선원전 터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것으로, 지난해 6월부터 최근까지 약 1년6개월간 이어졌다.
선원전은 1897년 처음 세웠다. 1900년 불에 타 사라진 뒤 옛 경기여고 터인 당시 미국공사관 북쪽 수어청 자리로 옮겨 1901년 다시 세웠다. 1919년 고종이 독살 의혹 속에 서거한 뒤 일제가 전각을 무단철거하고 조선저축은행 중역사택을 지었고 해방 뒤 경기여고가 들어섰다. 궁능유적본부 쪽은 “선원전과 주변 건물 중심으로 조사를 벌여 전각과 그 앞에 설치하는 넓은 기단 모양의 월대(月臺) 기초시설, 지붕 있는 긴 회랑인 행각을 비롯한 부속 건물들의 위치와 규모를 일부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선원전 건물은 중건 당시 정면 9칸, 측면 4칸 규모였다. 현재는 정면 6칸, 측면 4칸의 흔적만 남았다. 조사단은 현장에서 길고 크게 다듬은 돌과 기왓조각 등을 써서 건물 기초를 만든 자취를 확인했고, 옛 사진 등에 나왔던 전각 정면부의 계단도 위치를 파악했다. 기존 선원전 영역에는 다른 전각인 흥덕전(興德殿)이 먼저 들어서 있었으나 화재 뒤 선원전 재건 공간을 얻기 위해 전각을 통째로 이전한 사실도 조사를 통해 알게 됐다. 흥덕전은 선원전 화재로 불탄 어진을 복원하기 위해 각 지역 어진을 옮겨와 모사하는 작업이 벌어졌던 곳으로, 헌종의 왕비 효정왕후, 순종 황제의 황비 순명효황후 등의 유해를 임시 안치했던 빈전(殯殿)으로도 쓰였다.
이 밖에도 왕이 제례 전 옷을 갈아입고 준비하던 숙경재와 제례를 준비하며 머무르던 어재실, 제례 물품을 보관하던 좌중배설청 등의 위치와 규모를 추정할 단서들을 얻었고, 풀꽃을 심기 위해 돌을 높게 쌓아 만든 화단인 화계, 우물 등도 찾아내 선원전 복원의 근거 자료를 상당수 확보했다는 평가다. 궁능유적본부 쪽은 발굴 성과와 사진, 문헌 기록 등을 바탕으로 오는 2039년까지 선원전 영역 복원 정비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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