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칼럼] 금리인상기, 시장 혼란만 키운 금융 당국자들

정해용 기자 2022. 11. 2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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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현직 시절인 2020년 10월 6일(현지 시각) 오후 2시50분쯤 트위터에 “나는 협상팀에 (경기 부양안) 협상을 대선 이후까지 중단하라고 지시했다”라는 글을 남겼다. 당시 공화당과 민주당이 코로나19로 위축된 경기 부양을 위해 각각 1조6000억달러, 2조4000억달러의 부양책을 제시해 협상하고 있었는데 이를 대선 이후까지 미루기로 지시했다는 내용이었다.

트윗이 나오면서 전날보다 0.6% 상승 중이던 S&P500지수는 3360포인트(P) 급락했고 전날보다 1.4% 하락한 3360.97로 마감했다. 트윗 하나로 시장 대표 지수를 2%가량 떨어뜨린 셈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이런 식으로 시장을 뒤흔든 경우가 종종 있었다. 지금은 전기차 기업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트럼프와 비슷한 돌출 발언을 해서 금융시장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레고랜드 사태가 이와 유사한 케이스다.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세계 10대 경제 대국인 대한민국의 채권시장을 요동치게 했다. 김 지사는 지난 9월 28일 강원도가 지급보증한 산하 공기업 강원도중도개발공사(GJC)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채무를 갚지 못하겠다며 GJC에 대한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ABCP는 부도처리됐다. 도의 재정부담을 줄이겠다는 명목이었지만 지방자치단체가 보증한 채권마저 부도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채권시장의 자금 경색과 금리 급등으로 이어졌다. 이 여파로 정부는 50조원 이상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했다.

평생 금융시장에 종사했던 전문가들도 섣부른 발언으로 시장의 변동성을 키우는 데는 뒤지지 않는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1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금융시장의 전반적 상황을 고려해 열석발언권 등을 포함, 금융위의 의견을 한국은행에 전달할 필요가 있다’는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의 의견에 대해 “감안해 조치하겠다”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감안해 조치하겠다는 답변이 시장에 알려진 이날 오후 국고채 3년물 금리는 갑자기 10bp 넘게 하락하는 등 채권시장은 출렁였다.

열석발언권은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장에 정부 관계자가 참석해 의견을 밝힐 수 있는 권리다. 오는 24일 열리는 금통위에 김 위원장이 열석발언권을 행사해 참석한 후 금리의 과도한 인상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말할 가능성이 있다고 시장은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날 3년물 국고채 금리는 전날보다 0.117%P 내린 4.068%로 마감됐다. 일각에서는 채권시장의 기준이 되는 3년물 국고채 금리가 내려간 것이 기업 자금 조달 측면에서 나쁘지 않은 이벤트였다는 평가도 있지만 결국 변동성만 키웠다는 평가가 많다.

흥국생명의 외화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행사 사태도 금융전문가 출신이 이끄는 회사에서 혼란이 시작된 사례다. 지난 1일 흥국생명은 5억 달러 규모의 신종자본증권(달러 표시 영구채) 조기상환(콜옵션)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시장에 충격을 줬다. 신종자본증권은 만기가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보통 5년 후에 갚는 것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시장의 관례인데 이를 깨고 조기상환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한국 채권에 대한 신뢰가 급락했다. 13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시장이 충격을 받자 부랴부랴 흥국생명은 다시 콜옵션을 행사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금융위원회와 흥국생명은 미리 이 사안을 논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흥국생명은 한국은행 부총재보 출신 사장이 이끄는 회사고 금융위원회는 국내 최고의 금융시장 전문가 집단인데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행사를 시장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 파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부분 본인의 영향력 과시를 위해 의도적으로 시장을 흔들었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인과 관료, 경영인들은 본인들의 말과 결정이 어떤 파고(波高)를 일으킬지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시장에 충격을 준 경우가 대부분이다. 레고랜드 사태를 제외하고, 최근 시장을 흔든 다수가 평생 금융 밥을 먹은 사람들이기에 더욱 아쉽고 한심하다.

[정해용 증권부 시장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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