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전기 ‘동시에 2모작’···“서로 태양광 하겠대요”
2022. 11. 21. 07:15
‘영농형 태양광 시험’ 파주 객현2리 가보니…수확 감소 크지 않고 소득은 안정
영농형 태양광 설치 후 이곳이 올해 3번째 수확기를 맞았다. 그간 벼와 콩 등을 심었다. 콤바인을 몰다 잠시 취재진과 만난 김태영 객현2리 이장(61)은 “농민 입장에선 밑에서 작물을 재배하고, 위에선 태양광 수익이 나니까 안정적인 소득을 얻을 수 있어 굉장히 취지가 좋죠. 기계를 사용할 때 애로사항이 조금 있지만 조심하고, 시간을 좀더 들이면 된다”고 말했다.
땅에선 식량농사, 하늘에선 햇빛농사 동서발전은 지역환원 사업의 일환으로 2019년 12월 이 마을 농지 3곳에 총 300㎾ 규모의 영농형 태양광을 설치했다. 인근 마을 몇곳에도 제안을 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이곳 객현2리만 이장이 뜻이 있어 성사가 됐다. 동서발전이 발전수익을 마을에 기증하는 데 연간 1000만원 정도다. 마을 사람들은 이 돈을 마을 꽃길 가꾸기나 불우이웃돕기 등에 활용한다. “마을 어른들을 모시고 여행을 가고 싶었지만, 그간 코로나19 때문에 애로사항이 많아 대신 마을 꽃길 가꾸기 등에 썼어요. 다행히 어르신들이나 젊은이들이나 일을 갈 때 꽃을 보니 힐링이 되고 기분이 너무 좋다고 합니다. 다른 마을 분들이나 지역 농업기술센터 분들도 우리 사례를 많이 보고 갑니다.” 김 이장의 아내가 뿌듯해하며 말했다.
사실 농촌에서의 태양광은 돈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격거리 제한이 있는데다 마을 주민들의 호응을 얻어야 허가를 받기 쉽다. 처음 보급할 때는 이렇게 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들여와 주민에게 혜택을 주는 방식도 고려할 만하다. 영농형 태양광으로 실제 농사도 가능하고, 발전 수익도 얻을 수 있다는 게 증명되자, 마을 여론이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우려만큼 경관을 해치거나 건강상의 우려가 없다는 점도 알게 됐다.
김태영 이장은 “처음엔 주민들이 태양광 들어오는 데 반대를 많이 했는데, 동네에서 조금 벗어나 설치하고, 직접 마을 수익으로 돌아가니까 지금은 마을 사람들이 기회만 되면 서로 하겠다고 할 정도로 동네에선 굉장히 호응이 좋다”고 전했다.
농지에서 식량농사와 햇빛농사를 동시에 지을 수 있는 건 식물에 광포화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성호 에너지전환포럼 이사는 “모든 식물은 광포화점이라고 하는, 성장에 필요한 빛의 양이 정해져 있다. 그 이상 오는 건 식물 성장에 도움이 안 되고 오히려 피로도만 높일 수 있다. 태양광 모듈을 농지 위에 설치해 하루에 필요한 빛만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이격거리를 둬 빛이 들어오게 하면 햇빛농사도 짓고 식량농사도 지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음지식물의 경우 빛을 차단해 필요한 양만 받게 하면 오히려 식물 성장에 도움이 된다. 실제 음지식물인 녹차의 경우 영농형 태양광 아래에서 수확량이 더 증가하는 것으로 나온다.
농지 훼손 없이 태양광발전 가능 이곳 1000평 넓이의 논은 약 6 대 4의 비율로 시험구와 대조구로 나뉘어 있다. 영농형 태양광 시설 아래에 있는 벼와 그렇지 않은 상태의 벼의 수확량을 비교하기 위해서다. 태양광 모듈 아래에 있는 시험구에는 퇴비를 줄여서 준 곳도 있다. 일사량이 부족하면 작물이 웃자랄 수 있는데 이때 비·바람에 작물이 넘어가는 ‘도복(倒伏)’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서울대가 이곳에서 실증연구 사업을 하는 중인데 토양과 햇빛, 기상 등 관련 데이터를 세밀하게 파악하고 있다. 수확량은 작물의 종류에 따라 10% 내외로 줄지만 품질상 차이는 없다고 한다. 이날 벼도 눈으로 봐서는 양쪽의 차이를 알기 어려웠다.
태양광 모듈을 지지하는 기둥은 이곳에선 사각형 기둥을 쓰지만 앞으론 원통형이 권장된다. 원통형은 농기계와 부딪힐 때 사각형 기둥과 달리 충격을 받아도 잘 꺾이지 않기 때문이다. 기둥도 농기계 작업이 효율적으로 이뤄지도록 6m 간격으로 떨어뜨리는 게 좋다. 이곳의 기둥 폭은 5m라 폭 2m 정도인 콤바인이 미처 수확하지 못하는 곳이 생겨 한 번 더 지나가야 했다. 남재우 한국영농형태양광협회 이사는 “(벼를 베는) 지금은 그래도 괜찮은데 이앙기를 쓸 때는 여섯줄을 심고 세줄, 네줄이 남으면 이곳에 모를 심기 위해 기존에 심은 걸 밟고 지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태양광 모듈은 한화큐셀에서 만든 4×8타입(셀이 4개씩 8줄로 된) 단면형을 쓴다. 지금은 발전량이 더 많고, 뒷면으로 일부 빛이 들어와 작물 성장에도 좋은 양면형 모듈을 권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모듈도 고정형보다는 태양을 바라보는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 형태가 더 좋다. 김창한 이사는 “(가변형은) 효율이 높아 3~9월까지는 일사량이 많아 (태양광 100㎾ 기준) 하루 평균 300~400kWh 정도로 발전량에 큰 차이가 없지만, 해가 낮아지는 겨울에는 모듈을 60도로 세워놓으면 50~100kWh 정도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각도 조절은 전기 생산에도 도움이 되지만 농작물 보호에도 중요하다. 비가 올 경우 모듈에서 흘러 떨어지는 낙숫물의 피해가 클 수 있다. 이때 모듈을 수직 형태로 세우면 거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 모듈에서 내려온 빗물을 집수해 갈수기에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농가소득 증대·에너지 전환에 기여 국내에서 영농형 태양광 실증사업이 처음 시작된 때는 2016년이다. 김창한 한국영농형태양광협회 사무총장이 2015년 일본을 여행하다 우연히 영농형 태양광을 발견한 게 계기가 됐다. 30년 넘게 유기농 농사를 해온 김 사무총장은 농민의 경제적 형편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늘 고민이었다. 그 해법을 태양광발전에서 찾았다. 김 사무총장은 “그때만 해도 탄소중립은 생각도 못 했다. 다만 평생 농민운동을 했지만 실제 농민에게 도움을 준 게 없어서 고민하던 차에 영농형 태양광을 보고, 농민에게 연금처럼 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2015년 솔라팜을 세우고 이듬해부터 충북 오창에서 영농형 태양광을 시험했다. 인삼과 쌀, 감자, 무, 배추, 양파 등을 재배하면서 수확량 감소율(감수율)을 조사했더니 15% 내외로 크지 않았다. 품질도 큰 차이가 없었다. 600평 정도의 논밭에서 유기농 농사를 지었을 때 소득은 연간 200만원이 채 안 됐다. 그마저도 가격 급변에 따라 소득이 얼마나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 반면 영농형 태양광을 하면 투자 원금과 이자, 관리비용을 다 빼고도 월수입이 80만~100만원 나왔다. 발전수익이 농민의 소득 보장 수단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후 전국을 다니며 정책설명회를 열고, 관청과 국회를 찾아 설득했다. “직접 본 농민들의 반응은 뜨거워요. 하나같이 이건 꼭 해야 한다는 거죠. 일반 농촌형 태양광과 달리 밑에서 농사를 짓기 때문에 농지 훼손도 없어요. 다들 태양광을 무슨 혐오 시설처럼 보는데 사실 일반 비닐하우스보다 더한 혐오 시설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영농형 태양광은 지역소멸이나 농촌 고령화에 대응할 수 있는 좋은 정책이 될 수도 있다. 안정적인 소득원이라 귀농·귀촌을 한 이들이 농촌에 정착할 때 도움이 된다. 매년 휴경지가 늘고 있다. 이곳에 영농형 태양광을 설치하면 휴경보상금을 줄 필요 없이 발전수익으로 보상을 줄 수 있다. 임재민 에너전환포럼 사무처장은 “단순히 농민에게 금전적인 도움이 된다는 차원을 넘어 농촌 사회의 문제를 영농형 태양광으로 풀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영농형 태양광이 설치되면 노지에서 스마트팜을 구축할 때도 도움이 된다. 스마트팜은 농작업을 자동화해 농촌의 일손 부족 문제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투자비가 많이 든다는 문제가 있다. 영농형 태양광은 이미 기둥 등 구조물을 갖추고 있어 여기에 스마트팜 관련 설비만 붙이면 돼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노지에서 스마트팜을 구축할 수 있다.
에너지전환 측면에서도 영농형 태양광은 태양광발전의 단점으로 지적되는 입지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으로 꼽힌다. 유휘종 소장은 “산지 태양광이 환경적인 문제가 많아 규제를 강화했고, 이격거리도 제한하면서 실제적으로 태양광을 설치할 수 있는 땅이 많이 줄었다”면서 “절대농지(농업진흥구역)는 아니더라도 일반농지에 영농과 태양광발전을 같이 하면 농지를 잠식하는 것도 아니고, 농가 수익도 늘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 우리는 영농형 태양광이 향후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유 소장은 “2020년 태양광발전 5.2GW를 추가한 이후 지난해부터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데, 발전사업 허가는 받았어도 규제로 실질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부지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면서 “태양광의 최대 약점이 부지 확보인데, 영농형 태양광과 공장과 주차장의 지붕 등 유휴부지를 활용해서 재생에너지를 확대해야 지금의 국가온실가스감축(NDC)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농지만 잘 활용해도 탄소중립을 위해 필요한 태양광발전 시설의 입지를 상당부분 확보할 수 있다.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따르면 국내 총발전량의 최소 56.6%에서 최대 70.8%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해야 한다. 태양광발전을 기준으로 하면 550~880GW에 달한다. 국내 농지면적은 2020년 기준 156만5000㏊인데 이중 농업진흥지역이 77만6000㏊로 49.5%, 그 외 농지가 78만9000㏊로 50.5%를 차지한다. 영농형 태양광으로 탄소중립을 위한 필요 태양광을 충당한다면, 이때 필요한 농지는 82만5000~132만㏊로, 전체 농지의 52.7~84.3%이다. 현실적으로 전체 태양광을 영농형 태양광으로 할 순 없지만 30~50% 정도만 해도 상당한 여유가 생긴다.
운영기간 확대·전용 REC 등으로 뒷받침해야 영농형 태양광의 장점이 알려지면서 세계적으로 실증연구가 활발하다. 영농형 태양광 보급은 일본과 중국이 가장 앞서 있다. 유럽에선 일반 태양광이 많이 보급돼 상대적으로 영농형 태양광 주목도가 낮다. 최근에는 이상기후 현상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연구가 진행된다. 임철현 녹색에너지연구원 태양에너지연구실 실장은 “유럽은 40℃가 넘는 이상고온, 일사량 과잉현상이 생기면서 프랑스의 경우 카베르네 소비뇽의 재배지가 점점 북상하고 있다”면서 “영농형 태양광을 하면 음영이 생기니 이를 이용해 과잉 일사량을 막고, 농업용수의 사용량도 줄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은 그래서 영농형 태양광을 발전시설보다 작물의 생육환경을 조절하는 농업시설의 일부로 보려는 움직임이 강하다. 중국의 경우 이미 태양광이 200GW 넘게 보급됐다. 선 발전소, 후 농업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발전소의 빈땅을 놀리지 말고 농촌을 배불리 하라는 시진핑 주석의 지시에 따라 발전소 건설 후에 농사가 붙은 방식이다.
국내의 경우 전국 65곳에 영농형 태양광이 있다. 대부분 발전 공기업이나 연구기관과 협력하는 시범사업이다. 농민 개인이 영농형 태양광을 설치한 사례는 전남 보성의 한곳 정도이다. 아직 개인이 하기엔 사업성이 확보되지 않아서다. 영농형 태양광은 농지의 타용도 일시사용허가를 받아 최대 8년 동안 운영할 수 있다. 그후엔 태양광 모듈의 수명이 남아 있어도 철거해야 한다. 반면 투자비를 회수하려면 최소 20년이 필요하다. 농지를 타용도로 일시사용하면 직불금을 받을 수도 없다. 정부의 정책 변화로 소규모 태양광의 전력 계통 연결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일반 농지에 100㎾ 태양광을 설치하는데 드는 비용은 1억2000만원 정도다. 영농형 태양광은 그보다 50% 이상 더 많이 든다. 일조량 확보를 위해 일반 태양광 대비 1.5배 이상 이격거리가 있어서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하고, 작물 생산과 발전에 유리한 양면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전문가와 현장 농민들은 농업의 지속가능성과 재생에너지 확산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영농형 태양광의 사회적 순기능을 본다면, 운영기간 연장과 함께 영농형 태양광 전용 신재생에너지 공급 인증서(REC) 도입 등으로 영농형 태양광 활성화를 지원해야 한다고 본다. 재생에너지 사업자는 전력도매가격(SMP)과 REC 가격을 더한 만큼 수익을 얻는다. REC는 재생에너지 사업자가 한전에 전기를 판매하면 받는 증서로, 이 증서를 발전자회사에 팔아 수익화한다. 해상풍력처럼 비용이 많이 들거나 주민 참여도가 높은 사업에는 REC 가격에 일정한 가중치를 곱하기도 한다. 재생에너지 사업의 수익성을 보전해주기 위한 제도이다. 영농형 태양광에 관심이 있는 지자체·업계를 중심으로 영농형 태양광에 1.5 이상의 가중치를 주자는 요구가 나온다.
위성곤·김승남 의원 등이 인허가 간소화, 농지의 타용도 일시 사용허가 기간 확대(8→23년), 정책자금 지원, 전기 우선구매와 송배전설비 지원 등의 내용을 담은 ‘영농형 태양광발전 사업 지원법’을 2021년 발의했지만, 아직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한 상황이다. 임철현 실장은 “농지에서 영농형 태양광을 할 수 있는 기간이 법적으로 8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인데 이걸 (인허가·설치기간 3년을 빼고) 20년까지 늘리자는 게 골자”라면서 “요즘 모듈의 수명이 25~30년 이상으로 늘었는데 일단 법이 통과된 후 추가 작업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절대 농지는 아니더라도 일반 농지에 영농형 태양광이 도입되면 확산의 물꼬가 트이리라는 기대가 높다. 김태영 이장의 바람이기도 하다. “처음엔 8년만 하자고 해서 지었는데 지금 3년이 지나고 보니 이걸 없애고 다시 설치하기보다는 입법을 추진해 하고 싶을 때까지 하도록 하는 게 우리 동네에는 좋다고 봐요. 국회에서 (운영기간을 20년까지 허용하는) 입법을 해주면 우리 마을이 1호로 하고 싶어요.”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2022년 10월 26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객현2리의 한 논에서 벼 수확이 한창이다. 콤바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마치 머리 깎듯 논에서 벼를 벤다. 땅에선 쌀을 수확하는데, 하늘에선 전기도 수확한다. 논 위 4m 높이에 태양광 모듈이 설치돼 ‘햇빛농사’를 짓고 있다. 농사와 전기 생산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영농형 태양광이다. “이게 진짜로 되는군요.” 콤바인이 태양광 모듈이 설치된 기둥 사이를 지나며 쌀을 수확하자, 이를 본 유휘종 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센터 소장이 말했다.
영농형 태양광 설치 후 이곳이 올해 3번째 수확기를 맞았다. 그간 벼와 콩 등을 심었다. 콤바인을 몰다 잠시 취재진과 만난 김태영 객현2리 이장(61)은 “농민 입장에선 밑에서 작물을 재배하고, 위에선 태양광 수익이 나니까 안정적인 소득을 얻을 수 있어 굉장히 취지가 좋죠. 기계를 사용할 때 애로사항이 조금 있지만 조심하고, 시간을 좀더 들이면 된다”고 말했다.
땅에선 식량농사, 하늘에선 햇빛농사 동서발전은 지역환원 사업의 일환으로 2019년 12월 이 마을 농지 3곳에 총 300㎾ 규모의 영농형 태양광을 설치했다. 인근 마을 몇곳에도 제안을 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이곳 객현2리만 이장이 뜻이 있어 성사가 됐다. 동서발전이 발전수익을 마을에 기증하는 데 연간 1000만원 정도다. 마을 사람들은 이 돈을 마을 꽃길 가꾸기나 불우이웃돕기 등에 활용한다. “마을 어른들을 모시고 여행을 가고 싶었지만, 그간 코로나19 때문에 애로사항이 많아 대신 마을 꽃길 가꾸기 등에 썼어요. 다행히 어르신들이나 젊은이들이나 일을 갈 때 꽃을 보니 힐링이 되고 기분이 너무 좋다고 합니다. 다른 마을 분들이나 지역 농업기술센터 분들도 우리 사례를 많이 보고 갑니다.” 김 이장의 아내가 뿌듯해하며 말했다.
사실 농촌에서의 태양광은 돈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격거리 제한이 있는데다 마을 주민들의 호응을 얻어야 허가를 받기 쉽다. 처음 보급할 때는 이렇게 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들여와 주민에게 혜택을 주는 방식도 고려할 만하다. 영농형 태양광으로 실제 농사도 가능하고, 발전 수익도 얻을 수 있다는 게 증명되자, 마을 여론이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우려만큼 경관을 해치거나 건강상의 우려가 없다는 점도 알게 됐다.
김태영 이장은 “처음엔 주민들이 태양광 들어오는 데 반대를 많이 했는데, 동네에서 조금 벗어나 설치하고, 직접 마을 수익으로 돌아가니까 지금은 마을 사람들이 기회만 되면 서로 하겠다고 할 정도로 동네에선 굉장히 호응이 좋다”고 전했다.
농지에서 식량농사와 햇빛농사를 동시에 지을 수 있는 건 식물에 광포화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성호 에너지전환포럼 이사는 “모든 식물은 광포화점이라고 하는, 성장에 필요한 빛의 양이 정해져 있다. 그 이상 오는 건 식물 성장에 도움이 안 되고 오히려 피로도만 높일 수 있다. 태양광 모듈을 농지 위에 설치해 하루에 필요한 빛만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이격거리를 둬 빛이 들어오게 하면 햇빛농사도 짓고 식량농사도 지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음지식물의 경우 빛을 차단해 필요한 양만 받게 하면 오히려 식물 성장에 도움이 된다. 실제 음지식물인 녹차의 경우 영농형 태양광 아래에서 수확량이 더 증가하는 것으로 나온다.
농지 훼손 없이 태양광발전 가능 이곳 1000평 넓이의 논은 약 6 대 4의 비율로 시험구와 대조구로 나뉘어 있다. 영농형 태양광 시설 아래에 있는 벼와 그렇지 않은 상태의 벼의 수확량을 비교하기 위해서다. 태양광 모듈 아래에 있는 시험구에는 퇴비를 줄여서 준 곳도 있다. 일사량이 부족하면 작물이 웃자랄 수 있는데 이때 비·바람에 작물이 넘어가는 ‘도복(倒伏)’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서울대가 이곳에서 실증연구 사업을 하는 중인데 토양과 햇빛, 기상 등 관련 데이터를 세밀하게 파악하고 있다. 수확량은 작물의 종류에 따라 10% 내외로 줄지만 품질상 차이는 없다고 한다. 이날 벼도 눈으로 봐서는 양쪽의 차이를 알기 어려웠다.
태양광 모듈을 지지하는 기둥은 이곳에선 사각형 기둥을 쓰지만 앞으론 원통형이 권장된다. 원통형은 농기계와 부딪힐 때 사각형 기둥과 달리 충격을 받아도 잘 꺾이지 않기 때문이다. 기둥도 농기계 작업이 효율적으로 이뤄지도록 6m 간격으로 떨어뜨리는 게 좋다. 이곳의 기둥 폭은 5m라 폭 2m 정도인 콤바인이 미처 수확하지 못하는 곳이 생겨 한 번 더 지나가야 했다. 남재우 한국영농형태양광협회 이사는 “(벼를 베는) 지금은 그래도 괜찮은데 이앙기를 쓸 때는 여섯줄을 심고 세줄, 네줄이 남으면 이곳에 모를 심기 위해 기존에 심은 걸 밟고 지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태양광 모듈은 한화큐셀에서 만든 4×8타입(셀이 4개씩 8줄로 된) 단면형을 쓴다. 지금은 발전량이 더 많고, 뒷면으로 일부 빛이 들어와 작물 성장에도 좋은 양면형 모듈을 권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모듈도 고정형보다는 태양을 바라보는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 형태가 더 좋다. 김창한 이사는 “(가변형은) 효율이 높아 3~9월까지는 일사량이 많아 (태양광 100㎾ 기준) 하루 평균 300~400kWh 정도로 발전량에 큰 차이가 없지만, 해가 낮아지는 겨울에는 모듈을 60도로 세워놓으면 50~100kWh 정도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각도 조절은 전기 생산에도 도움이 되지만 농작물 보호에도 중요하다. 비가 올 경우 모듈에서 흘러 떨어지는 낙숫물의 피해가 클 수 있다. 이때 모듈을 수직 형태로 세우면 거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 모듈에서 내려온 빗물을 집수해 갈수기에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농가소득 증대·에너지 전환에 기여 국내에서 영농형 태양광 실증사업이 처음 시작된 때는 2016년이다. 김창한 한국영농형태양광협회 사무총장이 2015년 일본을 여행하다 우연히 영농형 태양광을 발견한 게 계기가 됐다. 30년 넘게 유기농 농사를 해온 김 사무총장은 농민의 경제적 형편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늘 고민이었다. 그 해법을 태양광발전에서 찾았다. 김 사무총장은 “그때만 해도 탄소중립은 생각도 못 했다. 다만 평생 농민운동을 했지만 실제 농민에게 도움을 준 게 없어서 고민하던 차에 영농형 태양광을 보고, 농민에게 연금처럼 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2015년 솔라팜을 세우고 이듬해부터 충북 오창에서 영농형 태양광을 시험했다. 인삼과 쌀, 감자, 무, 배추, 양파 등을 재배하면서 수확량 감소율(감수율)을 조사했더니 15% 내외로 크지 않았다. 품질도 큰 차이가 없었다. 600평 정도의 논밭에서 유기농 농사를 지었을 때 소득은 연간 200만원이 채 안 됐다. 그마저도 가격 급변에 따라 소득이 얼마나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 반면 영농형 태양광을 하면 투자 원금과 이자, 관리비용을 다 빼고도 월수입이 80만~100만원 나왔다. 발전수익이 농민의 소득 보장 수단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후 전국을 다니며 정책설명회를 열고, 관청과 국회를 찾아 설득했다. “직접 본 농민들의 반응은 뜨거워요. 하나같이 이건 꼭 해야 한다는 거죠. 일반 농촌형 태양광과 달리 밑에서 농사를 짓기 때문에 농지 훼손도 없어요. 다들 태양광을 무슨 혐오 시설처럼 보는데 사실 일반 비닐하우스보다 더한 혐오 시설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영농형 태양광은 지역소멸이나 농촌 고령화에 대응할 수 있는 좋은 정책이 될 수도 있다. 안정적인 소득원이라 귀농·귀촌을 한 이들이 농촌에 정착할 때 도움이 된다. 매년 휴경지가 늘고 있다. 이곳에 영농형 태양광을 설치하면 휴경보상금을 줄 필요 없이 발전수익으로 보상을 줄 수 있다. 임재민 에너전환포럼 사무처장은 “단순히 농민에게 금전적인 도움이 된다는 차원을 넘어 농촌 사회의 문제를 영농형 태양광으로 풀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영농형 태양광이 설치되면 노지에서 스마트팜을 구축할 때도 도움이 된다. 스마트팜은 농작업을 자동화해 농촌의 일손 부족 문제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투자비가 많이 든다는 문제가 있다. 영농형 태양광은 이미 기둥 등 구조물을 갖추고 있어 여기에 스마트팜 관련 설비만 붙이면 돼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노지에서 스마트팜을 구축할 수 있다.
에너지전환 측면에서도 영농형 태양광은 태양광발전의 단점으로 지적되는 입지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으로 꼽힌다. 유휘종 소장은 “산지 태양광이 환경적인 문제가 많아 규제를 강화했고, 이격거리도 제한하면서 실제적으로 태양광을 설치할 수 있는 땅이 많이 줄었다”면서 “절대농지(농업진흥구역)는 아니더라도 일반농지에 영농과 태양광발전을 같이 하면 농지를 잠식하는 것도 아니고, 농가 수익도 늘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 우리는 영농형 태양광이 향후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유 소장은 “2020년 태양광발전 5.2GW를 추가한 이후 지난해부터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데, 발전사업 허가는 받았어도 규제로 실질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부지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면서 “태양광의 최대 약점이 부지 확보인데, 영농형 태양광과 공장과 주차장의 지붕 등 유휴부지를 활용해서 재생에너지를 확대해야 지금의 국가온실가스감축(NDC)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농지만 잘 활용해도 탄소중립을 위해 필요한 태양광발전 시설의 입지를 상당부분 확보할 수 있다.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따르면 국내 총발전량의 최소 56.6%에서 최대 70.8%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해야 한다. 태양광발전을 기준으로 하면 550~880GW에 달한다. 국내 농지면적은 2020년 기준 156만5000㏊인데 이중 농업진흥지역이 77만6000㏊로 49.5%, 그 외 농지가 78만9000㏊로 50.5%를 차지한다. 영농형 태양광으로 탄소중립을 위한 필요 태양광을 충당한다면, 이때 필요한 농지는 82만5000~132만㏊로, 전체 농지의 52.7~84.3%이다. 현실적으로 전체 태양광을 영농형 태양광으로 할 순 없지만 30~50% 정도만 해도 상당한 여유가 생긴다.
운영기간 확대·전용 REC 등으로 뒷받침해야 영농형 태양광의 장점이 알려지면서 세계적으로 실증연구가 활발하다. 영농형 태양광 보급은 일본과 중국이 가장 앞서 있다. 유럽에선 일반 태양광이 많이 보급돼 상대적으로 영농형 태양광 주목도가 낮다. 최근에는 이상기후 현상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연구가 진행된다. 임철현 녹색에너지연구원 태양에너지연구실 실장은 “유럽은 40℃가 넘는 이상고온, 일사량 과잉현상이 생기면서 프랑스의 경우 카베르네 소비뇽의 재배지가 점점 북상하고 있다”면서 “영농형 태양광을 하면 음영이 생기니 이를 이용해 과잉 일사량을 막고, 농업용수의 사용량도 줄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은 그래서 영농형 태양광을 발전시설보다 작물의 생육환경을 조절하는 농업시설의 일부로 보려는 움직임이 강하다. 중국의 경우 이미 태양광이 200GW 넘게 보급됐다. 선 발전소, 후 농업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발전소의 빈땅을 놀리지 말고 농촌을 배불리 하라는 시진핑 주석의 지시에 따라 발전소 건설 후에 농사가 붙은 방식이다.
국내의 경우 전국 65곳에 영농형 태양광이 있다. 대부분 발전 공기업이나 연구기관과 협력하는 시범사업이다. 농민 개인이 영농형 태양광을 설치한 사례는 전남 보성의 한곳 정도이다. 아직 개인이 하기엔 사업성이 확보되지 않아서다. 영농형 태양광은 농지의 타용도 일시사용허가를 받아 최대 8년 동안 운영할 수 있다. 그후엔 태양광 모듈의 수명이 남아 있어도 철거해야 한다. 반면 투자비를 회수하려면 최소 20년이 필요하다. 농지를 타용도로 일시사용하면 직불금을 받을 수도 없다. 정부의 정책 변화로 소규모 태양광의 전력 계통 연결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일반 농지에 100㎾ 태양광을 설치하는데 드는 비용은 1억2000만원 정도다. 영농형 태양광은 그보다 50% 이상 더 많이 든다. 일조량 확보를 위해 일반 태양광 대비 1.5배 이상 이격거리가 있어서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하고, 작물 생산과 발전에 유리한 양면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전문가와 현장 농민들은 농업의 지속가능성과 재생에너지 확산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영농형 태양광의 사회적 순기능을 본다면, 운영기간 연장과 함께 영농형 태양광 전용 신재생에너지 공급 인증서(REC) 도입 등으로 영농형 태양광 활성화를 지원해야 한다고 본다. 재생에너지 사업자는 전력도매가격(SMP)과 REC 가격을 더한 만큼 수익을 얻는다. REC는 재생에너지 사업자가 한전에 전기를 판매하면 받는 증서로, 이 증서를 발전자회사에 팔아 수익화한다. 해상풍력처럼 비용이 많이 들거나 주민 참여도가 높은 사업에는 REC 가격에 일정한 가중치를 곱하기도 한다. 재생에너지 사업의 수익성을 보전해주기 위한 제도이다. 영농형 태양광에 관심이 있는 지자체·업계를 중심으로 영농형 태양광에 1.5 이상의 가중치를 주자는 요구가 나온다.
위성곤·김승남 의원 등이 인허가 간소화, 농지의 타용도 일시 사용허가 기간 확대(8→23년), 정책자금 지원, 전기 우선구매와 송배전설비 지원 등의 내용을 담은 ‘영농형 태양광발전 사업 지원법’을 2021년 발의했지만, 아직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한 상황이다. 임철현 실장은 “농지에서 영농형 태양광을 할 수 있는 기간이 법적으로 8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인데 이걸 (인허가·설치기간 3년을 빼고) 20년까지 늘리자는 게 골자”라면서 “요즘 모듈의 수명이 25~30년 이상으로 늘었는데 일단 법이 통과된 후 추가 작업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절대 농지는 아니더라도 일반 농지에 영농형 태양광이 도입되면 확산의 물꼬가 트이리라는 기대가 높다. 김태영 이장의 바람이기도 하다. “처음엔 8년만 하자고 해서 지었는데 지금 3년이 지나고 보니 이걸 없애고 다시 설치하기보다는 입법을 추진해 하고 싶을 때까지 하도록 하는 게 우리 동네에는 좋다고 봐요. 국회에서 (운영기간을 20년까지 허용하는) 입법을 해주면 우리 마을이 1호로 하고 싶어요.”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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