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모두가 아마존이 될 수 없다...헬스케어 스타트업 IPO에 집착 말라”

최정석 기자 2022. 11. 2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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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연구 전문가 애시시 어로라 듀크대 교수
“기술력 키워 M&A 통해 기술 파는 게 현명”
“대기업 적극적 M&A로 동기부여 ”
애시시 어로라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14일 서울 역삼동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관 회의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최정석 기자

“시장에선 헬스케어 산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글로벌 경제 상황은 악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기술 개발에 집중해 인수·합병(M&A)이나 기술 이전을 노리는 게 현명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헬스케어 스타트업들은 기업 공개(IPO)에만 목을 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달 14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총연합회관에서 만난 애시시 어로라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작정한 듯 한국 헬스케어 스타트업의 부분을 꼬집었다. 어로라 교수는 기술 경영과 혁신 연구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손꼽힌다. 어로라 교수는 이날 과총회관에서 열린 기술경영경제학회 30주년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앞서 이달 12일 대전 유성 KAIST 바이오혁신경영전문대학원에서 특별 강연을 열었다.

어로라 교수는 인터뷰에 앞서 열린 이날 기조강연에서 과학과 기술의 조화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류의 고민이 경제 성장보다는 환경오염, 기상이변,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등 ‘생존 문제’로 점점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생존은 과학기술이 머리를 맞대지 않는 한 마땅한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문제다.

어로라 교수는 “최근 제약·바이오,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이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도 이런 흐름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14일 애시시 어로라 미국 듀크대 교수가 ‘KAIST 바이오혁신경영전문대학원 및 기술경영경제학회 30주년 포럼' 기조 강연에서 제시한 자료. 1980년 이후 기업 차원에서 내놓는 과학 논문 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반면, 특허 개수는 증가세를 보인다.

어로라 교수는 “헬스케어 산업에 뛰어든 한국의 스타트업들이 IPO에 과도하게 집중하고 있다”면서 “경제가 위축된느 시기에는 IPO보다 비싼 값을 받고 팔만 한 기술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회사 몸집을 키우기 보다는 기술력을 강화해 M&A, 기술이전을 통해 회수한 자금으로 새로운 기술을 만드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어로라 교수는 헬스케어 스타트업의 활성화에서 무엇보다 대기업 역할이 크다고 했다. 대기업이 M&A와 기술이전에 개방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대기업이 나서서 비싼 값에 스타트업 기술을 사들이면 더 많은 스타트업들이 등장하고 수준 높은 기술들을 선보일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대기업이 M&A와 기술이전에 소극적인 점은 아쉽다고 평가했다.

아래는 어로라 교수와의 일문일답.

-어떤 계기로 이번 포럼에서 기조 강연을 맡게 됐나.

“제약·바이오 및 헬스케어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은 최근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다. 삼성, SK, LG 같은 대기업을 비롯해 수많은 벤처와 스타트업이 수준급 기술력을 내놓고 있다. 흥미를 느끼던 찰나에 김원준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아 강연을 하게 됐다. 김 교수가 듀크대에 연수를 온 적이 있는데 그 때 인연을 맺었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헬스케어 산업이 열풍인데 이유는 뭔가.

“인류가 직면한 고민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약 10년 전까지만 해도 개인, 기업, 정부의 주된 고민은 경제를 더 성장시킬 방법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영원히 고성장을 달성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매년 큰 폭으로 경제가 성장하는 건 이제 어렵다.

어느 정도 이룰 걸 다 이룬 상태가 되니 사람들 관심이 점점 다른 쪽으로 향한다. 환경오염과 기후변화. 이런 와중에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생존 문제’가 가장 큰 고민이 됐다. 생존 문제와 가장 연관이 깊은 사업분야가 헬스케어 아닌가. 그런 흐름이라고 본다.”

-한국 제약·바이오나 헬스케어 기업들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는 어떤가.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비롯한 대기업들은 자본력을 기반으로 자리를 잘 잡고 있다. 전통 제약사들이 보유한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도 종류가 많고 스타트업 쪽에서는 인공지능(AI)를 활용한 디지털 제품들을 여럿 내놓고 있다. 세계 시장에 내놔도 충분히 통할 기술력을 가진 회사들도 봤다. 성장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본다.”

-부족한 점이나 조언할 부분은 없나.

“기술력이 좋은 스타트업이 끊임없이 생겨날 만한 생태계가 갖춰지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스타트업 이야기부터 하자면 IPO에 집착하거나 IPO가 마치 기업 경영의 최종 목적지인 듯한 행보를 보이는 곳들이 많은 게 우려스럽다.

물론 상장을 통해 투자금을 끌어모아 작은 회사를 대기업으로 키워내는 것도 좋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나. 모두가 애플, 아마존을 꿈꾸지만 괜히 그들 이야기에 ‘신화’라는 수식어가 붙는 게 아니다.”

-그럼 스타트업이 어떤 식으로 움직여야 하나.

“IPO가 아니라 M&A, 기술이전을 노려야 한다. 기술력을 끌어올리는 데에 몰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극소수의 신화를 좇는 것보단 냉정하고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개발한 기술을 대기업에 팔아 회수한 자금을 다시 기술개발에 투자하는 방식이 훨씬 안전하다.”

-결과적으로 대기업 규모만 키우는 꼴 아닌가.

“애플이 차고지를 벗어나 굴지의 대기업이 된 건 ‘애플 2′라는 혁신적 제품이 나왔기 때문이다. 수준 높은 기술이 끊임없이 개발되는 생태계가 만들어지면 어디선가 애플 2에 견줄 만한 혁신적 기술을 반드시 내놓을 거다. 대기업이 될 생각을 접고 기술만 개발하라는 게 아니다. 스타트업을 꾸릴 때 목표점을 기술에 둬야만 기회가 온다는 것이다.”

-스타트업들만 잘하면 생태계가 완성되는 건가

“그렇지 않다. 대기업도 역할이 있다. M&A와 기술이전에 열려있어야 한다. 누군가 애써 개발한 기술이 제값을 받고 팔렸다는 소식은 그 자체로 스타트업에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 산업계에서는 대기업이 스타트업 기술을 사들였다는 소식이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 헬스케어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이 좀 더 M&A와 기술이전에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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