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래 그 사연] 최헌 ‘오동잎’, 가을의 고독을 노래하다

2022. 11. 21.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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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요 100년사를 통틀어 가을에 어울리는 음색의 가수를 서너명 골라야 한다면 최헌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록밴드 '히식스' '검은나비'를 거치고 1974년 노래 '당신은 몰라'가 성공하며 대중에게 '허스키보이스 최헌'을 알렸다.

최헌은 이후 가을노래를 불러 또 성공했는데, 그 곡이 '가을비 우산 속'이다.

1980년대 초반 조용필과 어깨를 나란히 한 인물이 바로 최헌이라는 증언을 여러번 들었을 정도로 그가 지닌 가을 남자의 이미지는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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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잎’이 수록된 최헌 독집.

한국 가요 100년사를 통틀어 가을에 어울리는 음색의 가수를 서너명 골라야 한다면 최헌을 빼놓을 수 없다. 그가 2012년 식도암으로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고독한 마음을 달래주는 허스키한 음성을 들려주었을 테지만 이제는 남은 그의 노래로 거리의 낙엽을 만나야 한다.

최헌은 1948년 함경북도 성진에서 태어나 가족과 함께 남하해 음악을 시작했다. 그는 록밴드 ‘히식스’ ‘검은나비’를 거치고 1974년 노래 ‘당신은 몰라’가 성공하며 대중에게 ‘허스키보이스 최헌’을 알렸다.

한편 가수이자 작곡가인 안치행은 곡절 끝에 서울에 진출해 록밴드 ‘영사운드’의 멤버로 ‘등불’ ‘달무리’ 등의 히트곡을 냈지만 푼돈을 손에 쥐고 망연자실했다. 1970년대 중반 그는 가요계에선 제작을 해야 돈과 권력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과 록밴드로는 돈을 벌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치행은 여러 밴드를 눈여겨보던 중 허스키 음색의 최헌이라면 히트작을 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최헌은 록가수였다. 안치행은 트로트와 록을 접목하면 어르신뿐 아니라 젊은이에게도 먹힐 거라는 생각으로 안타 프로덕션을 설립하고 첫 제작으로 최헌을 위한 노래를 만들었다. 그 곡이 바로 ‘오동잎’이다.

“오동잎 한잎 두잎 떨어지는 가을밤에 그 어디서 들려오나 귀뚜라미 우는 소리. 고요하게 흐르는 밤의 적막을 어이하여 너만은 싫다고 울어대나.”

‘오동잎’은 대성공을 거두며 최헌을 1975년 최고의 가수로 올려놓았다. 훗날 트로트와 록을 접목한 장르를 ‘트로트고고’라고 불렀다.

최헌은 이후 가을노래를 불러 또 성공했는데, 그 곡이 ‘가을비 우산 속’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가을 하면 최헌이었다.

언젠가 최헌의 발자취를 따라 KBS·MBC 등 지상파 방송국의 여러 프로듀서를 인터뷰한 일이 있었다. 1980년대 초반 조용필과 어깨를 나란히 한 인물이 바로 최헌이라는 증언을 여러번 들었을 정도로 그가 지닌 가을 남자의 이미지는 강렬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방송에 출연해서 “왜 방송국에서 나를 불러주지 않느냐”며 아쉬움을 토로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넋두리는 정상에 다다른 자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가을은 독서와 사색의 계절인데 올해는 모든 국민이 이태원 참사로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됐다. 노래 가사처럼 귀뚜라미 소리라도 들으며 참담함을 달래고 싶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모든 인간은 필히 부귀빈천(富貴貧賤)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겪어야 하는가? 이태원에서 생을 마감한 영혼들의 명복을 빈다.

박성건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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