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 있으면 그냥 쓰면 되는데…다시 걷기의 원리를 찾아야 하는 까닭[신경과학 저널클럽]

기자 2022. 11. 20.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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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경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뇌과학전공 교수

사고는 예기치 못한 순간 찾아온다. 이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하는 이도 생긴다. 사고로 척수의 특정 부분이 손상되면 걷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아직 사고로 인해 걷는 능력이 사라지거나 아주 약해진 경우를 완전히 복구하는 치료법은 개발되지 않았다. 하지만 로봇을 통해 걷는 일을 도와주면서 척수 부위에 전기자극을 하는 것이 하나의 유망한 방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환자에 따라 효과는 다르지만, 전기자극에 의해 걷는 기능이 개선되는 사례가 학계에 보고돼 있다. 하지만 이 원리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치료에 효과가 있다면 그냥 쓰면 될 텐데, 치료법의 원리를 왜 굳이 알아야 할까. 현재의 전기자극법도 희망을 주고 있기는 하지만, 원리를 알면 환자가 어떤 이득을 볼지 예측할 수 있고 치료법의 개선 방향을 논리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 로잔연방공대 소속의 조셀린 블로흐·조단 스콰이어·그레고르 쿠르틴 박사가 구성한 연구진은 척수 손상 환자의 걷는 기능이 전기자극으로 회복되는 상황을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오늘 소개할 이들의 최근 연구에서는 전기자극이 재활에 왜 중요한지에 대한 뇌과학적인 근거가 제시돼 있다.

먼저 연구진은 척수 부위의 전기자극이 환자에게서 신경 수준의 변화를 야기하는지를 알아봤다. 척수 손상으로 걷는 기능이 심하게 약해진 환자 9명에게 전기자극과 로봇 재활을 진행했다.

매주 5회씩 5개월간 진행된 재활훈련을 통해 대부분의 환자는 걷는 기능이 상당히 회복됐고, 걸음걸이의 패턴을 만들어내는 요추 부위의 척수신경 활성이 달라져 있었다. 재활의 결과가 근육이나 관절의 변화만이 아니라 신경 수준의 변화를 포함한다는 결과가 관찰된 것이다.

연구진은 다음으로 어떤 신경세포가 재활로 인한 변화를 매개하는지도 알아보았다. 이 실험을 사람을 대상으로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실험용 생쥐의 도움을 받았다.

먼저 생쥐의 척수를 손상시켜 걷기 힘들게 만들고, 생쥐 크기에 맞는 미니 로봇을 만들어 재활을 시키면서 척수 전기자극을 진행했다. 사람과 비슷하게 생쥐에게서도 전기자극과 병행한 재활이 이뤄지면 걷는 기능이 상당히 개선됐다.

그리고 연구진은 생쥐 요추 부위에서 재활 단계별로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를 신경세포 하나하나 수준에서 조사했다. 수만개 신경세포의 유전자 발현 패턴을 모두 조사하고 이들 정보를 척수의 해부학적 지도와 맞춰 분석한 결과, 특정한 유전자를 발현하는 신경세포 무리가 재활 과정에서 큰 변화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척수의 등 쪽에는 감각신경들이, 배 쪽에는 운동신경세포들이 존재하는데, 재활 과정에서 변화를 보인 신경세포들은 그들의 중간 부위에 위치해 있었다.

마지막으로 연구진은 이들 신경세포가 재활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탐구했다. 예상 했던 것과 같이 이 신경세포들을 억제한 경우에는 재활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신경세포만을 인위적으로 활성화했을 때에는 전기자극이나 재활 과정 없이도 걷는 기능이 상당히 회복됐다.

재활은 길고 힘든 과정이다. 이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환자와 주변의 상당한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연구에서 밝힌 뇌과학적 지식을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도록 발전시킨다면 재활 기간을 단축하는 등 힘든 과정을 줄일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최한경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뇌과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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