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한 내음 솔솔 ‘백년기름특화거리’

김태희 기자 2022. 11. 20. 21:3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성남 모란시장 기름골목
경기 성남시 중원구 성남동 ‘모란시장 기름골목’에 지난 15일 32곳의 기름집이 운집해 있다.
옹기종기 모인 기름집 32곳
각자 고유 비법으로 로스팅
20~30년 전 줄섰던 단골들
대이어 전국서 택배로 주문
상인들 ‘모란향가’ 브랜딩도

경기 성남시 모란역 5번 출구에서 내려 도보로 3분만 걸으면 길을 따라 양옆으로 늘어선 기름집 간판들이 나온다. 차 두 대가 나란히 지나갈 수 있는 큰 골목과 건물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 옆에 있는 작은 골목에는 기름집 32곳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성남 중원구 성남동 1590-3번지 일대. 전국에서 가장 많은 기름집이 모여 있는 ‘모란시장 기름골목’(모란전통기름시장)의 모습이다.

지난 15일 오후 이곳에 들어서니 고소한 깨 볶는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가게 안 상인들은 참깨나 들깨를 볶거나 착유기로 기름을 짜내느라 분주했다. 매대마다 갓 짜낸 기름이 담긴 병이 올려져 있고, 옆에는 빈 병과 아직 볶지 않은 깨가 쌓여 있었다.

상인들은 3~4개 거래처를 통해 질 좋은 깨를 꾸준히 공급받고 있다. 각 점포는 각자만의 고유한 비법으로 로스팅한다. 상인들은 “로스팅 방법과 양질의 재료가 맛있는 기름의 비법”이라고 했다. 기름골목의 역사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란시장이 처음 형성되기 시작할 때 이 골목에도 난전이 모여들면서 기름집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와 가게를 차렸는데 당시에는 가게 이름을 자신들의 고향으로 짓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아직도 시장에는 충북, 파주, 화성과 같은 지역을 이름으로 내건 곳이 많이 남아 있다. 한 상인은 “수십년 전부터 써왔던 이름”이라면서 “단골들이 지역 이름으로 가게를 기억하기 때문에 바꾸면 손님이 다 떨어져 나간다”고 말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기름골목의 풍경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20~30년 전에는 입소문을 듣고 몰려든 손님들이 번호표까지 받아 가며 기름을 사 갔던 탓에 골목이 사람들로 빼곡했다고 한다. 이후 배송 문화가 급격히 발달하면서 지금은 대부분 택배로 기름을 배달하고 있다. 그때의 북적였던 골목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그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계속 주문을 하고 있다고 상인들은 전했다.

조광용 모란전통기름시장 상인회장은 “손님들도 20~30년 된 단골분들이 많다”면서 “부모님이 자식들에게 기름집을 알려주시고, 그분들이 또 기름을 주문하신다. 식품 대기업이 만드는 참기름과 들기름 대신 이렇게 전통 기름을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어 기름골목이 꾸준하게 유지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전통성과 특수성을 인정받아 성남시는 최근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협의해 모란전통기름시장을 ‘대한민국 제1호 백년기름특화거리’로 지정했다. 백년가게·백년소공인 밀집도, 전통성, 장인정신, 혁신 의지 등을 종합 판단했다. 백년기름특화거리 지정과 별개로 15개 기름집은 최근 3년간 중기부에서 백년가게(30년 이상·10개)·백년소공인(15년 이상·5명) 가게로 선정됐다.

상인들은 “모란시장 기름을 적극적으로 알리겠다”며 협동조합을 만들고 최근 ‘모란향가’라는 브랜드를 출시하기도 했다. 성남시 관계자는 20일 “전국 최초 백년기름특화거리로 선정된 기름골목을 위해 맞춤형 정책을 펼치겠다”면서 “지역 상권 활성화를 유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글·사진 김태희 기자 kth08@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