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백두혈통 4대

손제민 기자 2022. 11. 20.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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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8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앞에서 딸과 함께 걸어가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아버지와 딸이 다정하게 손잡고 귀엣말을 하며 걸어가는 모습. 배경이 놀이공원이나 극장가 같은 곳이라면 마음이 푸근해지는 장면일 것이다. 그런데 이들 뒤로 길이가 22~24m인 세계 최장 ‘괴물 미사일’이 서 있다면?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소식과 함께 공개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어린 딸의 사진을 보며 기괴함을 느끼게 된다.

북한은 19일 관영매체들을 통해 김 위원장이 전날 “사랑하는 자제분과 여사와 함께” 화성17형 미사일의 발사를 참관한 사실을 공개했다. 소녀는 부모를 빼닮은 앳된 외모다. 아버지가 말할 때 두 손 모으고 경청하는가 하면, 발사 성공에 천진난만하게 기뻐하기도 한다. 북한이 김 위원장 자녀를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위원장 부부는 2010년과 2013년, 2017년 자녀를 출산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많은 북한 전문가들은 이 소녀가 둘째 딸 김주애양일 것으로 추정했다.

보기 드문 3대 세습 국가인 북한이 최고지도자의 어린 자녀를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 때문에 4대 세습을 위한 포석 아니냐는 추측이 먼저 나온다. 하지만 북한이 4대 세습을 하기로 결정했는지, 이 딸을 후계자로 정했는지 단언하긴 이르다. 북한은 과거 김정일, 김정은이 성인이 된 뒤에야 공개했다. 권력세습을 염두에 둔 치밀한 계산의 결과였다. 현재로선 북한이 핵능력에 자신감을 갖게 됐으며 이 능력이 북한 미래세대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것임을 보여주려는 의도라는 해석에 좀 더 수긍하게 된다.

미국 군산복합체를 연구해 2004년 <폭탄의 사람들(People of the Bomb)>이란 책을 펴낸 미국 인류학자 휴 거스터슨은 1945년 이후 핵무기는 미국인의 정신 깊이 뿌리내린 정체성과 같은 것이라고 결론내린 바 있다. 북한은 그런 미국을 70년 이상 히스테릭하게 상대하며 ‘동북아의 갈라파고스’가 됐다. 우려되는 것은 동시대 북한 어린이들이 갖게 될 감수성이다. 꽃과 새 소리의 아름다움보다 미사일의 굉음과 화염을 찬미하는 세대로 자라나지 않을까. 디지털기기를 끼고 사는 다른 나라 아이들이라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끼며 성장하는 건 아니지만, 미사일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래서 안쓰럽고, 우려하게 된다.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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