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앙 '손실·피해' 보상, 역사적 첫발 뗐지만...구체성 결여 비판도

권영은 2022. 11. 2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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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막 넘겨 당사국 합의로 최종 결의 채택
기금 규모·보상 범위 등은 후속 논의
석유·천연가스 감축은 제외돼
지난 18일(현지시간)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가 열린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 한 시민의 손바닥에 기후재앙으로 인한 '손실과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페이(PAY·지불하라는 뜻)'가 적혀 있다. 샤름 엘 셰이크=AP 연합뉴스

기후 재앙을 초래한 부자 나라들이 가난한 피해자 나라에 보상하는 '손실과 피해' 기금 조성이 제27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극적으로 타결됐다. 그동안 기금 조성에 미온적이던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의 요구를 받아들인 만큼, 기후 위기에 대응하려는 인류의 '역사적 합의'라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기금 조성의 구체적 방법과 시기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이번 합의가 '상징적 선언' 외에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30년 만의 "기념비적 합의"

20일(현지시간) AFP통신 등에 따르면 COP27은 이날 새벽까지 밤샘 마라톤협상을 한 끝에 '손실과 피해' 보상 기금 조성을 포함한 최종 합의문을 채택했다. 당초 예정된 지난 18일 폐막을 넘긴 COP27은 당사국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막판 진통을 겪었다. 이번에 처음 공식 의제로 오른 '손실과 피해'를 두고 천문학적 액수를 보상해야 할 선진국과 당장 생존 위협에 직면한 개발도상국 간 힘겨루기가 이어진 탓이다.

COP27은 회의를 연장하면서 결국 '원칙적 합의'에 도달했다. 기후변화가 야기한 피해 보상을 위한 첫 단추가 끼워졌다는 점에서 "역사적 발걸음"이란 평가다.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된 유엔환경개발회의 이후 선진국에 책임을 물어온 개도국들의 요구가 30년 만에 빛을 본 것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대홍수로 지난여름 국토의 3분의 1이 잠겼던 파키스탄의 셰리 레흐만 기후 장관은 "이번 합의는 기후 취약국의 목소리에 대한 응답"이라며 "우리는 지난 30년간 분투했고, 그 여정은 오늘 이곳에서 첫 긍정적 이정표를 이뤄냈다"고 환영했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기후 정의를 향한 중요한 토대가 마련됐다"고 평했다.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 의장인 사메 수크리 이집트 외무장관이 20일(현지시간)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 열린 COP27 본회의에서 '손실과 피해' 보상을 위한 기금 조성 등 내용을 담은 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샤름 엘 셰이크=로이터 연합뉴스

'빈 양동이' 어떻게 채울까

하지만 이번 합의를 놓고, 구체성이 결여된 사실상 요란한 '빈 수레'에 그친다는 비판도 따른다. '선진국이 돈을 내, 피해받은 나라를 지원한다'는 원칙 말고는, ①누가 돈을 언제 얼마나 내고,②그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에 대한 구체적 합의는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각 기금을 마련하자"는 개도국의 요구에도 선진국들은 언제일지 모를 다음을 기약했다. 에너지·기후 싱크탱크 '파워 시프트 아프리카'의 설립자 모하메드 아도는 "우리가 가진 것은 빈 양동이"라며 "이제 기후 위기에 취약한 이들에게 지원이 흘러갈 수 있도록 채워 넣어야 한다"고 AFP통신에 말했다.

구체적 합의가 언제 이뤄질지 모르지만, 일단 논의가 시작되면 향후 선진국과 개도국 간 치열한 격론이 예상된다. 선진국과 개도국이 생각하는 피해와 보상 규모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덴마크는 지난 9월 사상 최초로 기후변화를 일으킨 책임을 지고 '손실과 피해' 기금으로 1,300만 달러를 내놓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어 오스트리아(5,000만 달러)와 스코틀랜드(800만 달러)도 뒤따랐고, 독일을 중심으로 한 주요 7개국(G7)도 2억 달러를 약속했다. 하지만 개도국 측은 "손해 규모에 비해 여전히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올해 파키스탄 대홍수만으로도 300억 달러(약 40조2,900억 원) 경제적 손실이 생긴 만큼, 피해 보상 규모는 더 늘어나야 한다는 게 개도국 주장이다.

이 때문에 선진국은 기금 조성에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사우디) 등을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중국과 사우디가 선진국은 아니더라도 화석 연료 사용 등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주장이다.

중국의 경우 아직 개도국 지위에 머물고 있지만 현재 온실가스 배출 1위인 나라다. 환경 싱크탱크 E3G의 이네스 베노마르 연구원은 "중국이 개도국 지위를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내년 COP에서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일각에선 화석연료 기업이나 항공기 탑승객에게도 '손실과 피해' 보상금을 부과해 수천억 달러를 모을 수 있다는 제안도 나온다.

지난 9월 기후변화가 야기한 대홍수로 파키스탄 남서부 발루치스탄주(州) 자파라바드의 민가가 물에 잠겨 있다. 자파라바드=AP 연합뉴스

화석연료 감축은 '제자리걸음'

'손실과 피해' 보상과 함께 이번 COP27의 최대 쟁점이었던 '모든 화석연료의 단계적 감축'은 당사국 모두의 동의를 얻는 데 실패했다.

기후 취약국들이 지구 온도 상승 폭 1.5도 제한 목표 달성을 위해 석탄 외 석유, 천연가스 등 모든 화석연료의 단계적 폐지를 요구했지만, 중국과 사우디, 에너지가 부족한 아프리카 국가들은 부정적 입장을 견지한 탓이다. 지난해 석탄과 화석연료를 처음 언급하면서 석탄발전을 '단계적 감축'하기로 한 COP26 합의가 유지된다.

유럽의 기후 정책을 조율해온 프란스 티메르만스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우리 앞에 놓인 합의는 인류와 지구가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충분하지 않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케이티 화이트 세계자연기금(WWF) 이사는 "탄소 배출량을 긴급하게 대폭 줄이지 않는 한 '손실과 피해' 보상은 기후재앙에 대한 계약금이 될 위험이 있다"며 "모든 화석연료의 단계적 '중단' 없이는 우리 건강과 안보는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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