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 때보다 가계빚 심각, 방치하면 통제불능 빠질 것"

임성현 입력 2022. 11. 20. 17:36 수정 2022. 11. 21.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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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前 IMF 협상대표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IMF구제금융 25년

정덕구 이사장이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니어재단 사무실에서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며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상황과 현재 경제 상황에 대해 진단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지금부터 꼭 25년 전인 1997년 11월 21일 밤 10시.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에서 당시 임창열 경제부총리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을 발표했다. 당시 일반 국민에게 IMF는 이름도 생소한 국제기구였다. 대가는 혹독했다. 1999년까지 200개가 넘는 기업이 상장폐지됐고 실업률은 10%에 육박했다. 금융위기, 코로나19발(發) 경기 침체를 거쳐 가파른 금리 인상 후폭풍 속에 25년 만에 경제위기론이 점화되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 IMF 구제금융 협상 수석대표를 맡았던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이 현재 한국 경제가 직면한 위기 가능성을 진단했다.

정덕구 이사장은 "한국은 안 당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어처구니없이 당했다"며 급박했던 1997년 11월의 기억을 소환했다. 앞서 7월 태국에 위기가 닥쳤을 때 일본 주도의 구제 프로그램에 한국은 5억달러를 지원했다. 위기가 한국으로 전이될 줄은 짐작도 못한 것이다. 그는 "9~10월 정부의 대응 조치는 시장 신뢰를 얻지 못했다. 기업들을 살릴지 말지에만 매달렸다"고 말했다. 국제 금융 상황에는 소홀했다. 당시 재정경제원에는 '국'이 아닌 담당 '과'가 하나 있었을 정도였다. 정 이사장은 "당시 청와대와 정부 고위층은 대기업의 연쇄 부도가 대선에 미치는 영향에만 신경 썼다"고 전했다. 경제위기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지금 그가 "우리 경제가 어디쯤에 있느냐는 상황 인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당시 환란 직전 정부 내에 위기 경보가 발령된 것은 10월이 훌쩍 지난 시점이었다. 정 이사장은 "치료제가 바로 금융개혁법이었다"고 말했다. 금융권 건전성 강화와 감독기구 통합이 주된 내용이었지만 당시 국제사회에선 한국 정부의 구조개혁 의지를 가늠하는 시험대로 여겨졌다. 하지만 대통령선거를 앞둔 정권 말 정부는 무기력했다. 그는 "정권 초와 정권 말은 상황 인식 자체가 다르다. 이미 레임덕이 심각한 정권 말에는 집중력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금융개혁법은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해 11월 19일 김영삼 대통령은 책임을 물어 부총리와 청와대 경제수석을 전격 교체했다. 불과 이틀 후 한국은 IMF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위기 극복이 빨랐던 것은 정부가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갖는 정권 초라는 것도 한몫했다. 지금의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 이사장은 "정권 초에는 조직, 지휘, 정책체계가 활발하게 작동되고 위기 대응에 대한 집중력이 높다. 외환위기 때와 같은 무방비 상태는 아니다"고 진단했다.

지금은 몇 가지 '쇼크'가 세계 경제에 충격을 준 상태라는 게 정 이사장의 판단이다. "미국이 코로나19 확산에 지나치게 과잉 대응하면서 세계 경제에 오버슈팅이 발생했다. 그러다 물가가 오르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글로벌 공급망 붕괴가 겹치자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만으로 대응하려다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실제로 최근 위기론의 진앙은 미국이다. 정 이사장은 "중산층 소득이 감소하고 물가가 오르니 물에 잠긴 배에서 물을 퍼내듯 금리 정책을 통해 미국의 내부 문제를 세계 각국에 퍼내는 것"이라며 "미국 '부의 손실(welfare loss)'을 각국 국민의 손실로 막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쇼크는 시간이 해결하지만 회복 기간은 천차만별이다. 악재들이 점차 약해지면서 세계 경제가 다시 반등할 것이라는 게 정 이사장의 전망이다. 정 이사장은 "금리는 이제 숨 고르기에 들어가고 인플레이션도 어느 정도 진정되겠지만 공급 애로는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향후 2~3년은 세계 경제가 수축기에 들어갈 것"이라며 "고물가, 경기 침체로 사회 불균형이 심해지는 '축소 불균형의 시대'로 흘러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에 상륙할 후폭풍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이 절실하다. 정 이사장은 "경상수지 적자가 가져올 유동성 위기, 부채 관리 실패에 따른 가계 및 기업의 디폴트 리스크, 고금리에 따른 투자와 소비 위축을 해소하는 게 세 가지 과제"라고 강조했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국내 자금시장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은행과 시중은행들이 자금시장 경색을 해소하기 위한 응분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1997년과의 차이는 지금은 가계빚이 많다는 것"이라며 "방치했다가는 통제 불능 상태로 간다"고 경고했다. 국내 가계부채는 지난 6월 말 기준 1869조원이다.

정 이사장이 전망하는 세계 경제 '턴어라운드' 시점은 2025년이다. 정 이사장은 "경기 회복기에 승자 반열에 오르려면 지금 준비해야 한다"며 "반도체, 배터리를 넘어 최소 10개 이상의 초일류 첨단 핵심 틈새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이 20년간 장악했던 글로벌 공급망을 고기술 리더십으로 공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탄탄한 제조업 기반을 갖춘 한국은 독일, 일본, 중국 등과 같이 세계에서 새로운 기술형 산업 모델을 만들 수 있는 국가라는 것이다. 그는 "체질을 바꾸지 않으면 일본식 장기 불황에 빠지게 된다"며 "노동, 자본 등 각 부문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리고 강조했다. 특히 여소야대 국면 속에서 국회의 협조 없이는 정부의 위기 극복 플랜을 제대로 실행조차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는 "법인세 인하 등 입법 사항이 많은데 정치적 대타협을 해서라도 통과시켜 위기 재발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이사장은 환란이 진정된 이후 2002년 6월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강연을 한 뒤 의미심장한 질문을 받는다. 1997년 12월 대선이 없었다면, 국회에서 금융개혁법을 통과시켰다면, 기아자동차 처리를 시장에 맡겼다면, 정부가 은행권 부채의 지급보증을 해줬다면 과연 IMF 외환위기가 있었을까라는 질문이었다.

정 이사장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1997년 당시 대선이 없었다면 한국은 외환위기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금융개혁법이 국회를 통과했더라도 이미 늦은 감이 있었다. 기아차 처리를 시장에 맡겼다면 기업 도산이 잇따르면서 금융위기가 먼저 왔을 것이다. 정부가 지급보증에 나섰다면 유동성 위기는 면했겠지만 정부의 신용등급이 곤두박질쳤을 것이다. 정 이사장은 "25년 전 위기를 기회 삼아 경제 체질을 바꿨지만 많은 부분이 다시 옛날로 돌아갔다"며 "위기 극복을 통해 신(新)한국병으로 신음하는 한국 경제의 자기혁신이 이뤄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임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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