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숨 가빴던 일주일, 19개국 정상과 회담…서방과 긴장 완화·외교적 영향력 확대 시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거의 3년여 만에 이뤄진 다자 외교무대에서의 잇따른 대면 정상외교를 마치고 귀국했다. 시 주석은 지난 일주일 동안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19개 국가 정상들과 양자 회담을 하며 숨 가쁜 외교 일정을 소화했다. 집권 3기 국제무대에서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노력으로 평가된다.
중국 외교부는 시 주석이 태국 방콕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 일정을 마치고 지난 19일 오후 귀국했다고 20일 밝혔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지난 14일 출국한 지 5일만이다. 시 주석은 이 기간 G20과 APEC 정상회의에서 회원국 정상들을 두루 만나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19개국 정상과는 별도 양자 회담을 했다. 양자 회담은 윤석열 대통령 등 주변국 정상뿐 아니라 유럽과 남미,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등 전 세계 정상들과 고르게 이뤄졌다. 3시간 넘게 이어진 바이든 대통령과의 첫 대면 만남을 제외하면 거의 매시간 단위로 이뤄진 빡빡한 일정이었다. 중국 입장에서는 오랜 ‘칩거’를 끝내고 국제무대에 복귀한 시 주석을 만나기 위해 각국 정상들이 줄지어 서는 모습을 연출하며 자국의 외교적 위상을 세계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된 셈이다.
시 주석의 이번 대면 정상외교 일정은 중국이 악화일로를 걷던 대미, 대서방 관계에 있어 일정한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의 첫 대면 정상회담은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 대만 방문 이후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른 양국 관계에 일시적으로나마 훈풍을 가져왔다. 시 주석은 지난 19일 APEC 정상회의장에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 짧은 대화를 나누면서 “바이든 대통령과의 발리 회담은 전략적이고 건설적이었으며 다음 단계 중·미관계에 중요한 지도적 의미를 갖는다”며 “양측이 상호 이해를 증진하고 오해와 오판을 줄이며 중·미관계를 건전하고 안정적인 궤도로 되돌려 나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에 해리스 부통령도 “미국은 중국과의 대립이나 충돌을 추구하지 않는다”면서 “양측은 글로벌 이슈에 협력하고 원활한 의사소통을 유지해야 한다”고 화답했다고 중국 외교부는 전했다. 앞서 지난 18일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 대표와 왕원타오(王文濤)중국 상무부장은 APEC 정상회의가 열린 방콕에서 처음 대면해 양국 간 통상 대화를 재개하기로 했고, 펠로시 의장 대만 방문 이후 중단된 기후변화와 군사 분야의 양국 간 대화도 조만간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을 만나 자주적 대중 정책을 강조하며 이해관계가 다른 미국과 유럽의 틈을 파고들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18일 APEC 최고경영자회의 연설에서 “세계에는 단일한 질서가 있어야 하며 두 나라 사이로 갈라지는 것을 피해야 한다”며 “중국 혹은 미국에 충성하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는 국가들이 늘고 있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냉전 구도나 양국의 디커플링(탈동조화)에 반대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블룸버그통신은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은 유럽이 중국에 관해 타협점을 찾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미·중 전략 경쟁이나 대만 문제 등 양국 간 긴장의 근본 요소들이 그대로 남아 있고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 등을 고리로 한 유럽의 대중 강경 기조도 유지되고 있는 만큼 중국이 대미, 대서방 관계에 있어 근본적인 돌파구를 마련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시 주석은 집권 3기를 시작하면서 미국과의 전면적인 갈등이나 충돌은 피하되 중국식 현대화라는 독자적 발전 모델을 앞세워 미국과의 경쟁을 본격화하면서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우군을 확보해 나가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각국 정상들과의 회담에서 다자주의와 글로벌 공급망 안정 등을 내세워 미국을 견제하는 한편 중국식 현대화가 세계에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또 개발도상국들에는 공동의 이익을 앞세워 개도국 맏형 역할을 자임하고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통한 지원과 협력을 다짐했다. 시 주석은 지난 18일 APEC 정상회의 연설에서 “중국은 더 넓은 범위와 영역, 더 깊은 수준의 대외개방을 견지하고 중국식 현대화의 길을 견지할 것”이라며 내년에 일대일로 참여국 정상 포럼을 열어 아시아·태평양과 글로벌 발전·번영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고리로 삼아 개도국을 중심으로 중국의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시 주석의 이번 순방 외교에 대해 “세계적으로 중국 외교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이해와 찬사를 이끌어냈다”고 평가하며 “중국은 격변하는 세계에서 진정한 다자주의를 수호하고 올바른 역사와 평화·협력, 정의의 편에 서 있으며 이로 인해 중국의 친구들은 점점 확대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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