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쉬운 경제학 이야기 '악마는 꼴찌부터 잡아먹는다'[화제의 책]

엄민용 기자 2022. 11. 20.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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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임브리지대학 장하준 교수는 “경제학은 일반인들이 이 분야를 들여다보는 것을 꺼리게 만들어 영역 보존을 하는 데 전대미문의 성공을 거둔 학문”이라고 꼬집었다. ‘진보와 빈곤’을 쓴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도 “경제학을 연구하는 데는 특별한 전문 지식이나 대규모 도서관 또는 값비싼 실험실을 갖출 필요가 없다. 스스로 생각하기만 하면 교과서도 선생님도 필요 없다”고, 장 교수와 비슷한 주장을 했다.

이처럼 유명 경제학자들마저 ‘경제학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데 실패했다’고 비판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학의 중심에는 건조하고 낡은 이론만 있고 생생한 현실이 없다는 점이다. 현실을 설명해 내지도, 현실을 바꾸지도 못하는 경제학에 사람들이 관심을 둘 까닭이 없다. 주류 경제학의 주요 전제인 ‘합리적인 인간’이라는 개념만 봐도 경제학이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다. ‘항상 치밀한 계산 끝에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을 우리 주위에서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하나, 1997년 10월 29일 외환위기가 터지기 바로 직전에 당시 김영삼 정부의 경제팀은 기자회견을 열고 “환율이 고개를 숙일 것이다. 외환시장이 안정되고 이미 발표된 두 번의 대책이 효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주식시장도 괜찮아질 것이다”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로부터 정확히 23일 후 한국 정부는 IMF(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정부 경제팀뿐 아니라 당시 국내 유수의 경제연구소들도 “1998년에는 우리나라 경제가 6~7% 정도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을 쏟아냈다. 그러나 그들의 예측 역시 엉터리가 됐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휩쓸고 지나갈 때도 경제 전문가들의 예측은 대부분 빗나갔다. 경제 전문가라면 깜깜한 밤길을 걷는 국민의 발밑을 밝혀 줘야 하는데, 빛이 되기는커녕 함정만 파 놓는 꼴이다.


도대체 왜 경제학자들은 경제 전문가이면서 경제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할까? ‘악마는 꼴찌부터 잡아먹는다’(박진서 지음 / 혜다)의 저자는 이에 대한 원인으로 “많은 경제학자가 경제학을 현 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이용하고, 만들어진 이론에 현실을 끼워 맞추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게다가 한국의 경제학자들은 대부분 외국에서 공부하고 학위를 받기 때문에 한국 경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지적까지 덧붙인다.

경제는 우리의 삶 자체다. 특히 사람이 먹고사는 문제를 다루는 경제학은 입으로는 밤하늘의 별과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두 발은 땅이라는 현실을 딛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경제학 중심에는 숫자와 도표로 이뤄진 이론만 가득하고 ‘사람’이 없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예를 들어 한 나라의 경제 수준을 평가할 때 GDP(국내총생산) 수치를 자주 거론하는데, 이 숫자가 그 나라 국민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저자는 현제 경제학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중심에 사람이 놓여야 한다고 말한다. 아시아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이 빈곤한 이들의 삶을 제대로 나타낼 수 있는 ‘센 지수’를 개발해 그들이 최소한의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게 노력했고, 일본의 경제학자 우자와 히로후미가 ‘사회적 공통 자본’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경제학에 인간의 마음을 담고자 노력했듯이 말이다. ‘경제학이 밥과 자유를 넘어 궁극적으로 인간의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이라면 경제학자들은 숫자와 자본 대신 사람을 중심에 놓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 줄거리의 중심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저자는 ‘경제학의 중심에 사람을 놓고, 현실을 바꿔 내기 위해 노력했던 진짜 경제학자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에릭슨엘지, IBM 등을 거쳐 현재 구글 코리아에서 클라우드 관련 일을 하고 있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경제학은 몇 푼의 비용과 이익만 따지는 이기적인 학문이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아가 공동체를 위해 복무하는 학문’임을 거듭 이야기한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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