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빛 단풍으로 조지훈 시인 마음 사로잡은 ‘화살나무’[정충신 기자의 꽃·나무 카페]

정충신 기자 2022. 11. 20.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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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의 6·25상징탑인 한국식 청동검과 생명나무 및 군인들 조형물 곁에서 가지가 화살촉을 닮은 화살나무 잎이 가을이 되자 불꽃처럼 붉게 타오르고 있다. 청동검은 유구한 역사, 생명나무는 평화와 번영을 상징한다.10월31일 촬영
서울 서대문 돈의문박물관마을 한옥을 배경으로 단풍을 붉게 물들인 화살나무. 10월23일 촬영
새로 조성된 서울 광화문광장에 심어 놓은 화살나무. 10월31일 촬영
화살나무 꽃은 봄에 황록색으로 핀다. 사진 출처=국립생물자원관
화살나무 열매 사진 출처 국립생물자원관
화살나무 사촌격인 회잎나무 붉은 열매. 전문가가 아니고는 구분하기 힘들다. 11월1일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 빌딩 정원서 촬영

피빛 단풍으로 조지훈 시인 마음 사로잡은 ‘화살나무’

가지 생김새 화살 깃 닮아…귀신의 화살 ‘귀전우(鬼箭羽)’ 이름도

단풍이 비단처럼 예쁘다고 錦木…참빗나무, 털홋잎나무, 털회잎나무

초식동물 공격 막으려 줄기 두껍게 진화…서양은 ‘좋은 나무’ 학명

■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그리움이란 저렇게 제 몸의 살을 낱낱이 찢어/갈기 세운 채 달려가고 싶은 것이다/그대의 품 안 붉은 과녁을 향해 꽂혀 들고 싶은 것이다/화살나무,/온몸이 화살이 되었으나 움직일 수 없는 나무가 있다>

박남준 시인의 ‘화살나무’다. 화살나무는 화살 재료로 쓰이는 나무는 아니다. 화살나무는 가지에 날카로운 화살 깃을 달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날개의 모양이 참빗처럼 생겼다고 해서 참빗나무라고도 부른다. 털홋잎나무, 털회잎나무라고도 한다. 제주에서 촘빗낭, 살낭으로 불린다. 화살나무는 예로부터 귀신 쫓는 나무라고 해서 귀전우(鬼箭羽) 혹은 신전목(神箭木)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귀신의 화살, 또는 귀신의 화살 깃이라는 의미다.

일본에서는 화살나무를 비단처럼 아름다운 가을 단풍 빛깔(錦)에서 유래하는 니시키기(錦木·금목)라 부른다고 한다. 화살나무 단풍은 이처럼 비단처럼 예쁘고 고혹적이다. 가을을 붉게 물들이는 대표적인 나무는 단풍나무를 비롯해, 담쟁이덩굴, 신나무, 옻나무, 붉나무 등이 있다. 화살나무는 가을 그 어떤 붉은 단풍에 비해 뒤지지 않는 자부심이 있다. 가을이 되면 잎과 열매까지 온 몸이 붉은 비단처럼 곱게 물든다. 화살나무와 그 사촌격인 회잎나무는 시인 조지훈의 마음을 매료시켰다고 한다. 화살나무는 꽃보다 단풍이 아름답다.

화살나무는 노박덩굴과 화살나무속으로 산지에 높이 1~3m 정도로 자란다. 나무껍질은 회색, 가지에 2~4줄의 코르크질 날개가 있다. 우리나라 전역에 자라며, 일본, 중국 등에 분포한다. 기본종인 화살나무에 비해 잎 뒷면에 털이 있어 구분되며, 회잎나무에 비해 줄기와 가지에 코르크질의 날개가 있다. 관상용으로 심고, 기구재로 사용하며, 어린순은 식용한다. 꽃이 피는 시기는 5~6월이며 가을에 빨갛게 단풍이 들고 10월에는 붉은 열매가 열리는 데 그 모습이 매우 아름다워 관상수로도 인기가 있다.

꽃말은 ‘위험한 장난’ ‘냉정’이다. 화살나무 잎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빨려들어갈 듯이 고혹적이고 영롱한 아름다움 때문에 붙은 이름일까. 땅에 떨어진 잎은 피빗으로 물든다. 쉽게 변하지 않아 쓸어내기가 아까울 정도다. 화살나무 학명 유오니무스 알라투스(Euonymus alatus). 알라투스는 날개가 있다는 뜻이다. 화살나무는 담장이 생기기 전 집 울타리나 조경수로 많이 심었다.

화살나무는 줄기 껍질 일부를 화살의 깃처럼 보이게 진화했다. 키가 크지 않은 나무의 특성상 초식동물들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머리를 쓴 것이다. 초식동물이 새 순을 따먹는 등 먹이 사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시나 깃과 같은 것으로 방어하도록 진화한 이유는, 특히 봄철 초식동물들이 좋아하는 새순을 따먹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음나무나 두릅, 옻나무들이 가시로 무장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화살나무도 화살 깃처럼 성장한 부분이 나무를 더 굵게 보이도록 해서 새순을 호시탐탐 노리는 초식동물들의 접근을 막았다고 한다. 특히 날개 깃의 코르크 재질 부분을 일컫는 ‘수베린’에는 초식동물이 좋아할 만한 당분이 전혀 없고 퍼석할 정도로 식감도 좋지 않다고 한다. 초식동물의 접근을 꺼리도록 ‘영리하게’ 진화한 셈이다.

화살나무 학명은 에우오니무스로 ‘좋은 이름’을 의미한다. 화살나무가 이토록 ‘좋은’ 이름을 얻게 된 것은 독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명나라 약학서 ‘본초강목’ 역시 화살나무에 독이 없다고 기록하고 있어 동·서양 모두 화살나무의 효능을 익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화살나무의 꽃은 5~6월의 늦은 봄에 황록색으로 핀다. 녹색 계열이라 잘 구분할 수 없지만, 꽃이 지고 10월쯤 붉은 열매가 맺히면 고운 단풍과 함께 나무의 존재감이 빛을 발한다고 한다.

봄철 어린 순을 ‘홀잎’이라고 부르는데, 향이 좋아 나물로 먹거나 밥에 넣어 짓기도 하고 차로도 끊여 먹기도 한다. 화살나무를 넣고 푹 삶은 물에 목욕을 하면 아토피에도 좋고 피부에 좋다고 한다. 간혹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에서 출연진이 화살나무로 목욕하는 모습이 화제가 돼 세간에 알려지게 됐다.

화살나무와 닮은 사촌격인 나무로는 참빗살나무, 회잎나무, 회목나무 등이 있는데 다 같은 용도로 약에 쓴다. 귀전우(鬼箭羽)라는 이름 때문인지 민간에서는 귀신을 쫓는 정신병 치료나, 암과 같은 중한 병을 물리치는 등의 약재로 사용되기도 한다. 실제 화살나무는 항산화 및 암세포 억제 효능이 높으며 한방에서는 어혈을 풀어주는 약재로 많이 사용하는 데 동맥경화나 각종 혈관질환 예방에 효과적이다. 화살나무에 함유된 다량의 싱아초산나트륨은 혈당을 낮추고 체내 인슐린 분비를 늘려 당뇨병 개선에 도움을 준다. 또한 여성 건강에 도움을 주는데 자궁출혈, 월경불순, 대하증, 산후 후유증, 갱년기 여성 호르몬 불균형에 효과가 있지만 임산부에게는 유산 위험성으로 복용을 금한다.

동의보감에서는 “성질은 차며 맛은 쓰고 독이 없다. 배가 아픈 것을 낫게 한다. 사기나 헛것에 들린 것, 가위눌리는 것을 낫게 하며 배 속에 있는 벌레를 죽인다. 월경을 잘 통하게 하고 산후어혈로 아픈 것을 멎게 하며 유산하게 한다. 코르크 날개는 태워서 좋지 못한 기운을 없앤다”라고 한다. 화살나무의 차가운 성질 때문에 열기를 제거해 향균작용과 염증 유발을 억제하며 독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피부병을 치료하는데 좋은 효능으로 여드름이나 아토피 등의 피부질환 증상완화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꽃·사진=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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