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월드컵 비난이 위선적이라고?
잔니 인판티노 FIFA(국제축구연맹) 회장이 카타르 월드컵 개막을 이틀 앞둔 19일 도하의 메인 미디어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시작 후 첫 1시간 가량은 독백 비슷한 스피치를 했다. “카타르를 비난하지 말라” “서구 언론은 위선적” “경기장에서 알코올 3시간 섭취 안해도 견뎌낼 수 있다” 등의 주장을 펼쳤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은 축구 뿐 아니라 여러 사회적 이슈로 이목을 끌어 왔다.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수천명 혹은 1만명이 넘는 해외 이주 노동자가 가혹한 환경에 내몰려 사망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처벌하는 카타르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그치지 않고 있다.
스위스 태생의 이탈리아계인 인판티노(52) 회장은 연설 서두부터 “오늘 강한 감정이 생긴다. 내가 카타르인, 아랍인, 아프리키인, 동성애자, 장애인, 이주 노동자로 느껴진다”면서 “나는 유럽인이다. 우리는 도덕 강의를 하기에 앞서 지난 3000년 동안 세계에 한 일에 대해 앞으로 3000년 동안 사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식민 착취, 노예무역 등 역사적으로 많은 과오를 저지른 유럽이 카타르의 인권 문제를 다룰 자격이 있느냐고 되묻는 말이었다. 그는 또 “(카타르에 대한) 비판을 이해하기 어렵다. 개혁과 변화엔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일방적인 도덕 교훈은 위선일 뿐이다. 이곳에서 2016년 이후 나아지고 있는 환경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이 의아하다”고 했다. “카타르는 준비되어 있다. 이번 월드컵은 역대 최고가 될 것이다. 나는 카타르를 옹호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다. 나는 축구를 옹호한다. 카타르는 여러 분야에서 개선되는 모습을 보인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인판티노 회장은 ‘모두가 월드컵이라는 세계적인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축구가 모든 이들을 결속시키는 스포츠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하지만 카타르 월드컵은 이미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성 정체성이 다르다고 해서 차별을 받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일단 축구에 집중하자”는 것은 궤변이다.
FIFA가 경기장 주변에서 맥주를 팔겠다고 했다가 18일 갑자기 취소한 소동에 대해서도 인판티노 회장은 “카타르와 FIFA가 같이 논의하고, 토론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항변했다. 마지막까지 카타르 측과 협상을 하느라 발표가 늦어졌다고 했다.
인판티노 회장은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스코틀랜드도 같은 규정(주류 판매 금지)이 적용된다. 이곳이 무슬림 국가라서 큰 문제라는 것인가? 이 이슈가 월드컵에 그렇게 중요하다면 나는 당장 사임하고 해변에 가서 릴랙스 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간과한 문제의 본질은 음주가 금지된 카타르에서, 외국 축구팬들이 술을 마실 자유와 기회의 폭이 더 줄었다는 데 있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참았다가 합리적인 가격으로 술을 마시고 싶어하는 팬들의 희망마저 심하게 제약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커지는 것이다.
인권이 세계의 보편적인 가치이듯, 경기 후 ‘한 잔’도 스포츠를 즐기는 보편적인 방법 중 하나다. 각도를 달리해서 보면 카타르 월드컵은 모든 팬을 위한 보편적인 이벤트는 아니라는 말이 된다. 하지만 인판티노 회장의 ‘모노로그’는 월드컵이라는 매력적인 상품만을 세일즈하려는 꼼수로 보였다. 욕을 먹을만도 하다.
/도하=성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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