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정말로 예술가를 위협할까?[영감 한 스푼]

김민 기자 2022. 11. 19.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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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만든 작품의 수상
정말 예술의 죽음일까?
게임 디자이너 제이슨 앨런 씨가 AI 프로그램 ‘미드저니’로 만든 작품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 사진출처: 트위터

안녕하세요 김민 기자입니다.

오늘은 제가 약 두 달전 기사로 썼었던, 그러나 구독자 분들과 더 깊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 주제를 가져왔습니다. 바로 AI가 만든 예술 작품에 관한 논쟁입니다.

올해 9월 트위터에서 화제가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지역 미술 공모전에서 인공지능(AI) 프로그램으로 제작한 그림이 1등상을 수상했는데, 작가가 AI를 사용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며 논란이 되었습니다.

작가는 ‘미드저니를 이용했다’고 작품 설명에서 밝혔지만, 이것이 AI 프로그램임을 알아보지 못한 심사위원들은 직접 그린 그림인 줄 알고 상을 준 것입니다. 이를 두고 ‘예술적 기교(artistry)의 죽음이다!’라는 격한 반응까지 나왔는데요. 정말 그럴까요?

오늘은 제 생각을 좀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여러분도 읽어보시고 의견 보내주세요.

제이슨 앨런이 ‘미드저니’를 이용해 그린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 사진출처: 트위터
단 한 번의 붓터치도 없이 만들어진 그림

  • AI로 어떻게 그림을 그리나?: 수상을 둘러싼 논란을 다루기 전에, AI 프로그램이 그림을 만들어주는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내가 원하는 그림을 텍스트로 입력하면 AI가 학습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그 분위기와 유사하다고 생각하는 그림을 생성해 줍니다. 이를테면 ‘사과’를 입력할 경우, AI가 사과라고 인식한 많은 그림들을 종합해 사과 그림을 내놓게 되는거죠. 그래서 작가는 붓터치, 디지털 아트의 경우 ‘화면 터치’ 한 번 없이 그림값을 얻어내게 되는겁니다.

  • 터치 한 번 안한다니…날로 먹는거 아닌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AI에 문장을 입력하고, 그림이 나오는 것은 불과 몇 초면 되지만 ‘원하는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는 수많은 실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이슨 앨런은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제작에 약 80시간이 걸렸다”고 말한 바 있는데요. 위 사진에서 보는 아주 복잡하고 화려한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여러 단어를 조합하는 과정이 필요했다는 것이죠.
제가 직접 해봤습니다…!

직접 미드저니를 이용해보니 실제로 입력하는 단어에 따라 그림이 달라지더군요.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래 그림은 ‘영감 한 스푼’(a spoon of inspiration)이라고 입력한 결과 나온 것입니다.

A Spoon of Inspiration(영감 한 스푼)


‘영감을 얻은 스푼’(inspired spoon)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Inspired Spoon(영감을 얻은 숟가락)


재밌죠? 마치 숟가락이 생각에 잠긴 듯 신비로운 색깔이 머리 부분에 그려진 것이.. AI 이녀석 똑똑한데! 싶었습니다. 숟가락 여러개를 달라고 하면 어떨까 궁금해졌습니다. ‘예술적인 스푼들’(artistic spoons) 이라고 입력해보았습니다.

Artistic Spoons(예술적인 숟가락들)
정말로 몇십 초 안에 뚝딱뚝딱 이미지가 생성됩니다. 그런데 저는 이 쯤에서 ‘이 녀석도 패턴이 있군…’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무언가 ‘예술’이라거나 ‘영감’이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안개가 낀 듯한 뿌연 색깔과 그라데이션 배경을 넣어주는 것 같더라구요.

사실 ‘영감 한 스푼’이라고 했을 때 우리가 생각하는 이미지는 말 그대로 ‘숟가락’일 수도, 혹은 내가 레터를 읽으면서 생각에 잠긴 모습일 수도 있잖아요. 아니면 레터에서 함께 이야기 한 어떤 작품을 떠올릴 수도 있는 것이고요.

그런데 AI는 ‘곧이 곧대로’ 해석한다는 경향을 느꼈습니다. 물론, 사람의 명령을 받는 AI이기 때문에 당연한 거겠죠. 이런 패턴 속에서 복잡한 이미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 80시간이 걸렸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바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영감 한 스푼’이라는 단어를 두고 내가 수많은 가능성을 사고하고 그 중 하나를 선택해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그 과정을 제거해버린 느낌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 인간이 가진 ‘창의성’이라면, AI가 그린 작품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의문도 생길 수 있겠죠. 사람들이 이 작품의 수상 소식에 분노한 이유 중 하나도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더군요.

제임스 앨런의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
‘예술적 기교의 죽음’이라는 비판

  • 비판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분노한 사람들은 앨런이 직접 그리지 않고 프로그램을 이용했다는 사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술적 기교”(artistry)의 죽음이다, “단순히 AI에 입력한 것을 두고 본인 작품이라고 한다니 역겹다”, “로봇이 올림픽에 출전했다”, “람보르기니를 타고 마라톤에 참고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분노의 포인트가 보이시죠? 그림을 직접 구성하고 표현을 다듬는 ‘손의 기교’가 없음에 사람들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 예술이 손기술이라는 헷갈리는 사실에 대해: 여기서 흥미로운 포인트가 생깁니다. 여러분은 예술 작품을 ‘작가가 손으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게 예술이라면 예술은 이미 카메라가 발명되고, 디지털 아트가 생겼을 때 죽었어야 합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본다면, ‘AI가 예술가를 위협하는가’에 대한 답도 각자가 내려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파인 아트(fine art)와 예술적 기교(artistry)의 차이

여기서 저는 ‘파인 아트’와 ‘예술적 기교’(artistry)를 구분해서 생각해보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파인 아트’를 한글로 그대로 옮기자면 ‘순수 예술’이라고 할 수 있지만, 뉘앙스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우선은 ‘파인 아트’라고 쓰겠습니다. 사전적 의미를 알아볼까요.

  • 파인 아트(순수 예술): 미학이나 창의적 표현을 위해 행해지는 예술.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행해지는 장식적 예술이나 실용 예술과는 다르다. (In European academic traditions, fine art is developed primarily for aesthetics or creative expression, distinguishing it from decorative art or applied art, which also has to serve some practical function, such as pottery or most metalwork.)

  • 예술적 기교(artistry): 예술적 능력과 기술(artistic ability or skill)

파인 아트의 가장 쉬운 예를 든다면, 지난 2주간 살펴본 세잔의 작품이 바로 파인 아트에 해당되겠죠. 단순히 벽을 꾸미거나, 풍경을 기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한 결과물이며 그것이 시대와 사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예술적 기교’는 무언가를 예쁘게 꾸미고 장식하는 기술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앨런에게 가해진 비판 중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예술의 죽음’이 아니라 ‘예술적 기교의 죽음’이라는 표현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즉 ‘미학이나 창의적 표현을 행하는 예술’이 아니라, 무언가를 예쁘게 꾸미는 ‘손기술’이 죽었다고 누리꾼은 보고 있었던 것이죠.

비슷한 맥락에서, 앨런의 작품이 수상한 분야가 ‘디지털 예술, 디지털 합성사진’이라는 것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모 분야가 ‘파인아트’가 아니고, 작품 공모전 역시 상금 300달러인 지역 박람회의 부대 행사였다는 것도요. 즉 공모전 자체가 순수 예술이 아니라 손기술을 주로 평가하는 소규모 행사였다는 것입니다. 만약 앨런의 작품이 뉴욕이나 런던의 공립 미술관에 소장되거나, 개인전을 열게 됐다면 정말 큰 사건이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어보입니다. 앨런의 작품은 장식적 성격이 강할 뿐 미술사의 맥락에서 새로운 의미를 던졌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죠. 공모전의 심사위원 역시 ‘르네상스 예술을 연상케 한다’고 심사평을 내놓았는데요. 500년 전 예술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라면 새롭다고 하긴 어렵겠죠?

다만 AI로 만든 모든 작품이 가치가 없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단순히 여러 단어를 조합해 그림을 탄생시키는 방식이라면 곤란하겠지만, AI가 작동하는 방식을 이용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거나, 예술의 의미를 곱씹게 만든다면 흥미로운 작품이 될 수 있겠죠. 100년 전 피카소가 그림 속에 신문지를 오려 붙이며 ‘콜라주’ 작품을 보여준 것처럼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아래 링크로 구독 신청을 하시면 매주 금요일 아침 7시에 뉴스레터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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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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