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남수의 視線] 월드컵이 시작됐다, ‘K-사커’ 돌풍이 분다
월드컵이 시작됐다. 월드컵은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했다. 지금은 9연속 본선진출을 자랑하지만, 예전에는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에 진출하기만 해도 국민은 환호했다. 최종 예선에 나선다는 것은 꿈에 그리던 월드컵 본선행을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늘 문턱에서 좌절됐다. 월드컵 본선무대에 진출해서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셨을 때보다 아쉬움이 훨씬 컸던 기억이 난다. 당시 우리 축구의 수준은 당시 대한민국의 현실이기도 했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기도 전인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처음으로 출전한 한국 축구 대표팀은 헝가리에 0대9, 터키에 0대7로 대패했다. 당시 한국 대표팀은 미 공군 수송기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대회 장소인 취리히에 도착했지만, 헝가리와의 경기를 시작하기 불과 10시간 전이었다. 선수들의 컨디션 조절은 물론 시차적응도 하지 못한 채 예선 두 경기를 치러야 했으니 오죽했을까. 골키퍼의 눈부신 선방으로 더 많은 실점을 면한 것이 다행이었다.
이후 한국 축구는 아시아와 타 대륙이 함께 예선을 치르는 조에 편성되면서 무려 32년 동안이나 본선무대를 밟아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을 시작으로 이번 카타르 월드컵까지 9회 연속 본선진출이라는 위업을 이루게 된 것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의 4강 신화는 한국 축구의 질적 성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조별 예선을 통과해 16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지금까지 월드컵 본선에는 열 차례나 출전했지만, 대부분 예선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자신감이나 기대감을 갖지 못하게 한 이유다. 그래서 16강 진출이 곧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만약 8강 진출할 것이라고 예상한다면, 이는 한국축구의 수준을 과대평가한 것이라는 지적을 받을 정도다. 그러면서도 축구공은 둥글기 때문에 쉽게 단정하지 못한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늘 부정적인 시각이 대부분이라는 말이다.
그럼 실제로 한국 축구와 세계 축구의 격차가 큰 것일까. 문외한으로서도 축구의 객관적인 전력을 논할 때 개인기와 피지컬 그리고 조직력이 기본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개인기 하면 브라질 등 남미 축구라면, 피지컬은 유럽 축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부족한 개인기와 피지컬을 보완하기 위해 조직력 우선의 축구를 강조해 왔다. 하지만 요즘 축구 트렌드는 단순히 이렇게 나눠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다변화됐다. 세계 축구는 각각의 강점을 지닌 스타일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질적 변화를 거듭해 왔다. 그 가운데 한국 축구도 있다.
최근 현장을 떠난 스포츠 스타들이 방송 연예 프로에 대거 진출했다.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스포츠 스타들은 각종 예능 프로에서 남다를 끼를 보여주며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특히 타 종목 출신 선수들이 축구나 야구, 씨름 등을 겨루는 프로가 인기가 높다. 모 방송의 ‘어쩌다벤져스-뭉쳐야 찬다’는 비인기 종목의 현역선수나 국가대표 출신들이 축구에 도전하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프로는 안정환, 이동국 등 축구 국가대표 출신들이 주도하고 있다.
지난 13일 방송된 어쩌다벤져스는 예능프로임에도 한국 축구의 미래를 발견하는 계기가 됐다. 중학교 2학년 중 가장 축구를 잘하는 선수로 구성된 팀과 성인으로 구성된 어쩌다벤져스팀이 맞붙었다. 중학생팀에는 여학생도 3명이 출전했다. 경기는 압도적 피지컬에 스피드를 자랑하는 성인팀의 압승이 예상됐다. 하지만 실제 경기가 시작되자, 중학생팀이 뛰어난 경기력을 선보이며 경기를 주도했다. 결과는 4대1의 중학팀 승리. 연예를 겸한 경기라지만, 이 경기를 통해 한국축구의 미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체력과 스피드에서 우세한 성인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그들만의 개인기와 판단력, 그리고 처음 발을 맞췄음에도 돋보이는 전술운영 능력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음은 물론이다. 한국축구나 질적 변화를 거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과정이기도 했다.
다시 월드컵 얘기다. 먼저 열기를 더해가는 월드컵으로 인해 혹시 잃어버리는 것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월드컵을 향한 뜨거운 열기는 한편으로는 세상을 잠시 잊게 하기 때문이다. 각종 미디어의 발달로 이젠 지나간 이론이 됐지만, 이른바 ‘3S’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3S는 섹스(SEX), 스포츠(SPORTS), 스크린(SCREEN)의 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역대 독재정권이 국민의 정치적, 사회적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쓰는 정책이다.
1980년대 봇물처럼 터졌던 민주화의 열기를 스포츠 등 다른 곳으로 돌려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던 전두환 정권이 대표적이다. 세계의 전체주의 국가 등에서도 3S 정책을 활용했다. 특히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체제 선전용으로 악용했던 나치 독일이나 월드컵을 체제 선전용으로 써먹었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스페인의 프랑코 그리고 중남미의 독재국가에서 축구리그나 야구리그를 활성화시켜 국민의 눈을 돌리게 하는 일이 많았다. 물론 21세기 최첨단 디지털 시대에 3S 정책의 효능성은 많이 떨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살펴야 할 것, 약자들의 고통과 사회 정의를 위한 중요한 이슈를 잊게 만든다.
이제 결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세계는 또다시 월드컵에 환호할 것이다. 그 한가운데 한국축구, K-사커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솔직히 정치영역만 빼고 K브랜드의 가치는 자랑할 만하지 않는가. 이번에 카타르에서 k-사커의 돌풍이 불면, 또 하나의 K신화를 창조하게 될 것이다. 그럼 조롱과 경멸, 내로남불의 극치를 보이는 정치권만 바꾸면 되겠다. 양극화의 함정에 빠진 우리 사회의 극단성과 경제적 부의 편중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변화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오늘의 한국 정치는 국민을 분열시키고 나아가 절망에 빠뜨리고 있다. 정치제도의 전면적인 혁신이 필요한 이유다. 정녕 성장을 거듭하는 한국 축구처럼 우리의 정치문화의 발전은 기약할 수 없는 일인가. 월드컵을 얘기하다가 느닷없이 정치 얘기를 꺼내들어 독자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어쩌다벤져스와 일전을 벌였던 그 중학생팀이 한국축구의 희망이다. 그들이 있기에 K-사커의 신화는 이번 카타르 월드컵을 통해 나타날 것으로 믿는다. 뜨거운 마음으로 중동의 뜨거운 바람을 가르면서 결의를 다지고 있는 월드컵의 태극전사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대~한민국!
강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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