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철의 행동경제학] 이야기(stories)의 확산과 금융위기
많은 사람 오가며 확산되는 이야기
경제 작동과정서 지대한 영향 미쳐
최근 레고랜드 ABCP 사태서 보듯
정치인의 한마디가 후폭풍 부르기도
최근 레고랜드 부도 이야기가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금융위기의 전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9월 28일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강원중도개발공사(레고랜드 개발 사업을 위해 강원도가 설립한 시행사)에 대한 기업 회생 신청을 발표한 것이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이후 강원도가 지급보증을 선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이 최종 부도 처리됐다. 지방정부의 채무 불이행 이야기는 한국전력공사·한국도로공사·한국가스공사 등 초우량 공기업의 회사채 발행 유찰,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연장 실패 등으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많은 건설사들의 ABCP 차환과 PF 대출 연장이 어려워지면서 부도 위험이 커졌다. 건설사들의 부도는 미분양 급증을 야기해 주택 시장의 경착륙 가능성을 높인다. 자금 조달에 관여한 금융회사들도 위기에 처했다. 은행의 부도 위험 지표도 나빠졌다. 대출금리 상승에 가속도가 붙어 기업과 개인 모두 힘들어졌다. 설상가상으로 흥국생명이 5억 달러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서 향후 국내 기업의 외화 조달도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야기(stories)는 어떤 사건·현상·인물·사물 등에 대해 사람들 사이에 서로 오가는 말을 의미한다. 사회심리학자인 로저 섕크와 로버트 아벨슨에 의하면 사람들은 중요한 사실을 이야기의 형태로 기억한다. 사람들의 대화는 반복적인 이야기의 형태를 띤다. 사람들은 이야기의 형태로 정보를 교환하고 지식을 축적한다. 중요한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 되풀이되고 오래 기억된다. 그리고 확산된다. 이야기는 바이러스와 같다. 이야기도 바이러스처럼 사람들 사이에 전염을 통해 다양한 변이를 일으키며 확산된다.
사람들 사이에 확산된 이야기는 과연 실물경제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주류경제학은 이야기에 기반해 경제를 분석하는 것을 전문적이지 못한 것으로 평가한다. 주류경제학은 오직 계량화할 수 있는 사실과 변수만을 고려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행동경제학은 이야기가 경제의 작동 과정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와 조지 애컬로프 버클리대 교수는 사람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확산된 이야기가 경제와 시장에 현실적인 영향력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인터넷에 대한 이야기는 전 세계로 확산됐다. 인터넷의 등장과 활용에 대한 이야기는 경기 호황과 주식시장 활황으로 이어졌다. 젊은 사업가들이 인터넷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는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인터넷에 대한 이야기는 대중의 관심과 인기를 끌었고 많은 사람을 주식시장과 벤처기업 투자로 이끌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정반대의 이야기가 지배했다. 집값 급락, 리먼브러더스 파산, 주가 폭락 등에 대한 이야기는 전 세계로 퍼져 투자자들의 투매를 초래했고 글로벌 금융시장을 휘청거리게 했다. 비관적인 이야기가 전염을 통해 금융시장에서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투자에 변화를 일으켰던 것이다.
레고랜드 부도 이야기는 한 정치인의 말에서 시작됐다. 에드워드 글레이저 하버드대 교수는 정치인들이 이야기를 확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정치인들이, 특히 경제 관련 이야기의 중요한 출처라고 주장했다. 정치인들은 대중과의 교류와 커뮤니케이션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데 이때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한다. 경제와 관련된 이야기가 정치인들의 입을 통해 우리 사회에 확산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경제 전문가가 아니다. 따라서 경제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한 명의 정치인이 쏘아 올린 작은 이야기가 나비효과를 일으켜 금융위기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부정적인 이야기가 전파되면 정부는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대책을 즉시 수립·발표하고 바로 실행해야 한다. 그래야 이야기의 확산과 변이를 막고 경제 주체들의 불안 심리를 진정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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