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칼럼] 폭탄 굴리는 한국 정치의 걱정스러운 終末

강천석 고문 2022. 11. 19.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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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進入은 ‘잘한다’가 아니라 ‘잘했었다’는 과거 평가
한국, 독일·영국·일본처럼 15~20년 病치레해도 無事할까

선진국은 ‘선진병(病)’을 앓고 후진국은 ‘후진병(病)’을 앓는다. 선진국이 병을 앓으면 ‘영국병’ ‘독일병’ ’프랑스병’ ‘일본병’이라고 부른다. 국가 지급 불능 상황에 빠져 IMF에서 긴급 구제 금융을 받았던 아르헨티나·브라질·그리스의 경우는 ‘병’이 아니라 ‘사태’라고 했다. 1997년 한국 외환 위기를 ‘한국병’이라고 한 외국 언론은 없었다. 그렇지만 1976년 선진국 가운데 처음 IMF 구제 금융을 받은 영국을 놓고 ‘다시 도진 영국병’ 운운하면서 혀를 찼다.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오전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국회 본청에 도착, 국회의장단 환담을 위해 접견실로 이동하고 있다. 이날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국회 무시 발언을 사과하라며 침묵시위를 벌였다. 2022.10.25 /연합뉴스

한국은 몇 년 전 ‘개발도상국’ 딱지를 떼고 선진국이 됐다. 70년 만에 달성한 나라의 경사(慶事)다. 경제 지표만이 아니다. 영화·대중음악·클래식 음악과 발레에 이르기까지 활약이 눈부시다. 선진국 그늘도 그대로 따라가거나 앞질렀다. 1980~90년대만 해도 자살을 ‘복지국가병’이라 부를 만큼 덴마크·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 자살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한국 2배 이상이었다. 2019년 한국 자살률은 그들보다 2~3배 높다. 이제 한국 위기는 ‘한국 사태’가 아니라 ‘한국병’으로 불릴 것이다.

‘선진병’은 풍토병(風土病)이 아니라 돌림병이다. 영국에서 프랑스, 프랑스에서 독일, 독일에서 다시 영국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간다. ‘선진병’은 홍역처럼 한 번 앓으면 일생 면역이 되는 병이 아니다. 어제의 우등생이라 해서 오늘을 자신할 수 없다. 스웨덴은 건전 재정과 사회 보장의 양립(兩立)에 드물게 성공한 모범생이었다. ‘선진병’은 1992년 스웨덴에 출현해 대량 해고와 개인 파산 사태를 몰고 왔다. 실업수당을 낮추고 병원·학교·탁아소·양로원을 대대적으로 수술하는 고통스러운 겨울을 맞았다. 예산 적자와 국가 채무를 낮추기 위한 입법도 이 기간에 이뤄졌다. 회복에 7년이 걸렸다.

한국은 1997년 외환 위기 사태를 겪고 불과 2~3년 만에 회복됐다. 그러나 ‘선진병’은 단기간에 극복할 수 없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1999년 6월 “독일 경제 정체로 독일을 ‘유럽의 환자’ 또는 ‘유럽 안 일본’으로 취급한다”고 보도했다. 독일은 이 병을 1980년대 후반부터 2004년까지 앓았다. 짧게 잡아 15년이다. 일본은 1990년부터 2013년까지 ‘일본병’에 시달렸다. 아베 집권 시기 잠시 반짝 퇴원했던 일본 경제가 또 심상치 않다고 한다.

선진병은 주기적(週期的)으로 재발(再發)한다. 1979~1990년 기간에 진행된 대처 총리의 영국병 퇴치(退治) 작업은 ‘혁명’이라고 불린다. 나중 대처가 세상을 떠나자 여기저기서 길거리 파티가 열릴 만큼 지독했다. 한전(韓電) 같은 부실 공기업을 매각하고, 총리 대신 영국을 다스린다던 영국판 민노총위원장과 정면 대결해 기세를 꺾어 퇴진시키고, 동조(同調) 파업을 불법화하고, 노조원의 불법 행위에 민사상 책임을 물었다. 이런 대청소 작업에도 불구하고 20년이 흐르자 영국 혈관에 다시 기름이 끼기 시작했고 경제 불안은 정치를 흔들고 있다. 1997년 외환 위기로부터 25년이 흘렀다. 문재인 시대 5년을 겪으며 한국 혈관도 여기저기 막히고 출혈(出血)이 생겼다고 진단하는 게 정상이다.

선진병은 진통제로 다스릴 수 없다. 2002년 시작한 독일 사민당 출신 총리 슈뢰더 개혁은 그 효과가 20년 가까이 지속됐다. 당초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일자리를 만드는 노동 유연성 확대·실업(失業) 수당의 구멍 막기 등 병(病)의 근원을 다스렸기 때문이다. 독일 천주교와 개신교 지도자들도 이례적으로 개혁 지지 공식 성명을 냈다. 사회적 약자(弱者)를 위한 복지로는 일자리만한 대책이 없다는 데 공감한 것이다. 한국 종교인 가운데 그럴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선진병은 예보(豫報)가 어렵다. 미국 경제 전문지 월스트리트저널은 1990년 1월 4일 ‘도쿄 주식 시장을 불신하는 사람은 돈을 잃을 것이고 믿는 투자가는 돈을 벌 것’이라 했다. 세계 경제 전문가들이 이 예측에 줄을 섰다. 그리고 두 달 후부터 주식 시장은 2013년까지 곤두박질쳤다. 위기는 한국 발밑까지 와있을지도 모른다.

선진국은 ‘지금까지 잘해왔던 나라’라는 말이지 ‘지금 잘하고 있는 나라’라는 뜻이 아니다. 독일은 15년을 앓다 다시 일어났고, 일본은 25년 앓았는데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고, 영국은 15년 동안 악몽을 꾸다 대처를 만나 숨을 쉬기 시작했다. 한국은 떡잎 선진국이다. 한국이 그들만큼 오래 병(病)치레를 하고도 떨치고 일어날 수 있을까. 폭탄 굴리는 한국 정치는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북한은 어제도 ICBM을 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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