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죽고 나니 보였다, 그녀가 가장 꽃 같았던 시절이
박제사의 사랑
이순원 지음 | 시공사 | 320쪽 | 1만4800원
“당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을 나는 꼭 찾아낼 것이다.”
어느 날 아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며 엄마 없이 살아가야 할 아이들에 대한 걱정만 있을 뿐, 왜 죽었는지에 대한 말이 없다. 동물 박제사인 남편 ‘박인수’는 그가 죽은 이유를 직감한다. 이틀 전 몰래 본 아내의 임신 테스트기에는 두 줄이 떠 있었다. 더 이상 아이를 갖지 않기로 한 부부였다. 박인수는 모른 척했던 그 장면이 죽음의 원인이 됐으리라 추측한다.
박인수는 아내의 유품을 통해 그의 죽음을 추적한다. 단서는 통장에 입금된 출처 미상의 1000만원, 그리고 휴대폰에 찍힌 신원 미상의 전화번호 2개. 추리 과정에서 자신의 직업인 ‘박제’와도 같은 경험을 한다. 죽은 동물의 아름다운 모습을 되살려 영원히 보존하는 박제. 박인수는 평생 타인을 위해 살아온 아내가 “인생에서 가장 꽃 같고 아름다웠다”고 말했던 시절의 모습을 알게 된다.
동인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한 작품 활동 37년 차의 작가가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1992) 이후 처음 낸 추리 소설이다. 다만, 극적인 긴장과 반전이 계속되는 끝에 쾌감을 주는 소설은 아니다. 박인수가 아내의 죽음을 추리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풍경들은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가족에 대해 얼마나 아는가?”
소설은 ‘애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분노, 슬픔 등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죽은 이의 과거를 마주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작가는 어떤 모습을 우리의 기억에 ‘박제’하는 작업이 중요하며, 그것은 의식적인 노력 끝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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