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발 권총 만들어 美 역사 바꾼 콜트의 삶

박성준 2022. 11. 19.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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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살 때 배 밧줄 감는 장치서 영감
포드보다 먼저 공장서 대량 생산
리볼버, 서부개척 시대 지형 바꿔
베일 가려진 불편한 진실도 추적

콜트/짐 라센버거/유강은 옮김/레드리버/4만2000원

챙 넓은 모자에 판초를 입고 입에는 시가를 문 총잡이. 인상을 찌푸리다가 갑자기 왼손으로 꺼내든 권총의 공이치기를 오른손으로 연달아 뒤로 제낀다. 총구는 불을 내뿜고 악당들은 우수수 쓰러진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일대다수’의 대결에서 승리를 만들어낸 주인공은 바로 6연발 리볼버(회전식 총). 1831년 대서양을 가로지르던 배에 견습선원으로 타고 있던 16세 미국 소년 새뮤얼 콜트(1814-1862)가 선박의 밧줄을 감는 장치인 캡스턴에서 떠올린 천재적 발상에서 만들어진 발명품이다.
새뮤얼 콜트
일생을 풍운아로 산 콜트는 대량생산체제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자동차왕 포드보다 먼저 기계를 이용해서 균일하고 호환 가능한 부품을 만드는 미국식 대량시스템으로 리볼버를 세상에 퍼트렸다. 콜트의 리볼버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했는지는 두말할 필요없다. 이 총기는 새뮤얼 워커 대위가 이끄는 텍사스 순찰대 15명이 70여명에 달하는 코만치 부대를 격파하면서 서부 대개척 시대의 필수품이 됐고 지금의 미국을 만드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미 대륙 개척의 역사에서 윈체스터·레밍턴 소총과 더불어 콜트 권총으로 이름을 남긴 콜트는 여전히 많은 부분이 베일에 쌓인 인물이다. 당대 미국 10대 부호이자 미국 산업혁명의 기수였고 서부 개척 시대의 주인공이었던 콜트의 삶을 뉴욕타임스 기자이자 논픽션 베스트셀러 작가인 짐 라센버거가 철저한 연구 조사로 복원했다. 리볼버의 탄생부터 콜트 무기 공장의 번성을 연 남북전쟁, 미국 산업혁명, 골드러시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배경으로 풀어 놓는다.
짐 라센버거/유강은 옮김/레드리버/4만2000원
콜트가 리볼버를 만들기 전까지 전장에서 군인들은 장전된 총알을 쏘고 나면 여러 번 재장전을 해야 했다. 지금 상식으로는 결정적 단점인데 세계 군대는 여기에 최적화된 상태였다. 여러 세기 동안 군대는 병사들을 연속적인 줄이나 대열로 만들어서 일제 사격을 가했다. 한 열이 발사하면 뒤로 물러나서 재장전을 하는 동안 다음 열이 발사하는 식으로 사실상 병사들의 대열을 연발식 무기로 전환시켰다. 개별 병사는 겨우 분당 두세 발을 쏠 수 있었다. 이는 병사들이 자신의 목숨을 지키려는 의지를 억누르고 모두가 한 줄을 형성해서 한 사람처럼 움직여야 한다는 절대적인 규율과 복종 문화를 군대 내에 확립시키는 것으로 이어졌다. 리볼버의 등장은 처음에는 이러한 군대 규율과 문화 자체를 해칠 위험이 있다는 지적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군대 간 전쟁에선 환영받지 못했지만 신대륙에 만들어진 새로운 전장은 달랐다.
“현대인의 귀에 ‘야만인’을 상대로 한 전투 이야기는 승리보다는 집단 학살과 제국주의에 더 가깝게 들린다. 텍사스 순찰대가 코만치족에게 처음 콜트 총을 발포한 다음 해인 1845년, 미국인들은 이를 서부 팽창이라는 고귀한 대의를 뒷받침하는 도덕적 언어로 받아들였다… 미국인들은 점점 독실해지면서도 또한 더욱 폭력적으로 바뀌었고 점점 근대인이 되면서도 문명과 멀어졌다. 콜트와 그가 만든 리볼버는 실제로나 상징적으로나 이 모든 발전과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콜트 리볼버의 작동방식을 알 수 있는 1850년대 중반 콜트드러군의 개요도. 공이치기(I)를 뒤로 당기면 멈춤쇠(H)가 올라간다. 멈춤쇠가 실린더 뒤에 있는 래칫을 밀어 올리면 실린더는 전체 회전의 6분의 1을 정확히 돌아간다. 그와 동시에 실린더 멈춤쇠(D)가 실린더 바깥에 있는 작은 홈 안으로 떨어져서 공이치기와 총열이 완벽하게 정렬되면서 고정된다. 격발 이후 사수는 다시 공이치기를 당기고 이 과정이 반복된다. 레드리버 제공
세기의 발명가로서 콜트는 주문이 쏟아지기 시작, 리볼버를 양산하면서 헨리 포드보다 100년 앞서 ‘조립 라인’이라는 개념을 떠올렸다. 이후 콜트 무기 공장의 노동자들이 뉴잉글랜드 전역으로 퍼져 미국의 공업을 꽃피웠다. 기존 단발식 총기보다 빠르게 활을 쏘던 아메리카 원주민은 콜트의 6연발 리볼버 앞에서는 싸움을 포기하고 자신들의 터전을 떠났다. 게다가 리볼버는 미국식 개인주의를 탄생시켰다. 리볼버 조립 공정을 통해 인간이 아닌 공장의 기계가 된 노동자들은 리볼버를 차고 다니며 자율적인 존재라는 느낌을 받았다. 헨리 포드의 모델 T 자동차가 한 세기 뒤에 맡게 될 역할이었다.

저자가 본 샘 콜트는 세계를 뒤바꾼 제품을 발명했을 뿐 아니라 그 제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방식에서도 세계를 뒤바꾼 파괴적 혁신가였다. 그의 삶에는 형수와의 사생아 스캔들, 에드거 앨런 포가 영감을 받은 살인 사건, 감옥에 불을 질러 탈옥 사주를 했다는 혐의, 남군과 북군 모두에 무기를 판매하는 뻔뻔함, 특허 연장을 위한 뇌물 살포, 무기 밀수 등 많은 불쾌한 진실이 숨어 있었다.

“남들과 다르게 콜트가 반역자라는 비난을 받고 유독 관심의 초점이 된 것은 그의 공격적 사업 방식과 엄청난 판매량, 그리고 그가 총기를 판매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레밍턴 같은 일부 총기 제조업자들은 남부 주들이 처음으로 연방에서 탈퇴한 뒤 일찌감치 남부에 대한 무기 판매를 포기했다. 반면 콜트는 판매를 중단하지 않았다. 어쩌면 총기 제조업자가 전쟁에 사용하는 총을 판매한다고 비난하는 것은 우산 제조업자가 비 덕분에 돈을 번다고 비난하는 것만큼 공정하지 못한 공격일 것이다. 하지만 비난은 도덕적 차원과 무관하지만 전쟁은 언제나 관련이 있다. 이번 전쟁은 특히 더 그랬다. 남부로 가는 콜트 총기는 외국의 적이 아니라 뉴잉글랜드 출신의 수많은 젊은이를 비롯한 미국인을 죽이는 데 사용될 것이었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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