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되는 중산층… 신흥 ‘상류 중산층’ 탐구

김용출 2022. 11. 19.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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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질적이고 유동적인 집단이었던 중산층
1990년 후반부터 계층 분열 발생 시작
1997년 국제통화기금 체제가 결정타
특권적 기회 누리는 소수 부유층 등장
아파트 가격에 편승해 자산 비중 늘려
경제 불평등 심화 상황 속 경제적 도약
도덕적으로 진정한 상류계급 형성 못해

특권 중산층/구해근/창비/2만원

“민주당 정권이 붕괴시켜놓은 중산층을 재건해 중산층 70% 사회, 반드시 만들겠습니다. 저와 함께 국민이 행복한 새로운 대한민국 만들어주십시오. 여러분.”
동아시아 노동연구자인 구해근 하와이대 명예교수는 한국 중산층이 지난 20여 년간 수적으로 감소하고 공동화 과정을 겪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특권 중산층이 자신의 특권을 이용해 일반 중산층과 분리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사진은 특권 중산층의 기반인 강남 아파트의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제18대 대통령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2012년 11월 29일,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서울 거리유세에서 중산층을 인구 70% 수준까지 재건하겠다고 약속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급격히 쪼그라들기 시작한 중산층 문제가 주요한 정치적 이슈로 대두하던 순간이었다.
한국의 중산층, 그러니까 중간 계층은 20세기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1960년대 초반 수출 지향적 산업화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인구 대다수는 농촌에 거주하는 농경사회였다. 1950년대 후반 전체 노동인구 가운데 농민이 무려 80%에 이를 정도였다.
구해근/창비/2만원
1960년대부터 정부 주도의 급격한 경제성장이 이뤄지면서 중간 계급 역시 빠르게 늘어났다. 중위 소득의 50~150% 소득 규모를 가진 중산층은 1990년 74.8%까지 늘었다. 자신을 스스로 중산층으로 여기는 ‘체감 중산층’ 역시 꾸준히 늘었다. 갤럽 조사 등에 따르면, 체감 중산층 비율은 1960년대 40%에서 70년대 60%로, 80년대 초중반 60~70%로,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70~80%까지 늘었다.

이때의 중산층은 비교적 동질적이고 유동적인 집단이었다. 압축 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분배됐기에 대부분 경제적으로 고만고만한 위치에 있었고, 자식들 대에는 더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믿었다. 사회 이동 가능성도 항상 열려 있어서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중산층, 상류층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한국 경제가 기술 및 자본집약적 산업으로 이행했고, 중국 시장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커지면서 불평등이 증가했다. 결정타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였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물결이 거세게 몰아치면서 생산직 노동자와 사무 관리직 노동자들은 큰 희생을 치러야 했고, 결정적으로 중산층에 균열을 안겼다.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은 노동 불안과 소득 감소를 경험하면서 중산층 지위를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자영업으로 돌아섰지만, 경험 부족과 격화하는 경쟁으로 더욱 위기로 내몰렸다. 1990년 임금 소득자의 95% 수준이던 자영업자 평균 소득은 2000년 88%, 2014년 60%로 떨어지며 추락했다.

중산층은 큰 폭으로 줄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1990년 74.8%에 이르던 중산층은 2000년 70.2%로, 2010년에는 65.4%로 크게 줄었다. ‘체감 중산층’ 역시 40%대로 폭락했다. 1989년 75.5%에 이르던 중산층 가운데 ‘체감 중산층’ 비율은 2005년 56.0%로, 2013년 45%로, 2019년 42.2%로 폭락했다.

이 사이 중산층 내에서 경제적으로 잘나가고 사회 및 문화적으로 특권적 기회를 누리는 소수 부유층이 급부상했다. 소득 및 자산 상위 10%에 속한 이들 상위 중산층은 소득을 집중적으로 분배받았다. 1980년 28.8%에서 1995년 29.2%로 큰 변화가 없던 이들 상위 10%의 소득 점유율은 2000년 35.39%로 급증한 뒤, 2010년 43.3%로, 2016년 49.2%로 증가해 국민 전체 소득의 절반을 가져갔다. 특히 이들은 결정적으로 아파트 가격에 편승해 자산 비중을 크게 늘렸다. 이들 상위 10%는 자산의 경우 2013년 기준으로 전체 자산의 65.1%를 소유했고,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이후 그 비중을 더욱 확대했다.

1990년대만 해도 다른 중산층 성원들과 비해 경제적으로 그렇게 큰 우위를 보이진 않던 이들은 요동치는 자산시장의 흐름을 포착, 자산을 크게 늘리면서 신흥 부유층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들은 주로 의사와 변호사, 교수를 비롯한 고위 전문직, 대기업 관리직, 금융업자, 특수 기술자, 고위 공무원 등과 직업과 관계없이 많은 부동산을 소유한 사람들로, 경제 불평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더 나은 경제 상태로 올라선 것이다.

하와이대 사회학과 명예교수이자 동아시아 노동연구의 선구자로 주목받아온 저자는 책에서 한국 사회의 계급 동학을 주도하며 부상한 이들을 ‘신흥 상류 중산층’, ‘특권 중산층’으로 부르자고 제안한다.

저자는 이들 신흥 상류 중산층, 특권 중산층이 일반 중산층에 대해 주로 주거지의 계층적 분리, 소비를 통한 신분 경쟁, 심화되는 교육 경쟁을 통해 계급 구별짓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먼저 부동산 가격이 가장 급등했을 뿐 아니라 풍부한 사교육 시장을 통해 교육적 혜택을 누리는 강남의 고급 아파트에 주로 산다. 2000년대 초반 변호사의 61.3%, 의사의 56.4%, 기업가의 54%, 금융권 매니저의 52.8%, 공무원의 50.2%, 언론인의 36.2%가 강남에 사는 것으로 조사됐다. 무엇보다도 강력한 사교육과 각종 특수목적고, 또는 해외 유학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명문대 졸업장으로 계급 세습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고학력자에 명문대 출신이 많지만, 도덕적 이데올로기적으로 진정한 상류 계급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왜냐하면 태생적으로 직업 활동이 가져다주는 정상적 소득 외에 부동산을 통한 축재나 권력을 통한 지대 추구에 의해 형성된 데다 계급 상승의 기회가 막힌 상황에서 과시적 소비, 자산과 교육에서 특권적 기회만 향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분석과 달리 저자의 대안은 다소 나이브하다. 이들 특권 중산층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선 스스로 자기 가족만이 아닌 공공의 이익을 중시하고, 나눔의 문화를 강조하고, 일직선 서열이 아닌 다양한 가치관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상류 중산층 문화가 자기 가족만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중시하고, 나눔의 문화를 강조하며, 성공의 기준을 명문대로부터 화려한 직장으로의 일직선 서열이 아닌 다양한 가치관으로 대체하고, 노동의 진정한 가치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바뀐다면, 설령 경제적 불평등이 증가하더라도 사회는 덜 소모적이고 경쟁적이 될 수 있고, 사회 전체에 만연한 불안도 조금은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250쪽)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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